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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신앙 명제와 실천

by modeoflife 2025. 3. 27.

 

앞의 장들을 통해 우리는 “명제”가 일상과 신앙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명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우리가 짚어 봐야 할 몇 가지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앞에서 다소간 미진하게 다루었던 내용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명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1. 일반적 명제와 신앙적 명제, 어떻게 다른가

 

일상에서 사용되는 일반적(경험적) 명제와 신앙고백적 명제는, 얼핏 보기에는 모두 ‘어떤 사실을 진술한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 근거와 성격에서 분명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이 커피는 맛있다”라는 명제는 상대적으로 객관적·경험적 검증이 가능합니다. 여러 사람이 직접 커피를 마셔 보고 공감하거나 반박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공통 인식’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은 단순히 경험적인 차원만으로 완전히 증명하거나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이미 ‘하나님과 나’라는 관계가 전제되어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은혜와 확신이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 명제는, 누군가에게는 무척 자명한 진리로 다가오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요?”라는 의문만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고백이 ‘관계 맺음’에서 비롯된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가 하나님을 사랑으로 경험하고, 그분과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장은 그의 삶 속에서 현실이 됩니다. 그러나 이 관계적·체험적 차원이 결핍된 사람에게는, 해당 문장이 단순한 주장이나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적 명제는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서는 성격을 가지며, 그 의미와 설득력은 경험이나 이성적 논증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 공동체에서의 삶과 만남, 그리고 거기서 빚어지는 체험적 확신 위에서 형성됩니다.

 

“이 커피는 맛있다”처럼 경험과 감각을 통해 어느 정도 공유될 수 있는 명제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처럼 관계 맺음과 신앙적 확신이 전제된 명제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전자는 객관적 검증과 감각적 동의가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지지만, 후자는 ‘왜 확신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고, 그 확신조차도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주관적 체험에 근거합니다. 이 차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신앙 명제가 지니는 독특한 영역과 힘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 명제는 때로는 논리적 증명을 넘어, 더 깊고 개인적인 체험과 공동체적 공감 속에서 그 의의를 인정받고 공유되기 때문입니다.

 

2. 명제의 한계: 경직된 신앙으로 흐를 위험

 

명제가 신앙의 핵심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표현해 주는 강력한 도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 도구가 가진 한계와 위험성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교회 역사에서나 개인 신앙 생활에서나, 명제가 때로는 옳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생산적인 분쟁과 경직된 태도를 낳기도 했다는 사실을 수없이 목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교리적 명제를 지식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교회가 오랫동안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는 명제를 강조해 왔다고 해 봅시다. 이 진술 자체는 오랜 신앙고백의 역사 속에서 다듬어져 온 귀중한 요약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문장이 머릿속 공식처럼 굳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논리적 지식’으로만 인식하게 되어,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전 생애를 내어 맡기는 신뢰의 태도로는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명제는 더 이상 ‘살아 있는 고백’이 아니라, 외워야 하는 암기 과목이나 변론의 소재가 되어 버립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앙을 개념적 진술로만 축소하는 경향입니다. 명제 몇 개를 구호처럼 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만을 따지는 태도가 강화되면, 실제 삶에서 드러나야 할 사랑, 용서, 그리고 섬김이 뒷전으로 밀릴 위험이 커집니다. 교리적 문장 하나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공동체 내에서 갈등이 심화되거나,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을 무조건 ‘잘못된 신앙인’으로 치부하는 배타적 태도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는 교리가 본래 지향하는 생명력 있는 신앙과는 거리가 멀며, 교회를 회색의 논쟁터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습니다.

 

명제는 신앙의 골자를 설득력 있고 효율적으로 전해 주는 통로이되, 그 명제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붙들고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함정을 함께 인식해야 합니다. 그 함정은 크게 두 갈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이 지식화되어 삶과 분리되는 문제입니다. 둘째, 명제를 절대화함으로써 다른 시각이나 경험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랑과 실천이 결여된 경직된 교조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피하려면 명제를 ‘살아 있는 신앙 경험’으로 확장하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교리적 진술을 고백할 때 그 말이 실제 내 삶에 어떻게 스며들고,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도, “이 명제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를 서로 묻고 토의하면서, 명제를 실제 사랑과 행함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이어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명제는 단순한 논쟁의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더욱 건강하고 풍성한 공동체로 이끌어 주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신앙고백과 명제: 단순 문장 이상의 공동체 선언

 

신앙고백, 특히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경 같은 전통적 교리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러 문장의 집합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교회 역사의 맥락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깊이 녹아 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단순히 참·거짓을 가리는 명제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믿고 고백한다”라는 공동 선언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공동체의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앙고백은 교회가 각종 이단 논쟁과 교리 분쟁을 겪는 과정 속에서 결론 내려 온 핵심 신앙의 결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같은 문제를 둘러싸고 교회는 수많은 대립과 토론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 신앙고백으로 정리된 문장들은, 단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명제 이상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 공동체가 붙드는 믿음”이라는 공적인 선언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예배 시간에 이러한 신앙고백을 함께 암송할 때, 이는 명제 하나하나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공유하는 신앙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 됩니다.

 

다음으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신앙고백에 담긴 문장들은 결코 우연히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수많은 신학자와 교부들의 논의와 치열한 토론이 축적되어 온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교리문은 단순한 ‘문장 나열’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삼위일체 교리나 성육신 교리는 교회가 초대 교회의 혼란기부터 수세기에 걸쳐서 정립해 온 복합적인 신학적 문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경에서 한 줄로 정리된 표현 하나하나는, 사실상 방대한 역사와 신학적 배경을 축약해 놓은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앙고백은 단순히 “이것이 진리다”라고 나열된 명제 묶음이 아니라, 공동체가 겪어 온 신앙적 시련과 논쟁, 그리고 그 속에서 다져진 성찰을 ‘함께 선언’하는 고백입니다. 교회가 세대와 지역을 넘어 동일한 신앙고백을 전수해 온 것은, 각 문장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뛰어넘어, 그것이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결속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성도 개인에게는 믿음의 기본 틀을 제공하고, 공동체 차원에서는 역사적 전승을 계승하며 신앙의 본질을 간추려 보여 주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경과 같은 전통적 신앙고백은 한 문장 한 문장을 ‘명제’로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치열한 역사적 논의와 숙고의 산물이자, 교회라는 공동체가 자기 정체성을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천명하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동시에, 개인의 입장에서는 신앙의 방향을 잡아 주는 기본 틀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앙고백을 그저 명제들의 단순한 나열로만 바라보는 것은 그 풍부한 의미와 무게를 다 담아 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역사를 아우르고, 성도들의 신앙 체험을 받쳐 주며, 교회가 하나로 묶여 있음을 보여 주는 신앙고백은, 그래서 ‘살아 숨 쉬는 믿음의 언어’라 불릴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4. 진리의 선언을 넘어 삶으로 이어지려면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신앙 명제는 하나님의 진리를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드러내는 도구로서 분명한 가치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장은 논리나 체험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짧은 언어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명제가 진정한 ‘살아 있는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와 과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먼저, 명제 자체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진리 진술을 전해 준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 문장을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특성을 분명히 말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단지 이 문장을 외우고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신앙 생활을 풍성하게 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앎’을 넘어 실제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깊이 뿌리내리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이 선언, 즉 “나는 그 사랑을 믿고 따르겠다”라는 의지 표명입니다. 이는 명제에 동의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결단이 수반되는 단계입니다. 가령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명제가 아무리 참이라 해도, 정작 내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따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그 문장은 내 삶과 별다른 접점을 만들지 못합니다. 선언은 명제를 ‘나의 고백’으로 만들고, 고백을 통해 신앙 공동체와도 연결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짜 변화를 일으키려면 이 선언이 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가령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명제를 믿고 고백했다면, 내 삶에서도 그 사랑을 닮아 가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향한 배려, 용서, 봉사 같은 실천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고백은 말로만 그치고 마는 공허한 문장으로 남을 위험이 큽니다. 반대로,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태도가 확실해질수록, 명제의 진실성과 선언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지고 구체화됩니다. 이렇게 명제와 선언, 그리고 실천이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한 문장은 ‘살아 있는 고백’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신앙 명제는 머릿속 교리로만 머무르거나, 막연한 감정적 열정에서 그치는 등 균형을 잃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만으로 신앙을 유지하려 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흔들리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지적 동의만 있을 뿐 삶의 변화가 없다면, 경직된 교조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명제를 통해 진리를 요약하고, 그 진리를 개인적으로 선언하는 동시에, 실제 삶에서 그러한 고백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문장 하나가 성도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명제(진리 진술)와 선언(의지 표명), 그리고 삶의 변화(실천)가 끊임없이 상호 보완하며 하나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 교리는 단순한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신앙의 뼈대가 될 수 있습니다.

 

5. 신앙 명제, 선언을 넘어 삶이 되다

 

신앙 명제는 단순히 머릿속 지식으로만 그치는 진술이 아니라, 믿는 이의 전 인생을 해석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한 문장이, 교리서에 적힌 딱딱한 구호가 아니라 내 일상 곳곳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살아 있는 진리’가 되려면, 그 명제를 선언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삶으로 옮기는 과정이 필수적이지요.

 

이를 위해 먼저, 일반 명제와 신앙 명제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커피는 맛있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직접 커피를 마셔 보고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앙 명제는 그러한 직접적 체험만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논리나 감각 수준을 넘어, 관계와 은혜의 차원에서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 명제는 이성적 동의만으로는 완결되지 않으며,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과 지속적으로 동행할 때 더욱 선명해지고 구체화됩니다.

 

또한, 교리적 명제가 지닌 한계를 경계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교리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한 ‘표현의 틀’이기 때문입니다. 이 틀을 맹목적으로 붙들면 교조주의로 흐르거나 신앙이 지식화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명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공동체적 의미를 함께 점검하고, 그 고백이 왜 지금도 유효한지 서로 대화하고 적용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삶으로 이어 가는 ‘실천’이야말로 신앙 명제를 ‘살아 있는 고백’으로 만드는 핵심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조금씩이라도 실천하려 애쓰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웃을 환대하고, 갈등 상황에서 용서를 택하며, 힘든 이웃을 돌아보는 행동을 통해 명제는 더는 추상적 언어가 아니라 나의 행동과 선택을 이끄는 동력이 됩니다. 그렇게 삶이 뒷받침되는 고백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뿐 아니라,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아, 이들이 말하는 사랑이 진짜이구나’ 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같은 한 문장 속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담아 내는 힘이 있으며, 그 명제를 믿고 따르기로 선언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지적 동의를 넘어 개인적 결단과 행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실제 삶에서 실현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명제가 ‘진리의 선언’을 넘어 ‘내가 살아 가는 방식’이 되는 경험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 명제의 진정한 목적지이자, 교리가 ‘사는 글자’로 거듭나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신앙 명제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명제가 내 행동과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해 가는 과정 자체가, 명제를 교리적 문장을 넘어 실제 삶의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가장 소중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함께 생각해 볼 질문들

 

-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경험적 명제(예: “이 커피는 맛있다”)와 신앙적 명제(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 교리적 명제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교조주의(dogmatism)로 흐르거나 신앙이 지식 차원에만 머무르게 되는 문제는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요?

- 사도신경·니케아신경 등의 신앙고백이 ‘명제들의 묶음’을 넘어, 공동체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을 담은 선언으로 기능한다는 점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나요?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같은 명제가 실제 생활에서 ‘살아 있는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실천이나 태도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보시나요?

-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지금 붙들고 있는 신앙 명제들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려면 어떤 물음이나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7. 1부 마무리 및 2부 소개

 

1부에서 우리는 ‘명제’가 신앙과 일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그 의미가 어떻게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형성해 가는지 폭넓게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같은 짧은 문장이, 단지 논리적 진술이나 지적 동의를 넘어 실제 삶의 고백이 되고, 교회의 정체성과 역사 속에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리적 명제가 머릿속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제 2부에서는 명제의 개념과 역할을 좀 더 학문적·역사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탐색할 것입니다. 철학적·논리학적 배경에서 비롯된 ‘명제’라는 용어가 신학적 전통과 교회사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명제가 교리 형성과 변증학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해 볼 예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교회사에 나타난 수많은 논쟁과 합의, 변증과 고백의 역동성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포스트모던·디지털 시대에도 어떻게 신앙 명제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해 보게 될 것입니다.

 

2부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논의와 연구가 이어지지만, 그 모든 논의는 실제 신앙 생활과 공동체의 성장에 기여하기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학문적 깊이와 교회 현장의 실제적 필요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명제가 교리 문장을 넘어 살아 있는 신앙고백으로 지속해서 작동하도록 돕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2부로 함께 전진하셔서, ‘명제’라는 주제가 얼마나 넓고도 깊은 지평을 열어 줄 수 있는지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명제, 신학 그리고 신앙'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