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하버드 대학의 한 실험실에서 24세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기계로 인간의 뇌를 재창조하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해 그는 "SNARC(Stochastic Neural Analog Reinforcement Calculator)"라는 세계 최초의 인공신경망 기계를 완성했다. 진공관 40개와 전선으로 엮인 이 장치는 단순한 학습을 흉내 냈지만, AI의 새 장을 여는 신호탄이었다. 다트머스 회의(1956)에서 존 매카시와 함께 AI라는 학문을 정립한 민스키는, 기계가 단순히 계산하는 도구를 넘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하고자 했다. MIT에서 수십 년간 연구를 이끌며 신경망과 지능 이론을 개척한 그는, AI 혁명의 뇌를 재창조한 혁명가로 기억된다.
1950년대 초, 컴퓨터 과학은 태동기였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민스키가 SNARC를 설계할 당시, 컴퓨터는 IBM 701 같은 진공관 기계로, 메모리는 수 킬로바이트에 불과했다. 인간 뇌의 복잡성을 모방한다는 발상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러나 민스키는 신경생물학에 매료되었다. 그는 뇌의 뉴런이 전기 신호를 통해 학습한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기계가 패턴을 인식하고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SNARC는 쥐가 미로를 탐색하듯 보상을 통해 경로를 학습하는 단순한 모델이었지만, 이는 "연결주의(connectionism)"의 첫걸음이었다. 1954년 박사 논문에서 그는 이 작업을 이론화하며, 신경망이 지능의 핵심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스키의 혁명적 도전은 다트머스 회의 이후 본격화되었다. 1959년, 그는 존 매카시와 함께 MIT 인공지능 연구소를 공동 설립하며 신경망 연구를 심화했다. 그는 기계가 단순히 논리 규칙을 따르는 대신, 뇌처럼 분산된 네트워크로 작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1960년대에 그는 "프레임(Frame)" 이론을 제안했다. 이는 지식을 구조화된 단위로 저장하고,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개념으로, 현대 AI의 지식 표현(knowledge representation)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로보틱스에 관심을 돌려, 1970년대 "MIT Arm" 같은 초기 로봇 팔을 개발하며 신경망을 물리적 시스템에 적용하려 했다. 그의 비전은 "마음의 사회(Society of Mind)"라는 1986년 저서로 집대성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지능을 수많은 작은 에이전트(agent)의 협력으로 설명하며, 복잡한 사고를 단순한 상호작용으로 풀어냈다.
민스키의 연구는 당시 기술적 한계와 씨름했다. SNARC는 단층 신경망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1969년, 그는 세이모어 페퍼트(Seymour Papert)와 함께 Perceptrons라는 책을 출간하며 신경망의 한계를 비판했다. 이 책은 단층 퍼셉트론이 XOR 같은 비선형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증명했고, 신경망 연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민스키는 다층 신경망의 잠재력을 인정했지만, 이를 학습시킬 알고리즘이 없던 시절이라 회의적이었다. 그의 비판은 의도치 않게 1970년대 AI 겨울을 가속화했고, 연결주의는 10년 이상 침체에 빠졌다. 대신 그는 상징적 AI와 로보틱스에 집중하며, 실용적 응용을 모색했다. 예를 들어, 그의 학생들은 1960년대 "Shakey" 로봇을 개발하며 신경망 대신 논리 기반 시스템을 탐구했다.
성과는 두드러졌지만 한계도 컸다. SNARC는 실험적 성공을 거뒀지만 실용성이 부족했고, 프레임 이론은 이론적 틀에 머물렀다. Perceptrons는 신경망 연구를 억제하며 민스키에게 역설적 비판을 안겼다. 1970년대 그의 로봇 프로젝트는 기초적이어서 상업적 가치를 내지 못했다. "마음의 사회"는 철학적 통찰로 찬사를 받았지만, 구체적 구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컴퓨팅 파워는 그의 비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메모리와 연산 속도 부족으로 다층 신경망을 실험할 수 없었고, 데이터도 거의 없었다. 민스키는 "너무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아이디어가 꽃피우기를 1980년대 후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민스키의 파급력은 거대했다. 1986년 제프리 힌튼 등이 역전파 알고리즘을 발표하며 신경망이 부활했을 때, 민스키의 초기 작업은 재조명되었다. 그의 SNARC와 신경망 이론은 딥러닝의 뿌리로 인정받았고, "마음의 사회"는 인지과학과 AI 설계에 영감을 주었다. MIT 인공지능 연구소는 데이비드 마르(David Marr)의 시각 이론,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의 로보틱스 등 수많은 혁신을 낳으며 AI의 산실이 되었다. 2010년대 딥러닝 붐은 민스키가 꿈꾼 "뇌를 닮은 기계"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미지 인식, 음성 처리, 자율주행은 그의 비전에서 시작된 결실이다. 심지어 그의 로봇 연구는 현대 로보틱스의 기초가 되었고, "프레임"은 데이터베이스와 지식 시스템에 녹아들었다.
마빈 민스키는 뇌를 재창조한 혁명가였다. 그는 신경망으로 AI의 새 장을 열었고, 기계가 단순한 명령 수행자를 넘어 학습하고 사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었다. Perceptrons의 오판과 AI 겨울의 어둠 속에서도 그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2016년 그의 서거까지, 민스키는 AI의 철학과 기술을 융합하며 혁신을 이끌었다. 그의 도전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AI 혁명의 토대가 되었고, 인간 지능을 모방한 기계의 꿈을 현실로 바꿨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스 콘첼만의 신학적 접근과 구속사 (1) | 2025.04.13 |
---|---|
도서 "구속사의 흐름"의 목적과 구성 (3) | 2025.04.13 |
AI 겨울의 반전: 몰락 속 피어난 혁신 (2) | 2025.04.08 |
튜링의 도발: 기계가 생각을 혁신하다 (2) | 2025.04.08 |
다트머스 1956: AI 혁명의 첫걸음 (2) | 2025.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