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세계의 세계관과 인간 이해
신약성경의 신화적 구조를 탐구하려면, 그 텍스트가 형성된 고대 세계의 세계관과 인간 이해를 먼저 살펴야 한다. 루돌프 불트만은 신약성경이 1세기 유대-헬레니즘 문화의 산물로, 당시의 신화적 세계관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보았다. 이 세계관은 현대인의 과학적, 객관적 사고와 달리,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가 모호하며, 인간을 신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불트만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이론은 이 고대 세계관을 현대인의 실존적 경험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의 토대가 된다. 여기서는 고대 세계의 우주론적 구조, 초자연적 인식, 인간 존재에 대한 관점을 신약성경의 맥락에서 분석한다.
삼층 우주론과 공간적 세계관
고대 세계의 세계관은 삼층 우주론으로 대표된다. 이는 세상을 하늘(신적 영역), 땅(인간 영역), 지하(죽음과 악의 영역)로 나누는 공간적 구조다. 신약성경은 이 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예수의 승천(사도행전 1:9-11)은 하늘로 올라가는 이미지로 묘사되며, 바울은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모든 무릎이 예수께 꿇을 것"(빌립보서 2:10)을 언급한다. 요한계시록의 천사와 용의 싸움(요한계시록 12:7-9)은 하늘과 지하의 대립을 상징한다. 이 삼층 구조는 유대교의 구약 전통(창세기 1:6-8, 하늘과 땅의 창조)과 헬레니즘의 다층적 우주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물리적 현실이자 신학적 틀이었다.
고대인은 하늘을 하나님과 천사의 거처로, 지하를 죽은 자와 악령의 영역으로 인식했다. 예를 들어, 예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는 장면(마태복음 3:16-17)은 하나님의 영역이 인간 세계에 개입한다는 신화적 표현이다. 이 세계관에서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신적 질서와 인간 삶이 얽힌 신학적 무대였다. 불트만은 이 삼층 우주론이 신약성경의 신화적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보았으며, 현대인의 평면적 우주 이해와의 충돌을 지적했다.
초자연적 인식과 신의 개입
고대 세계관은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가 모호했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를 초자연적 존재와 힘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했다. 신약성경에는 천사(누가복음 2:9-14), 악령(마가복음 5:1-13), 하나님의 직접적 행동(마태복음 17:5, 변화산의 음성)이 빈번히 등장한다. 기적은 이 초자연적 인식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예수가 폭풍을 잠잠케 하고(마가복음 4:35-41), 물 위를 걷는(마태복음 14:22-33) 사건은 자연 법칙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한다. 이러한 초자연적 개입은 유대교의 전통(출애굽기 14:21-22, 홍해 가르기)과 헬레니즘 신화(신들의 인간 세계 개입)에서 영향을 받았다.
고대인은 병, 자연재해, 풍요를 초자연적 힘의 결과로 보았다. 예를 들어, 귀신 들림(마가복음 9:17-27)은 심리적 질환이 아니라 악령의 지배로 이해되었고, 예수의 치유는 하나님의 권위로 이를 물리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불트만은 이 초자연적 인식이 신약성경의 신화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으로 보았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세계의 의미와 신의 임재를 설명하는 실질적 틀이었다. 그러나 현대인의 과학적 인과율과는 양립하기 어려운 이 구조는 불트만의 비신화화 논의로 이어진다.
인간 이해: 신과의 관계 속 존재
고대 세계에서 인간은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신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었다. 신약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죄와 구원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창세기의 영향(창세기 1:26-27,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받은 유대교 전통은 인간을 하나님의 뜻에 종속된 존재로 보았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마가복음 1:15)는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회개하고 새 생명을 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바울의 신학(로마서 5:12-21)은 죄로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 과정을 신화적 내러티브로 설명한다.
고대인은 인간 삶을 운명과 신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았다. 헬레니즘의 숙명론과 유대교의 종말론은 인간 존재를 초월적 계획 속에서 이해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의 종말 비전(요한계시록 20:11-15)은 인간의 최종 운명이 하나님의 심판에 달려 있음을 상징한다. 불트만은 이 인간 이해가 신약성경의 신화적 구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로 묘사되며, 이는 현대의 개인주의적 인간관과 대조된다.
시간과 종말론적 기대
고대 세계관은 시간에 대한 이해에서도 신화적이었다. 신약성경은 선형적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펼쳐진다고 본다. 예수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가복음 1:15)는 선언은 종말론적 기대를 반영한다. 이 시간관은 유대교의 묵시 전통(다니엘 7:13-14, 사람의 아들)에서 유래하며, 헬레니즘의 운명론적 순환과 융합되었다. 바울은 "마지막 때"(고린도전서 10:11)를 언급하며, 현재가 종말의 전조임을 강조한다. 고대인은 시간을 하나님의 개입으로 완성되는 과정으로 보았고, 이는 신약의 신화적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불트만의 관점에서 본 고대 세계관
불트만은 고대 세계의 세계관과 인간 이해가 신약성경의 신화적 구조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삼층 우주론, 초자연적 인식, 신과의 관계 속 인간 존재, 종말론적 시간관은 신약의 신학적 메시지를 담는 틀이었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고린도전서 15:3-4)은 고대 세계관에서 죽음과 지하 영역을 극복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해되었다. 불트만은 이 구조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실존적 진리로 경험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인의 과학적, 개인주의적 세계관은 이 신화적 틀을 낯설게 만든다. 불트만은 신약성경의 신화적 세계관을 문자 그대로 고집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실존적 의미—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대—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대 세계의 세계관과 인간 이해는 신약성경을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닌 신학적 증언으로 만든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이 세계관을 현대인의 실존과 연결하는 작업으로, 신약의 메시지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진리로 되살리려는 시도다. 본 절은 이 고대적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신약 신학이 직면한 도전의 기원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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