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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화화 논쟁의 시대적 배경

by modeoflife 2025. 4. 7.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이론은 1941년 "신약과 신화"(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 강연에서 처음 공식화되었으며, 이는 20세기 중반 신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은 단순히 불트만 개인의 신학적 제안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근대성(modernity)이 신앙과 전통적 종교 이해에 던진 도전이 집약된 결과로 이해된다. 비신화화가 등장한 시대적 배경은 과학적 합리성의 확산, 세계 대전의 충격, 철학적 실존주의의 부상, 그리고 신학 내부의 갈등이라는 복합적 요소들로 구성된다. 이 맥락을 통해 불트만의 비신화화가 단순한 학문적 제안이 아니라, 신앙의 현대적 재구성을 위한 필연적 시도로 평가된다.

과학적 합리성과 근대 세계관의 도전

19세기 이래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인간의 세계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다윈의 진화론, 뉴턴의 역학, 현대 의학의 발전은 자연현상을 초자연적 개입 없이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20세기 초 전기, 라디오, 항공 기술의 등장으로 이 과학적 세계관은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내렸다. 신약성경의 신화적 요소—삼층 우주론, 기적, 부활—는 이러한 합리적 사고와 충돌했다. 예를 들어, 예수가 물 위를 걷는 이야기(마태복음 14:22-33)는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며, 현대인에게는 비현실적 내러티브로 여겨졌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이 충돌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신화적 언어를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세계 대전과 신앙의 위기

비신화화 논쟁의 시대적 배경에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 대전의 충격이 자리 잡고 있다. 1914-1918년과 1939-1945년의 전쟁은 유럽 문명의 기반을 흔들었고, 수백만 명의 죽음과 파괴는 전통적 신앙에 대한 회의를 낳았다.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약속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불트만의 동시대인들은 신화적 세계관에 기반한 전통적 기독교가 현대인의 실존적 고통에 답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비신화화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신앙을 초자연적 사건에 묶지 않고, 인간 실존의 깊이에서 재발견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불트만은 신약성경의 메시지를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려 했던 것이다.

철학적 실존주의의 부상

20세기 초 실존주의 철학의 등장은 비신화화 논쟁의 또 다른 배경을 형성한다.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개인적 신앙 강조에서 시작된 실존주의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를 통해 인간 실존의 불안, 자유, 책임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특히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로 정의하며, 실존적 결단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불트만은 마르부르크에서 하이데거와 교류하며 이 철학을 신학에 접목시켰다. 비신화화는 신약의 신화적 요소를 실존적 의미로 번역하는 과정으로, 신앙을 초월적 사건의 수용이 아닌 인간의 실존적 응답으로 재정의했다. 이 철학적 흐름은 불트만의 사상이 단순한 신학적 혁신이 아니라, 시대적 사조와의 대화임을 보여준다.

신학 내부의 갈등과 자유주의의 한계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신학계 내부의 긴장 속에서 등장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적 예수의 삶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했으나,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며 신앙의 초월성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반해, 칼 바르트(Karl Barth)의 변증법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를 강조하며 인간 중심적 접근을 거부했다. 불트만은 이 두 흐름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자유주의의 역사비평을 계승하면서도, 바르트와 달리 인간 실존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비신화화는 신약의 신화적 세계관을 폐기하지 않고, 그것을 현대인의 실존적 경험으로 재해석하려는 중재적 시도로 이해된다. 이로 인해 불트만은 바르트와의 논쟁(신화 제거 vs 계시 보존)과 자유주의 후계자들(역사적 예수 중시 vs 케리그마 중심)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논쟁의 파장과 불트만의 응답

비신화화가 공식화된 1940년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고, 전후 복구 시기(1950년대)로 이어지며 논쟁이 본격화되었다. 불트만의 제자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은 역사적 예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역사적 예수 탐구"를 제안했고, 이는 비신화화가 역사를 과도히 배제했다고 본 입장이었다. 반면, 보수적 신학자들은 신화적 요소의 제거가 신앙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반발했다. 불트만은 이에 대해 비신화화가 신화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작업임을 분명히 했다. 신약성경의 신화적 언어가 현대인에게 낯설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실존적 메시지를 살려내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보았다.

시대적 배경의 의의

비신화화 논쟁의 시대적 배경은 불트만의 신학이 단순한 학문적 제안이 아니라, 근대성과 전통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응답임을 보여준다. 과학적 세계관, 전쟁의 상흔, 실존주의 철학, 신학 내부의 갈등은 신약성경을 현대인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이 질문에 대한 대안으로, 신화적 세계관을 실존적 의미로 재구성하며 신앙의 현대적 가능성을 모색했다. 연구자로서 불트만의 시도를 시대적 필연성으로 평가하며, 이 논쟁이 신학의 경계를 확장한 계기로 본다. 비신화화는 신앙과 현대성의 대화를 가능케 한 도구로, 오늘날에도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 루돌프 불트만 관점의 신약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