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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불트만의 신학적 여정

by modeoflife 2025. 4. 7.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20세기 신약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그의 신학적 여정은 현대 신앙과 고대 텍스트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지적 탐구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독일 북부 올덴부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불트만은 신학적 배경 속에서 성장하며, 초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출발해 역사비평과 실존주의 철학을 거쳐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이론을 정립했다. 이 여정은 개인적 학문적 성취를 넘어, 신학이 시대적 질문에 응답하려는 보편적 노력으로 해석된다. 여기서는 불트만의 신학적 발전을 초기 학문적 형성, 실존주의와의 만남, 비신화화의 정립이라는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며, 그의 사상이 신약 신학에 남긴 영향을 조명한다.

초기 학문적 형성과 역사비평

불트만의 신학적 여정은 20세기 초 독일 신학계의 학문적 토양에서 시작되었다. 튀빙겐, 베를린,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약학, 구약학, 조직신학을 공부하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스승 요하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와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역사적 예수 연구와 신약 문헌의 비판적 분석을 강조했으며, 이를 통해 불트만은 역사비평 방법론을 습득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초, 브레슬라우, 기센, 마르부르크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신약 문헌의 형식 비평(Form Criticism)에 집중했다. 대표작 『공관복음서의 역사』(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1921)는 구전 전통의 층위를 분석하며 복음서의 역사적 기원을 탐구한 결과물로, 그의 초기 업적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Jesus of History)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초기 교회의 신앙적 해석을 반영한 문헌임을 인식한 것이다. 이는 이후 신학적 전환의 단초가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적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신약성경이 단순한 역사적 자료가 아니라 신학적 선포(케리그마, Kerygma)를 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초기 단계는 불트만이 신학의 객관적 기반을 마련한 시기로 평가된다.

실존주의와의 만남과 철학적 전환

불트만의 신학적 여정에서 중대한 전환은 1920년대 마르부르크 시기에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Being-toward-Death)로 정의하며 실존의 불안과 결단을 강조했다. 불트만은 이 철학적 통찰을 신학에 적용하여, 신약성경의 메시지를 인간 실존의 문제와 연결했다. 신앙을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수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실존적 결단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이 시기 강의와 논문, 특히 "신약과 신화"(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 1941)는 실존주의적 해석학의 기초를 보여준다.

하이데거의 영향은 불트만에게 철학적 차용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신약성경의 신화적 언어가 현대인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인식하고, 이를 실존적 의미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죄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실존적 깨달음으로 이해됐다. 이 단계는 불트만이 신학을 현대적 맥락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시기로, 신앙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비신화화의 정립과 신약 신학의 재구성

불트만의 신학적 여정은 1941년 "신약과 신화" 강연에서 비신화화 이론이 공식적으로 제시되며 절정에 달했다. 신약성경의 신화적 세계관—삼층 우주론, 기적, 부활, 초자연적 개입—이 현대 과학적 세계관과 충돌한다고 본 그는, 신약을 폐기하거나 신화적 요소를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비신화화를 통해 신화적 언어를 현대인의 실존적 경험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저 『신약성서신학』(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1948-1953)은 이 이론을 체계적으로 적용하며,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실존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보다 케리그마를 중심에 두었다.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 선포하는 신앙의 증언이라고 보았다. 바울의 십자가 신학(고린도전서 1:18)은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 앞에 서는 실존적 가능성을 드러낸다. 비신화화는 신화적 형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실존적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으로 이해된다. 이 시도는 신약 신학을 현대성 속으로 끌어들인 혁신적 기여로 평가된다.

불트만의 유산과 연구적 관점

불트만의 신학적 여정은 논쟁을 낳았다. 비신화화는 역사적 예수를 과도히 배제한다는 비판(에른스트 케제만)과 신학을 인간 중심주의로 축소시켰다는 지적(칼 바르트)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업적은 신약성경을 고대 신화의 틀에 가두지 않고, 현대인의 실존적 질문에 답하는 살아있는 텍스트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불트만의 여정은 신학이 시대와 대화하는 모범으로 해석되며, 신앙과 학문이 만나는 지평을 열었다.

1976년 사망한 불트만의 신학적 질문—신약성경은 현대인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여정은 신약 신학의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했으며, 이 책은 그 과정을 따라가며 그의 사상이 현대 신앙에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지 탐구한다.

 

 

#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 루돌프 불트만 관점의 신약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