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제12권은 그의 신앙적 묵상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깊이 확장되는 중대한 장을 이룹니다. 제11권에서 시간의 본질과 창세기의 시작을 철학적·신학적으로 탐구했다면, 제12권에서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하늘과 땅의 창조”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며 상징적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의도를 묵상합니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하던 시점—서기 397년경, 약 43세—에 북아프리카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이 글을 기록했습니다. 이 권에서 그는 창세기를 단순한 문자적 역사로 읽지 않고, 상징적·영적 의미를 탐구하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경이와 찬양을 드러냅니다. 이 장은 그의 신학이 개인적 고백을 넘어 창조론으로 심화되며, 하나님의 손길이 우주와 인간 삶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를 신학적으로 조명합니다.
이 권은 창세기 1장 1-2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이 구절을 깊이 성찰하며 “하늘과 땅이 무엇인가?”(quid est caelum et terra?)라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단순히 물리적 하늘과 지면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배운 상징적 해석법을 적용하여 더 깊은 신학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그는 “하늘은 영적인 세계를, 땅은 물질적인 세계를 상징할 수 있다”(caelum spirituale, terra materialis)고 해석합니다. 그는 “하늘”을 하나님께 가까운 영적 영역—즉, 천사와 영적 존재들이 거하는 천상의 질서—로 간주합니다. 반면, “땅”은 인간이 발로 밟고 살아가는 물질적 세상, 즉 감각과 육체로 경험되는 영역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이 상징적 해석을 통해 창세기가 단순한 창조 기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담긴 깊은 의도를 드러낸다고 믿습니다.
그는 창세기 1장 2절—“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를 묵상하며 창조 이전의 상태를 탐구합니다. 그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형태도 빛도 없었다”(ante creationem nulla forma, nullum lumen erat)고 설명합니다. 그는 “혼돈과 공허”(tohu wa-bohu)를 물질이 아직 질서와 형체를 갖추지 못한 무질서한 상태로 해석합니다. 그는 건축 비유를 들어 “집을 지을 때 처음에는 흙과 돌이 흩어져 있듯, 창조 이전의 땅도 무질서한 원료였다”(sicut aedificium incipitur, terra informis erat)고 묘사합니다. 그는 “흑암”을 빛이 없는 어둠, 즉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로 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Spiritus Dei ferebatur super aquas)는 구절에서 창조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은 창조의 생명력과 능력이다”(Spiritus tuus vita et virtus creationis est)라고 고백하며, 이 영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허를 채우며, 어둠에 빛을 가져왔다고 믿습니다. 그는 이 과정의 신비에 감탄하며 “주님의 영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다”(Spiritus tuus omnia renovavit)고 찬양합니다.
그는 창세기의 “하늘”을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분석합니다. 그는 “태초에 창조된 하늘”(caelum in principio creatum, 창세기 1:1)을 영적 하늘로 해석합니다. 그는 이를 불변하고 영원한 천상의 영역, 즉 하나님의 뜻이 완벽히 구현되는 영적 질서로 봅니다. 그는 “이 하늘은 시간과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다”(caelum aeternum et immutabile)라고 설명합니다. 반면, 그는 창세기 1장 6-8절—“궁창이 있으라 하시니 궁창이 생겼다”—의 하늘을 물질적 하늘로 구분합니다. 그는 이 “궁창”(firmamentum)을 하늘과 땅을 나누는 경계, 즉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하는 푸른 하늘과 구름의 영역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이 두 하늘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계시한다”(duo caela ordum tuum revelant)고 강조하며, 영적 하늘은 하나님의 본질을, 물질적 하늘은 그의 창조적 손길을 반영한다고 묵상합니다.
그는 창조 질서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에 깊이 몰입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Verbo tuo omnia facta sunt)고 고백하며, 창세기의 반복적인 구절—“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땅이 풀을 내라”—를 인용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창조의 능력이다”(Verbum tuum non sonus, sed potentia est)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 말씀이 발해지는 순간 창조가 실현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는 “빛이 생기고, 하늘이 펼쳐지고, 땅이 열매를 맺은 것은 주님의 뜻과 지혜의 결과다”(lumen, caelum, fructus terrae ex voluntate tua facta sunt)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창조의 질서가 단계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그는 “하늘의 별, 땅의 나무, 바다의 물고기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이다”(omnia in amore tuo creata sunt)라며 감격합니다. 그는 자연의 다양성과 조화가 하나님의 지혜를 반영한다고 찬양합니다.
그는 창세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관용적으로 수용합니다. 그는 “어떤 이는 ‘하늘과 땅’을 문자 그대로 물리적 창조로 보고, 어떤 이는 영적·상징적 의미로 해석한다”(quidam literaliter, quidam spiritualiter intelligunt)고 언급합니다. 그는 “어느 해석이든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면 가치 있다”(omnis interpretatio veritatem quaerens valet)고 주장합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물질적 실체로 볼 수도 있고, 영적 질서와 물질 세계의 구분으로 볼 수도 있다”(caelum et terra vel res visibiles vel invisibiles)고 설명하며,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창세기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scriptura ad te nos ducit)라고 강조하며, 진리가 하나이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길은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주님, 당신의 말씀은 끝없는 깊이를 담고 있다”(Verbum tuum profundum est)고 찬양합니다.
그는 창조를 묵상하며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성찰합니다. 그는 “내가 아무리 하늘과 땅의 창조를 생각해도, 그 시작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quantumcumque cogito, initium non plene intellego)고 고백합니다. 그는 “나는 창조된 피조물일 뿐, 창조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creatura sum, non creator)고 인정합니다. 그는 “내가 하늘을 보고 별을 세어도, 그 끝과 처음을 알 수 없다”(caelum specto, stellas numero, finem non capio)고 기록하며, 인간 지성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는 이 한계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 당신을 다 알 수 없어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창조를 묵상하며 찬양합니다”(non te plene scio, sed amo te et laudo te)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이 겸손이 신앙의 근본이라고 믿으며,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나를 인도하신다”(tu omnia scis et me ducis)고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제12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늘과 땅의 창조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하나님의 질서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창세기의 구절을 통해 창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그는 “내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주님께 속해 있다”(in mundo sum, sed tuus sum)고 고백하며, 신앙이 창조 세계로 확장됨을 드러냅니다. 이 권은 그의 신학에서 창조론의 깊이를 더하며,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과 질서를 신학적으로 조명합니다.
이 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깊은 통찰과 겸손한 신앙을 생생히 담아냅니다. 그는 창조의 신비를 탐구하며 인간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더 깊이 찬양합니다. 그는 “주님, 당신의 창조는 끝없는 경이다”(creatio tua infinita est)라고 기도하며, 신앙의 경외를 표현합니다. 제12권은 그의 신앙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열리는 시기로, 철학적·신학적 묵상이 얽혀 창조의 깊이를 제시합니다.
제12권은 그의 신앙 여정에서 개인적 고백을 넘어 창조의 신비로 초점을 옮기며, 신앙이 우주적 차원에서 성숙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히포에서의 묵상을 통해 “주님, 당신이 만드신 하늘과 땅 속에 제가 있습니다”(in caelo et terra tua ego sum)라고 고백하며, 창조 질서에 대한 깨달음과 평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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