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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모든 지식과 관련된다. (Caput I: Omnia ad Dei cognitionem referri)

by modeoflife 2025. 3. 29.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16세기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신학적 걸작으로, 기독교 신앙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정립을 목표로 합니다. 이 저작은 칼빈이 27세에 불과했던 1536년에 초판을 출간한 이래, 그의 생애 동안 여러 차례 개정되어 1559년 최종판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제1권 제1장 "Omnia ad Dei cognitionem referri"는 이 방대한 작품의 첫 페이지로, 모든 지식과 인간의 삶이 하나님을 아는 것(Dei cognitio)에 근거해야 한다는 칼빈의 신학적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은 단순한 서론이 아니라, 칼빈의 신본주의적 세계관을 명확히 제시하며 이후 전개될 주제들—창조, 섭리, 인간의 타락, 구속, 은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신학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칼빈은 이 장에서 신앙과 지성,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그의 신학이 단순히 학문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진리로 기능함을 강조합니다.

칼빈은 이 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의 자기 인식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을 참되게 이해하려면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서, 자신의 본질, 목적, 한계를 오직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인간이 자신의 죄성, 연약함, 비참함(miseria)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전능하심, 지혜, 은혜를 인식하게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무능력과 영적 빈곤을 직면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의로움과 구원의 필요성을 갈구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 인식(cognitio Dei)과 자기 인식(cognitio sui)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상호작용을 합니다. 칼빈은 이런 관계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간은 자신의 참모습을 결코 볼 수 없다"고 단호하게 표현하며, 인간의 자아가 하나님의 빛 아래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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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는 초대교회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면 나를 알 수 없다"는 고백을 통해 인간의 자기 이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한다고 보았는데, 칼빈은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왜곡된 자기 인식이 하나님의 계시—특히 성경—를 통해 바로잡힌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중세 스콜라주의 복잡한 철학적 논쟁과 대비됩니다. 스콜라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신학에 접목시켜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의를 전개했지만, 칼빈은 이를 비판하며 성경에 기반한 실천적이고 직관적인 신학을 제시합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유일한 권위임을 강조하며, 인간의 이성이 타락으로 인해 손상되었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칼빈은 더 나아가 모든 지식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는 "Summa fere sapientiae nostrae, quae vera demum ac solida sapientia censeri debet, duabus partibus constat: Dei cognitione et nostri"라는 문장을 통해 이를 요약합니다. 이 문장은 "우리의 지혜의 거의 전부, 즉 참되고 견고한 지혜로 여겨져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구성된다"는 뜻으로, 칼빈의 신학적 신념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신학적 지식뿐 아니라 세상 모든 학문, 예술, 경험—자연과학, 철학, 도덕론 등—이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르네상스 시대는 인본주의(humanism)의 물결 속에서 인간의 이성과 창의력을 극찬하며 세속적 지식의 자율성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적 탐구나 에라스뮴스의 인문학적 저작은 인간의 능력을 중심에 두었지만, 칼빈은 이에 정면으로 반대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지식이 방향을 잃고 결국 허무와 혼란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경고하며, 모든 지적 탐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이는 그의 신학이 철저히 신본주의(theocentric)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장의 역사적 배경은 칼빈의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기독교 강요 초판이 출간된 1536년은 종교개혁이 본격화되던 시기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95개 조항을 발표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타락—성직 매매, 면죄부 판매, 교황의 세속적 권력 남용—에 반기를 든 이후 약 2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칼빈은 프랑스에서 박해를 피해 스위스 바젤로 피신한 상황에서 이 책을 집필했으며,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개혁 신앙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헌정했습니다. 제1장은 이런 맥락에서 중세 교회의 신학적 왜곡—교황의 권위, 성인 숭배, 전통의 우위—을 비판하며, 성경을 신앙과 지식의 유일한 근거로 삼는 개혁 신학의 출발점을 제시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단순히 교리적 명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실천적 진리임을 강조하며, 신앙이 개인과 공동체의 도덕적·영적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칼빈의 주장은 실천적 함의를 지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론적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삶과 공동체적 책임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비로소 겸손, 순종,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기독교 강요의 후속 장들에서 다룰 주제—하나님의 창조 질서, 섭리의 운행, 인간의 구속과 성화—를 이해하기 위한 철학적·신학적 열쇠로 작용합니다. 제1장은 독자들에게 신앙과 지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며,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칼빈은 이 장을 통해 신학이 단순히 학자들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평신도와 목회자 모두에게 실천적 삶의 지침이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이 장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 칼빈은 과학, 철학, 예술 등 세속적 지식이 신앙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이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태도를 상기시킵니다. 예를 들어, 현대 과학이 우주의 법칙을 탐구할 때, 칼빈의 관점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경고한 "하나님을 떠난 삶과 지식은 허무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는,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방향성을 잃기 쉬운 현실을 비판하는 데 유효합니다. 칼빈의 주장은 신앙이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가정, 직업, 사회—을 관통하는 통합적 원리임을 보여줍니다.

다만, 칼빈의 주장에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그의 신본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자율성을 억압한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은 세속적 지식의 독립적 가치를 인정했지만, 칼빈은 이를 배격해 현대 과학이나 철학의 자율성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죄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긍정적 잠재력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다문화적 세계에서 비기독교 지식 체계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제기됩니다.

결론적으로, 제1장 "Omnia ad Dei cognitionem referri"는 칼빈 신학의 신본주의적 토대를 강렬하게 제시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모든 지식의 시작이자 끝이며, 인간의 삶과 학문이 이를 중심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주장은 종교개혁의 실천적 선언으로서 신앙과 지성의 통합을 촉구하며, 시대를 초월해 신앙의 본질을 고민하게 합니다. 비판이 있음에도, 이 장은 신학적 여정의 출발점으로서 독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삶을 변화시키는 근원적 진리임을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기독교 강요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