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어느 날, 주님 예수께서 감람산에 앉으시어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주여, 주의 나라가 언제 임하시나이까?”라 묻자(마태복음 24:3), 그는 권위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보리라.”(마태복음 24:30-31) 부활하신 후, 그는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며 구름에 싸이셨고, 천사들이 나타나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이 예수가 다시 오시리라”고 선포했습니다(사도행전 1:9-11). 요한은 계시의 환상에서 주님을 뵈었고,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요한계시록 22:12). 그의 눈은 불꽃 같고(요한계시록 1:14), 왕의 왕으로서 심판과 구원의 주권을 쥐고 계셨습니다. 예수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으며(마태복음 28:20), 그의 재림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실 확실한 날입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하나님의 주권적 약속으로 분명히 증언합니다. 요한계시록 22:12에서 예수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서 심판과 구원을 완성하실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5:31-32에서 예수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리니… 만민 앞에 심판하리라”고 하셨고, 이는 재림이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의 절정을 이룸을 보여줍니다.
예수의 부활은 재림 약속의 확실한 초석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23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라”며, 부활이 재림의 첫 열매임을 증거합니다. 사도행전 1:9-11은 예수가 구름 속으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오신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시리라”고 확인하며, 재림의 물리적·보이는 성격을 보장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에서 바울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시리니”라며, 재림이 우주적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신약 전반에 걸친 증언은 이 약속을 강화합니다. 요한복음 14:2-3에서 예수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9:28은 “두 번째 나타나심은 죄를 위한 것이 아니요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라”며 재림의 구원적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베드로후서 3:10은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라며, 재림이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심판임을 경고합니다. 이 일관된 증언은 재림의 확실성을 다층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초기 교회의 신앙은 이 믿음을 실천으로 입증합니다. 고린도전서 16:22의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는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기도였고, 빌립보서 3:20-21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주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며 신자들이 재림을 삶의 소망으로 삼았음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3:20-21은 “주께서 예수를 보내시리니 그는 만물이 회복되기까지 하늘에 계셔야 하리라”며, 재림이 우주의 궁극적 갱신과 연결됨을 증거합니다.
구약의 예언은 재림의 뿌리를 제공합니다. 요엘 2: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리라”—는 재림의 전조를 예고하며, 말라기 4:1-2는 “주의 날이 이르리니… 의의 태양이 떠올라 치료를 베푸리라”고 하여 심판과 구원의 이중성을 예언합니다. 다니엘 7:13-14는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받으시리라”며, 예수의 재림이 구약의 메시아 약속의 완성임을 입증합니다. 이 예언들은 신약에서 예수로 성취되었으며(마태복음 26:64), 구속사의 연속성을 강화합니다.
역사적 증언도 이를 지지합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미래의 구원과 그의 귀환”을 믿었다고 기록했습니다(Antiquities of the Jews, 18.1.6). 초대교부 유스티누스 마터는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심판하신다”고 주장하며(Dialogue with Trypho, 49), 초대교회의 확신을 전합니다. 2세기 이레나이우스도 이단 반박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며(Against Heresies, 5.28.3), 재림 신앙의 보편성을 확인합니다.
더 나아가, 재림의 증거는 그 목적과 필연성에서 분명합니다. 요한계시록 1:7—“모든 눈이 그를 보리니 그를 찌른 자들도 그리하리라”—는 재림이 심판과 구원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최종 계시임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재림이 복음 전파의 결론임을 뜻하며, 반론—예컨대 지연(베드로후서 3:4)—은 “주의 하루가 천 년 같고”(베드로후서 3:8)라며 하나님의 때에 따른다고 답합니다.
따라서 신약의 약속, 부활의 증거, 천사의 확인, 사도들의 증언, 초기 교회의 소망, 구약의 예언, 역사적 신앙, 재림의 목적은 예수가 다시 온다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확실한 계획입니다.
예수가 다시 온다는 주장에는 강력한 반대 의견이 존재합니다.
첫째, 예수가 재림한다면 왜 2천 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지 않았을까요? 베드로후서 3:4에서 이미 초기 회의론자들이 “그가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했듯, 긴 지연은 약속의 신뢰성을 의심케 합니다. 2023년 기준, 기독교가 시작된 이후 70대가 넘게 지났음에도(마태복음 24:34,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재림의 흔적은 없습니다. 이는 재림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잘못된 기대임을 시사합니다.
둘째, 유대교는 예수의 재림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신명기 13:1-5는 “거짓 선지자가 표적을 보이며 따르라 하면 듣지 말라”며,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랍비 문헌 탈무드는 “메시아가 오면 평화가 임한다”고 하며(Sanhedrin 98a), 예수 이후 전쟁과 고난이 계속된 현실을 들어 그의 메시아 자격과 재림을 배척합니다. 유대교는 미완의 구속사를 주장하며 재림 신앙을 거부합니다.
셋째, 이슬람은 예수의 재림을 인정하지만(꾸란 43:61, “그가 심판의 날 전조가 되리라”), 기독교와 달리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지 않고, 단지 선지자로서 이슬람의 승리를 돕는다고 봅니다(하디스, Sahih Muslim 2937a). 힌두교는 윤회와 카르마로 세상의 끝을 부정하며, 불교는 열반을 통해 종말론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타 종교의 상충된 해석은 재림의 보편성을 약화시킵니다.
넷째, 회의론자들은 재림을 신화적 상상으로, 부활을 허구로 치부합니다. 데이비드 흄(기적에 관하여)은 부활과 재림 같은 초자연적 사건을 자연법칙 위반으로 간주하며, 역사적 증거 부족을 지적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재림을 “종교적 망상”이라며, 부활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판합니다. 토마스 페인(이성의 시대)은 성경의 종말 예언을 고대인의 공상으로 일축하며, 재림 신앙을 비이성적 믿음으로 봅니다.
다섯째, 현대 과학은 재림과 종말을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으로 간주합니다. 스티븐 호킹(시간의 간략한 역사)은 우주의 종말이 열역학적 붕괴로 올 수 있으나, 초자연적 개입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2022년 NASA 보고서(James Webb Telescope Data)는 우주가 138억 년간 안정적임을 보여주며, “하늘이 떠나간다”(베드로후서 3:10)는 묘사를 물리적으로 터무니없다고 봅니다. 진화생물학자 J.B.S. 홀데인은 생명과 우주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재림 같은 단절을 부정합니다.
여섯째, 성경 자체의 모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마태복음 16:28—“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느니라”—는 1세기 재림을 예고했으나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의 “우리 살아남은 자가 공중으로”는 초기 신자들이 당대 재림을 기대했음을 보여주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요한계시록 1:7—“모든 눈이 그를 보리라”—와 달리, 역사에 그런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 증거가 부족합니다. 2021년 글로벌 재난(기후 위기, 팬데믹)에도 재림의 표징은 없었고(출처: UN Climate Report, 2021), 기독교 내부에서도 재림 시기에 대한 분쟁(예: 밀레니엄 논쟁)이 계속됩니다. 초기 교회의 “마라나타”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요세푸스의 기록도 추종자들의 희망일 뿐 객관적 증거가 아닙니다. 따라서 지연, 타 종교의 반대, 회의론, 과학적 불가능성, 성경 모순, 증거 부족은 예수가 다시 온다는 주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재림을 인간의 시간이나 세상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의 신적 약속을 오해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2천 년 지연과 베드로후서 3:4의 회의는 재림의 실패를 뜻하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8-9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니…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하사 오래 참으심이니라”며, 지연이 하나님의 인내와 구원의 때임을 밝힙니다. 마태복음 24:36—“그 날과 그 때는 아들까지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는 재림의 시점이 인간의 예측을 초월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강조합니다. 지연은 약속의 취소가 아니라,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한 준비입니다(마태복음 24:14).
둘째, 유대교의 부정(신명기 13:1)은 재림의 진리를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이사야 9:6-7과 다니엘 7:13-14는 메시아가 영원한 평화와 권세로 오실 것을 예언하며, 요한계시록 19:11-16은 예수가 “충신과 진실로 심판하며 싸우러 오시는 왕”으로 재림함을 증거합니다. 유대교가 예수를 첫 번째 오심에서 거부했으나, 로마서 11:25-26—“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 후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재림에서 유대인도 포함될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줍니다. 평화가 아직 없다는 지적은 재림이 미래의 완성임을 오해한 것입니다.
셋째, 이슬람(꾸란 43:61)과 타 종교의 상충은 재림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와 사도행전 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는 예수가 유일한 구원의 주임을 선언하며, 타 종교의 해석을 초월합니다. 이슬람이 예수를 선지자로 낮추고, 힌두교와 불교가 종말을 부정해도, 요한계시록 1:7—“모든 족속이 그를 찌른 것을 보고 통곡하리라”—는 재림의 보편적 실현을 보장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믿음 여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넷째, 회의론자(흄, 도킨스, 페인)의 비판—초자연적 허구, 망상—is 재림을 자연주의로만 재단한 결과입니다. 고린도전서 15:3-6은 부활을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증거된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며, 흄의 기적 회의를 무력화합니다. 로마서 1:4—“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느니라”—는 재림의 근거인 부활의 확실성을 입증합니다. 도킨스와 페인의 철학은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이사야 55:8-9,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니라”)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섯째, 현대 과학(호킹, NASA)의 반대는 재림의 초자연적 본질을 무시합니다. 창세기 1:1과 요한복음 1: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는 우주를 창조하신 예수께서 그 법칙을 초월해 재림하심을 보여줍니다. 베드로후서 3:10—“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리라”—는 과학적 설명을 넘어선 하나님의 개입을 묘사하며, 마태복음 19:26—“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다 가능하니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신 권능을 증거합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계획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 성경 내 모순(마태복음 16:28, 데살로니가전서 4:17)은 문맥을 오해한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16:28은 “인자가 그의 왕국에 오는 것을 볼 자들”을 뜻하며, 직후의 변화산 사건(마태복음 17:1-8)에서 예수의 영광이 부분적으로 드러났다고 보수적 학자들은 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의 “살아남은 자”는 바울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재림 시 살아있는 모든 신자를 포함합니다(고린도전서 15:51-52). 요한계시록 1:7은 미래의 보편적 사건으로, 아직 성취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하박국 2:3).
마지막으로, 현실적 증거 부족(재난 미실현, 밀레니엄 논쟁)은 재림의 약속을 반증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6-8—“전쟁과 지진은 해산의 고통의 시작이라”—는 재난이 표징의 일부일 뿐, 즉각적 재림을 뜻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0:37—“오실 이가 속히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을 보장합니다. 초기 교회의 “마라나타”는 소망의 표현이며, 요세푸스의 기록은 그 신앙의 역사적 뿌리를 확인합니다. 재림 시기 논쟁은 인간의 추측일 뿐, 약속의 본질을 흔들지 않습니다(마태복음 24:42, “깨어 있으라”).
결론적으로, 지연, 타 종교, 회의론, 과학, 성경 해석, 증거 부족은 재림을 세상적 관점에서만 본 단견입니다. 신약의 약속, 부활의 증거, 예언의 성취, 초대교회 신앙, 하나님의 주권은 예수가 다시 온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불변의 계획입니다.
예수가 다시 온다는 믿음은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매일 기도하며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 보세요. 둘째, 이웃에게 복음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재림 소망을 전해보세요. 셋째, 하루 한 번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는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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