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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교회를 세운다” (에베소서 4:16)

by modeoflife 2025. 3. 15.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락하고 상호 관련을 가진 것과 같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자라나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야기: 예수의 사랑의 공동체

 

어느 날, 주님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피로에 지쳤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능으로 오병이어를 나누시며(요한복음 6:9-1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34).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자(사도행전 2:1-4),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모든 것을 공유하며” 서로를 섬겼습니다(사도행전 2:44-45). 어느 날, 가난한 과부가 도움을 구하자,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재산을 팔아 나눠주며 빈궁한 자가 없게 하였다”는 말씀을 실천하며 그녀를 공동체로 맞이했습니다(사도행전 4:34-35). 예수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가 저들을 사랑한 것 같이 저들을 사랑하소서”라 기도하시며(요한복음 17:23), 그 구속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묶으셨습니다. 이 사랑은 죄로 갈라진 마음을 치유하며,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거룩한 전으로 만드셨습니다(에베소서 2:21-22).

 

논증: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는 증거

 

신약 성경은 사랑이 교회를 세우는 근본적 기반임을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에베소서 4:16에서 바울은 “그에게서 온 몸이…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쓰며,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주시는 사랑이 각 지체를 연결하고 성장시킨다고 밝힙니다. 이는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줍니다. 요한일서 4:16—“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이 사랑이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되어 교회에 임함을 입증합니다.

 

예수께서도 사랑을 교회의 토대로 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7:23에서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저희로 온전케 되어 하나가 되게 하사”라 기도하셨고, 이 사랑의 연합이 교회의 본질을 형성했습니다. 사도행전 2:42-47은 오순절 이후 초기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며 모든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기록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랑이 공동체를 세우고 확장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4:32-35는 “믿는 무리의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매 빈궁한 사람이 없게 하였다”며, 사랑이 실천으로 나타나 교회를 튼튼히 세웠음을 증거합니다.

 

 

이 사랑은 섬김과 희생으로 구체화됩니다. 갈라디아서 5:13—“사랑으로 종노릇 하라”—는 교회가 자유를 사랑으로 섬기는 데 사용함을 강조하며, 빌립보서 2:2-3은 “마음을 같이하여 사랑 안에서 한 뜻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13:13에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항상 있을 것이요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여, 사랑이 교회의 모든 덕을 완성하는 핵심임을 선포합니다. 골로새서 3:14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이는 온전케 하는 띠니라”며, 사랑이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로 묶고 성숙하게 하는 필수 요소임을 입증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랑이 교회의 표징임을 분명히 합니다. 요한복음 13:34-35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고, 이 사랑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완성되었습니다(요한복음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 구속의 사랑은 교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었으며, 에베소서 5:25-27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라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 없게 세워졌음을 강조합니다.

 

구약의 뿌리도 이 사랑의 연속성을 뒷받침합니다. 레위기 19:18—“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 신약에서 예수에 의해 “새 계명”으로 승화되었고(요한복음 13:34), 로마서 13:10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며 구속사의 통일성을 드러냅니다. 호세아 2:19—“내가 인자와 사랑으로 너를 정혼하리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백성을 세우는 예표로, 신약 교회에서 꽃피웠습니다.

 

역사적 증언도 이를 지지합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사랑으로 놀라운 연합을 이루었다”고 기록했습니다(Antiquities of the Jews, 18.1.6). 초대교부 터툴리안은 변증론에서 “보라, 저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라며(Apology, 39), 이방인들이 교회의 사랑을 보고 감탄했다고 전합니다. 2세기 디오그네투스 서신은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사랑으로 돌본다”고 묘사하며(Epistle to Diognetus, 5), 사랑이 교회를 세우는 실질적 힘임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사랑은 교회의 본질적 성장과 회복을 이끕니다. 고린도전서 12:25-26은 “지체가 서로 돌보아…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하느니라”며, 사랑이 교회의 상호 의존성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4:8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며, 사랑이 갈등을 치유하고 공동체를 새롭게 함을 증거합니다. 반론—예컨대 교회 내 분쟁(고린도전서 1:11)—은 인간의 연약함일 뿐,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마태복음 5:48)이 교회를 궁극적으로 세움은 변함없습니다.

 

따라서 신약의 증언, 예수의 기도와 희생, 초기 교회의 실천, 구약의 예표, 역사적 기록, 사랑의 치유력은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비롯되어, 교회를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로 세우는 영원한 능력입니다.

 

반증(반대 주장): 정말 사랑이 교회를 세우나?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는 주장에는 강력한 반대 의견이 존재합니다.

 

첫째,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면 왜 교회 역사 내내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을까요? 고린도전서 1:11-12는 초기 교회조차 “내가 바울을, 내가 아볼로를” 따르는 파벌로 나뉘었고, 1054년 동서 교회 대분열, 16세기 종교개혁, 2021년 미국 감리교회(UMC) 분리(출처: UMC News, 2021) 등은 사랑이 교회를 하나로 세우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2023년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Religious Conflict”)는 기독교 내 분쟁이 여전히 증가 중이라며, 사랑의 실효성을 의심케 합니다.

 

둘째, 유대교는 율법과 언약이 공동체를 세운다고 보며 사랑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반박합니다. 신명기 6:4-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사랑을 명령하지만, 율법 준수(레위기 18:5)가 백성을 유지한다고 강조합니다. 랍비 문헌 미쉬나는 “토라 연구가 공동체의 기초”라며(Abot 1:2), 사랑을 보조적 역할로 격하시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는 교회 자체를 사랑의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

 

셋째, 이슬람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며 사랑의 역할을 부정합니다. 꾸란 3:85—“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찾는 자는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리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배척하고, 꾸란 5:51은 “기독교인을 친구로 삼지 말라”며 사랑의 연합을 거부합니다. 이슬람은 알라에 대한 복종(꾸란 2:136)이 공동체를 세운다고 보며, 예수의 사랑을 보편적 기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힌두교도 사랑을 개인적 카르마로, 불교는 연기법으로 해석하며 교회 성장과 무관하다고 봅니다.

 

넷째, 회의론자들은 사랑을 감정적 착각으로, 교회 성장을 우연이나 권력으로 치부합니다. 데이비드 흄(종교에 관한 대화)은 사랑의 초월성을 회의하며, 교회가 사회적 필요로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사랑은 생물학적 본능”이라며, 교회 성장이 선교의 강요나 정치적 동맹(예: 로마제국 콘스탄틴 시대) 결과라고 비판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선악의 저편)는 기독교 사랑을 “약자의 도피처”라 조롱하며, 공동체 형성에 실질적 힘이 없다고 봤습니다.

 

다섯째, 현대 사회학과 인류학은 교회를 조직적 구조로 보며 사랑보다 제도가 세운다고 주장합니다. 막스 베버(종교사회학)는 교회가 카리스마에서 관료제로 전환하며 성장했다고 분석하며, 사랑을 초기 동력일 뿐 지속적 기반이 아니라고 봅니다. 2022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는 교회 참여가 신앙(34%)보다 사회적 연결(58%)에 의존한다고 밝히며, 사랑의 역할을 축소합니다. 에밀 뒤르켐(종교생활의 기본 형태)은 공동체가 “집단적 표상”으로 세워진다고 하여, 사랑을 구조적 요인에 종속시킵니다.

 

여섯째, 성경 자체의 모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에베소서 4:16이 “사랑 안에서 세운다”고 하지만, 고린도전서 3:3은 “너희가 분쟁과 시기하는 자가 있도다”며 사랑의 실패를 드러냅니다. 빌립보서 2:2-3은 “사랑으로 하나 되라”고 간청하지만, 이는 이미 분열이 존재했음을 암시합니다. 디모데후서 3:2-4는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교만하리라”고 예언하며, 사랑이 교회를 약화시킬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반증에 대한 반박: 의문에 대한 치밀한 답변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사랑을 인간적 한계나 외적 결과로만 판단하며,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과 교회의 영적 본질을 오해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갈등과 분열(고린도전서 1:11-12, 동서 분열, UMC 분리)이 사랑의 실패를 뜻한다고 보지만, 이는 교회를 세우는 사랑이 인간의 실수가 아닌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임을 간과합니다. 에베소서 5:25-27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하여 자신을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며, 교회가 인간의 분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으로 세워졌음을 밝힙니다. 고린도전서 1:10에서 바울은 분열을 책망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라”고 촉구하지만, 이는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그 능력을 실천하라는 권면입니다. 요한복음 16: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분열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승리함을 보증합니다.

 

둘째, 유대교의 율법 중심 주장(신명기 6:4-5)은 사랑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9:18—“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율법 안에 사랑이 이미 포함됨을 보여주며, 예수께서 이를 “새 계명”으로 완성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34). 로마서 13:10—“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는 사랑이 율법을 초월하여 교회를 세우는 더 큰 능력임을 입증합니다. 유대교가 예수를 거부해도, 이사야 53:5와 호세아 2:19는 사랑으로 백성을 세우는 하나님의 계획을 예표하며, 신약에서 교회로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이슬람(꾸란 3:85)과 타 종교의 반대는 사랑의 보편성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4:9-10—“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하려 하심이니”—는 교회를 세운 사랑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임을 선언합니다. 이슬람이 복종을, 힌두교가 카르마를 강조해도,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사랑이 모든 이를 품는 구속의 근거로, 교회를 하나님의 뜻으로 세웁니다. 사도행전 17:26-27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찾게 하신 사랑의 목적을 드러냅니다.

 

넷째, 회의론자(흄, 도킨스, 니체)의 비판—감정적 착각, 강요, 약자의 도피처—은 사랑을 물질적 잣대나 철학으로만 본 결과입니다. 고린도전서 13:4-7—“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는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교회를 세움임을 보여줍니다. 로마서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는 사랑이 십자가의 실체로 증명됨을 입증합니다. 선교의 과오도 인간의 연약함일 뿐, 고린도전서 1:25—“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강하니라”—는 회의론을 무력화합니다.

 

다섯째, 사회학(베버, 뒤르켐)의 구조 중심 주장은 교회의 초월적 본질을 무시합니다. 에베소서 4:15-16—“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라가리니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는 교회가 제도나 사회 연결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워짐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2:44-47의 초기 교회는 조직 없이 사랑으로 자발적 연합을 이루었고, 계시록 21:2는 교회가 “신부”로 준비됨을 예언하며 사랑의 영원한 역할을 증거합니다. 세계가치관조사의 사회적 연결도 사랑의 열매일 뿐, 그 근원이 아닙니다.

 

여섯째, 성경 내 갈등(고린도전서 3:3, 디모데후서 3:2-4)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죄성을 드러냅니다. 베드로전서 4:8—“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는 사랑이 갈등을 치유하며 교회를 새롭게 함을 보여줍니다. 빌립보서 2:2의 간청은 사랑이 이미 교회 안에 존재하나 실천이 필요함을 뜻하며, 히브리서 12:2—“그리스도께서 고난을 참으사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시니라”—는 사랑의 궁극적 승리를 보장합니다. 말세의 타락도 사랑의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속 구원의 확증입니다(요한계시록 3:19).

 

마지막으로, 현실적 약화(코로나 갈등, 헌금 감소)는 사랑의 본질을 반증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6:18—“지옥의 문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외적 도전에도 사랑으로 세워진 교회가 흔들리지 않음을 약속합니다. 사도행전 20:35—“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사랑의 실천이 경제적 요인을 초월함을 보여줍니다. 박해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한 역사(출처: Eusebius, Church History, 3.1)는 사랑이 고난을 이기는 힘임을 증거합니다.

 

결론적으로, 갈등, 타 종교, 회의론, 구조적 분석, 성경 해석, 현실적 도전은 사랑을 인간적 관점에서만 본 단견일 뿐입니다. 신약의 증언, 그리스도의 희생, 성령의 역사, 구속사의 연속성, 초대교회 실천은 사랑이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고히 합니다. 이 사랑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으로 영원히 세웁니다.

 

적용: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는 믿음의 실천

 

사랑이 교회를 세운다는 믿음은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 안에서 갈등이 있을 때 서로를 용서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 보세요. 둘째, 하루 한 번 가족이나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작은 도움을 주세요. 셋째, 공동체 모임에서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며 기도와 격려를 나누어 보세요. 이는 사랑이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을 삶으로 드러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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