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어느 날, 주님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무릎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의 땀이 땅에 떨어질 때 피와 같이 되셨고(누가복음 22:44),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라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며(마태복음 26:39),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끌려가며 채찍에 맞고 조롱당하셨으나(요한복음 19:1-3), 그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 외치시며(요한복음 19:30),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믿음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스데반은 박해 속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 기도했고(사도행전 7:59),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수의 믿음은 고난을 초월하여 승리로 이끌었고,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는 거룩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은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지속하며 승리함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2:1-2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인내로써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며, 예수께서 믿음의 완성자이심을 선언합니다. 히브리서 12:2는 예수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고 하여, 믿음이 고난을 넘어 끝까지 가는 모범임을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24:13에서 예수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고, 이는 믿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길임을 보장합니다.
예수의 사역은 믿음의 궁극적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22:42—“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는 겟세마네에서의 순종으로, 요한복음 19:30—“다 이루었다”—는 십자가에서 믿음이 구속의 승리를 이루었음을 선포합니다. 로마서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는 그의 믿음이 인류를 위한 희생으로 끝까지 갔음을 입증하며, 고린도전서 15: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는 부활로 믿음의 완성을 확인합니다.
초기 교회의 실천은 이 증언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사도행전 14:22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며 박해 속 믿음의 인내를 강조하고, 사도행전 7:59-60은 스데반이 순교하며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 기도한 것을 기록하며 믿음이 죽음까지 갔음을 보여줍니다. 디모데후서 4:7-8에서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의의 면류관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으리라”며, 믿음이 고난과 박해를 넘어 끝까지 지속됨을 증거합니다. 빌립보서 1:6—“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리라”—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끝까지 보존하심을 보장합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조들은 이 진리의 뿌리입니다. 히브리서 11:8-9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부르심을 순종하여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 거하였도다”며, 보이지 않는 소망을 향한 인내를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11: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는 믿음이 현세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음을 보여줍니다. 하박국 2:4—“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약의 핵심 원리가 로마서 1:17—“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으로”—로 신약에서 실현되며, 믿음이 구속사의 영원한 법칙임을 입증합니다.
신약의 약속과 가르침은 믿음의 지속성을 더합니다. 요한복음 10:28-29—“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는 예수께서 믿는 자를 끝까지 지키심을 보장하며, 히브리서 10:23—“소망의 고백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으라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믿음을 유지시킴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1:12—“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나니…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시련을 이기고 끝까지 가는 보상을 약속합니다.
역사적 증언도 이를 지지합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고난과 죽음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다”고 기록했습니다(Antiquities of the Jews, 18.1.6). 초대교부 폴리캅은 순교 직전(AD 155) “나는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겼고 그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며(Polycarp’s Martyrdom, 9), 믿음이 끝까지 간 증거를 남겼습니다. 4세기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끝까지 인도한다”며(Confessions, 8.12), 신학적 확신을 더했습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끝까지 감은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의 중보로 보장됩니다. 로마서 8:38-39—“죽음이나 생명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는 어떤 고난도 믿음을 꺾지 못함을 증거하며, 히브리서 7:25—“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는 예수의 중보가 믿음을 끝까지 완성함을 보장합니다. 반론—예컨대 믿음의 실패(마태복음 26:75)—은 베드로의 회복(요한복음 21:17)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믿음을 회복시킴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신약의 증언, 예수의 모범, 초기 교회의 인내, 구약의 예표, 약속의 보장, 역사적 신앙, 하나님의 주권은 믿음이 끝까지 간다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으로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심을 확증합니다.
믿음이 끝까지 간다는 주장에는 강력한 반대 의견이 존재합니다.
첫째, 믿음이 끝까지 간다면 왜 수많은 신자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믿음을 포기할까요? 2022년 바나 그룹 조사(Barna Group, “Faith Abandonment Trends”)는 미국 기독교인의 25%가 팬데믹 이후 교회를 떠났다고 밝히며, 믿음이 지속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26:56—“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는 초기 신자들도 믿음이 흔들렸음을 드러내고, 믿음이 끝까지 가지 못하는 사례를 암시합니다.
둘째,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며 믿음의 완성을 의심합니다. 신명기 13:5—“거짓 선지자를 따르지 말라”—를 근거로 예수의 사명을 거부하고, 탈무드는 “메시아가 오면 고난이 끝난다”며(Sanhedrin 97b), 예수 이후 지속된 고난을 들어 믿음의 끝까지 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유대교는 토라의 율법이 믿음의 진정한 기초라 주장합니다.
셋째, 이슬람은 믿음이 예수의 사명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알라의 의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꾸란 2:256—“종교에 강요가 없나니”—는 믿음이 개인의 인내가 아닌 신의 결정에 좌우됨을 강조하며, 꾸란 5:48은 각 공동체에 다른 율법이 주어졌다고 하여 예수의 보편적 완성을 제한합니다. 힌두교는 믿음을 업보에, 불교는 무아에 묶어 기독교의 끝까지 가는 믿음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넷째, 회의론자들은 믿음을 약한 희망으로, 인내를 비현실적 허구로 치부합니다. 데이비드 흄(인간 본성론)은 믿음을 경험적 증거 없는 맹목적 신뢰로 비판하며, 고난 속 인내가 비이성적이라고 봅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믿음을 “현실 회피”라며, 끝까지 간다는 주장이 생물학적·사회적 압박에 무너진다고 주장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기독교 믿음을 “약자의 도덕”이라 조롱하며, 고난을 이기는 힘으로서의 인내를 부정합니다.
다섯째, 현대 심리학과 과학은 믿음이 고난을 이기지 못한다고 보며 인내를 비현실적으로 간주합니다. 2021년 미국심리학회(APA) 연구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종교적 믿음이 40%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불안을 증가시켰다고 밝히며(Psychological Bulletin, 2021), 믿음이 인내로 이어지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뇌과학자 샘 해리스(자유 의지의 종말)는 인간 의지가 생물학적 요인에 지배된다며, 믿음의 지속성이 환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핀커는 고난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며, 끝까지 가는 믿음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여섯째, 성경 자체의 모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히브리서 12:1-2는 “인내로 경주하라”고 하지만, 마태복음 27:46—“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예수조차 고난 속에서 흔들린 순간을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39—“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었도다”—는 믿음의 사람들이 끝까지 가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갈라디아서 5:7—“너희가 잘 달리다가 막히었도다”—는 믿음이 중단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 증거가 부족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동안 교회 폐쇄와 신앙 위기(출처: Pew Research, “Pandemic Faith Decline,” 2021)는 믿음이 고난을 이기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 로마 박해(AD 64-313)에서도 많은 신자가 배교했고(출처: Eusebius, Church History, 3.17), 요세푸스의 기록은 희망일 뿐 믿음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앙 포기, 타 종교의 반대, 회의론, 심리학적 한계, 성경 모순, 증거 부족은 믿음이 끝까지 간다는 주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믿음을 인간의 연약함이나 세상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의 구속 능력을 오해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신앙 포기(Barna 25%, 마태복음 26:56)가 믿음의 실패를 뜻한다고 보지만, 이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간다는 본질을 간과합니다. 요한복음 10:28-29—“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는 예수께서 참된 믿음을 끝까지 지키심을 보장합니다. 마태복음 24:13—“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인간의 인내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성됨을 뜻하며, 베드로의 배신(마태복음 26:56)은 요한복음 21:17—“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로 회복되어 믿음이 다시 끝까지 감을 증거합니다.
둘째, 유대교의 반대(신명기 13:5)는 믿음의 완성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박국 2:4—“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약부터 믿음의 지속성을 예고하며, 히브리서 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는 예수를 통한 믿음이 하나님의 뜻임을 증거합니다. 로마서 11:23—“하나님이 능히 다시 접붙이실 것이니라”—는 유대인도 재림 시 믿음으로 돌아올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줍니다. 고난의 지속은 새 세상 이전 과정일 뿐입니다(로마서 8:18).
셋째, 이슬람(꾸란 2:256)과 타 종교의 다른 해석은 믿음의 끝까지 감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2—“예수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시니”—는 예수가 믿음의 유일한 근원임을 선언하며, 요한복음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타 종교의 주장을 초월합니다. 이슬람의 하나님의 뜻 강조나 힌두교·불교의 상대주의는, 로마서 3:22—“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로 무력화되며, 믿음은 예수의 구속으로 끝까지 갑니다.
넷째, 회의론자(흄, 도킨스, 니체)의 비판—맹목적 신뢰, 현실 회피, 약자의 도덕—은 믿음을 세상적 이성으로만 본 결과입니다. 고린도전서 1:25—“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나으리라”—는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증거하며, 로마서 1:16—“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니라”—는 인내의 실체를 입증합니다. 히브리서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는 도킨스와 니체의 회의를 넘어 믿음이 끝까지 가는 초월적 힘임을 보여줍니다.
다섯째, 현대 심리학(APA 40%, 해리스, 핀커)의 반대는 믿음의 영적 본질을 무시합니다. 빌립보서 4:7—“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지키리라”—는 믿음이 심리적 압박을 초월함을 증거하며, 고린도후서 12:9—“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을 유지시킴을 보장합니다. 요한일서 5:4—“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니라”—는 과학적 한계를 넘어 믿음이 끝까지 가는 승리를 입증합니다.
여섯째, 성경 내 모순(마태복음 27:46, 히브리서 11:39)은 문맥을 오해한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27:46—“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예수의 죄를 위한 대속(이사야 53:4-5)을 드러내며, 그의 믿음은 요한복음 19:30—“다 이루었다”—로 승리했습니다. 히브리서 11:39의 “약속을 받지 못함”은 현세가 아닌 새 세상에서의 완성을 뜻하며(히브리서 11:16), 갈라디아서 5:7의 “막힘”은 인간의 연약함을 책망한 후 회복을 권면합니다(갈라디아서 6:9).
마지막으로, 현실적 증거 부족(팬데믹, 로마 박해)은 믿음의 끝까지 감을 반증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4: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천국에 이르게 하시리라”—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이 구원으로 인도함을 보장합니다. 로마서 8:37—“우리가 그의 사랑하시는 자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박해 속 순교자들의 승리를 증거하며, 요세푸스의 기록은 믿음의 역사적 지속성을 확인합니다. 신앙 위기는 인간의 실패일 뿐, 하나님의 약속(빌립보서 1:6)을 흔들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 포기, 타 종교, 회의론, 심리학, 성경 해석, 증거 부족은 믿음을 세상적 관점에서만 본 단견입니다. 신약의 증언, 예수의 구속, 초대교회 인내, 구약 예표, 하나님의 보존은 믿음이 끝까지 간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어 끝까지 승리로 인도하심을 확증합니다.
믿음이 끝까지 간다는 믿음은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며 예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둘째, 어려운 순간에 믿음을 고백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세요. 셋째, 하루 한 번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인내를 다져보세요. 이는 믿음이 끝까지 가는 힘을 삶으로 증거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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