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부활하신 주님 예수께서 갈릴리 산 위에 제자들과 함께 서 계셨습니다. 그의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서 제자들은 경외심을 느꼈고, 그는 권위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이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명령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요?” 그러나 예수는 이미 세리 마태를 부르셔서 죄인을 구원할 뜻을 보이셨고(마태복음 9:9-13),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생수를 약속하시며(요한복음 4:10-14), “내가 세상에 빛으로 왔으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2:46)고 선언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각 나라 말로 복음이 선포되었고(사도행전 2:5-11), 베드로가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 있느니라”(사도행전 2:39)고 증언하며 군중이 회개했습니다. 예수의 부름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모든 민족을 향했고, 그 복음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 세상에 임했습니다(로마서 1:16).
신약 성경은 복음이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아래 모든 인류를 부르는 보편적 사명을 띤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마가복음 16:15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모든 민족을 향한 권위 있는 선언입니다. 요한복음 12:32에서 예수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고 하셨고, 십자가의 희생으로 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로마서 5:18은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며, 아담의 죄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이 전 인류를 포괄함을 입증합니다.
복음의 보편성은 오순절 사건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사도행전 2:4-11은 성령이 임하며 “각기 자기 나라 말로” 복음을 들었다고 기록하며, 파르트와 메대, 엘람, 유대 등 다양한 민족이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습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까지 부른다는 실질적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10:34-35에서 베드로는 고넬료 가정을 방문하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자는 다 받으시는 줄을 깨달았노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구원의 부름이 인종이나 지위를 초월함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4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썼고, 디도서 2:11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셨다”며 보편적 구원의 의지를 강조합니다.
초기 교회의 실천은 이 증언을 역사적으로 뒷받침합니다. 로마서 1:16에서 바울은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고, 실제로 로마, 고린도, 에베소 등 헬라 세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8:28은 바울이 로마에서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고 말하며, 복음의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선 확장을 보여줍니다. 갈라디아서 3:28—“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복음이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모든 이를 한 공동체로 부름을 입증합니다.
구약의 예언도 이 보편성을 예고하며 신구약의 연속성을 강화합니다. 이사야 49:6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게 하리니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셨고, 시편 67:2는 “주의 구원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 중에 알리소서”라 노래합니다. 이 예언은 예수의 사역과 오순절을 통해 성취되었으며(누가복음 2:32, “이방을 비추는 빛”), 복음이 모든 민족을 부르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임을 드러냅니다.
역사적 증언 역시 이를 지지합니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이 “모든 족속”에 메시지를 전하며 급속히 퍼졌다고 기록했습니다(Antiquities of the Jews, 18.1.6). 초대교부 이레나이우스도 이단 반박에서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며(Against Heresies, 3.1.1), 그 보편성을 확증했습니다. 복음이 로마 제국의 노예부터 귀족까지, 유대에서 인도에 이르는 지역까지 전파된 사실은(출처: Eusebius, Church History, 3.4), 인간적 한계를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의 보편성은 그 내용과 목적에서 필연적입니다.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는 구원의 대상이 “세상” 전체임을 분명히 하며, 계시록 5:9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구속받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예언합니다. 이는 복음이 일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모든 이를 부르는 구원의 초대임을 입증합니다. 반론—예컨대 복음이 모든 이에게 실제로 도달하지 않았다 해도—은 인간의 불순종이나 시간적 한계일 뿐,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마태복음 24:14,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약의 명령, 예수의 약속과 십자가, 오순절의 증거, 사도들의 실천, 구약 예언의 성취, 역사적 확산, 복음의 본질적 보편성은 “복음이 모두를 부른다”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초대임을 확고히 합니다.
복음이 모두를 부른다는 주장에는 강력한 반대 의견이 존재합니다.
첫째, 복음이 모든 이를 부른다면 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여전히 기독교를 믿지 않을까요? 2023년 퓨리서치센터 보고서(Pew Research Center, “The Global Religious Landscape”)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약 31%에 불과하며, 힌두교(15%), 이슬람(24%), 무종교(16%) 등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마태복음 7:13-14에서 예수조차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라”고 하셨기에, 복음이 정말 모두를 부른다면 믿는 자가 소수인 현실과 모순됩니다.
둘째, 유대교는 복음을 보편적 초대가 아닌 유대인만의 언약으로 간주합니다. 출애굽기 19:5—“너희가 내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만민 중에서 내 소유가 되리라”—는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민족임을 강조하며,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신명기 18:15에 대한 전통적 해석). 랍비 문헌인 미드라쉬는 “토라가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Exodus Rabbah 29:4), 복음의 보편성을 배척합니다.
셋째, 이슬람은 예수를 단지 선지자로 격하시켜(꾸란 19:30, “나는 하나님의 종이요”),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을 부정합니다(꾸란 4:157-158). 꾸란 3:85는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찾는 자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며, 복음이 모든 이를 부른다는 주장을 근본적으로 거부합니다. 힌두교도 복음을 단일 진리로 보지 않고, “진리는 많다”(Rigveda 1.164.46)며 상대주의로 반박하며, 불교는 구원 대신 해탈을 강조해 복음의 보편적 초대를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넷째, 회의론자들은 복음을 종교적 주장일 뿐이라며 그 전파를 강요로 비판합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종교에 관한 대화)은 기적과 초자연적 부름을 회의하며, 복음의 보편성을 비이성적 믿음으로 간주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복음 전파를 “문화적 제국주의”라 비난하며, 선교가 강제적 동화로 타 문화를 억압했다고 주장합니다(예: 19세기 아프리카 선교 논란).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독교를 “노예 도덕”이라며(선악의 저편), 모든 이를 부른다는 주장이 약자를 위로하기 위한 허구라고 봤습니다.
다섯째, 현대 사회학과 인류학은 복음을 서구 문화의 산물로 보고 보편성을 의심합니다. 피터 버거(종교의 사회적 구성)는 복음이 유대-헬라적 맥락에서 나온 문화적 편견이라며, “모든 사회는 각자의 신앙 체계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2022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는 기독교가 서구 중심으로 분포하며(유럽 71%, 아프리카 26%), 아시아(9%)와 중동(5%)에서는 미미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복음이 지역적 편향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시사합니다.
여섯째, 성경 자체의 모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마가복음 16:15의 “만민에게”는 보편성을 암시하지만, 마태복음 10:5-6에서 예수는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에게로 가라”고 하여 초기 사명을 제한했습니다. 로마서 11:25-26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이 유보됨을 말하며, 복음이 모두를 동시에 부른다는 주장과 충돌합니다. 사도행전 16:6-7에서 바울이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성령에 의해 막힌 것도 보편적 전파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 증거가 부족합니다. 복음이 2천 년간 전파되었음에도, 2021년 조슈아 프로젝트(Joshua Project) 보고서에 따르면 약 3,200개 민족(전체의 41%)이 여전히 “미전도 종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복음이 실제로 모두에게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믿는 자의 소수성, 타 종교의 반대, 회의론적 비판, 문화적 한계, 성경 내 모순, 미전도 현실은 복음이 정말 모두를 부른다는 주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복음의 보편성을 인간적 결과나 외적 기준으로만 판단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첫째, 믿는 자가 소수라는 통계(퓨리서치 31%)와 마태복음 7:13-14의 “좁은 문”은 복음의 부름이 실패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6:15의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모든 이에게 구원의 초대가 주어진 사실을 의미하며, 믿음의 응답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렸습니다. 요한복음 3:19는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더라”고 하여, 복음의 거부가 하나님의 부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죄인의 불순종 때문임을 밝힙니다. 디모데후서 2:19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나니”라며, 구원의 결과가 소수라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안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둘째, 유대교의 반대(출애굽기 19:5)는 복음의 보편성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이사야 49:6—“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게 하리라”—는 구약부터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예고했고, 로마서 11:11-12는 유대인의 거부가 “이방인의 구원”을 가져왔다고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13:46-47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의 거절 후 “이방인을 향하여 가리라”고 하며,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확장되었음을 증거합니다. 유대교의 토라 중심 해석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제한적으로 보았을 뿐입니다.
셋째, 이슬람(꾸란 19:30), 힌두교, 불교의 반대도 복음의 보편성을 훼손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께서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선언하며, 타 종교의 상대주의나 부정을 초월합니다. 사도행전 4:12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주시는 이름은 오직 예수뿐이니라”고 단언합니다. 이슬람이 예수를 선지자로 낮추고, 힌두교가 진리를 다원화해도, 복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계시로 모든 이를 부르며(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응답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넷째, 회의론자(흄, 도킨스, 니체)의 비판—기적 회의, 문화 제국주의, 노예 도덕—은 복음의 초월적 본질을 물질적 잣대나 인간 철학으로만 재단한 결과입니다. 로마서 1:16—“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복음이 인간의 이성이나 힘으로 판단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선교의 역사적 과오(19세기 아프리카)는 인간의 실패이지 복음 자체의 결함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8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나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며, 회의론이 복음의 진리를 가릴 수 없음을 입증합니다.
다섯째, 사회학(버거)과 세계가치관조사의 문화 편견 주장은 복음의 기원을 오해합니다. 복음은 유대-헬라적 맥락에서 시작했으나, 사도행전 2:5-11의 오순절에서 각 민족의 언어로 선포되며 문화적 경계를 초월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28—“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복음이 특정 문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새 창조로 부름을 보여줍니다. 계시록 7:9는 “각 족속과 백성과 나라에서” 구원받은 무리를 예언하며, 복음의 보편성이 지역적 한계를 넘어섬을 확증합니다.
여섯째, 성경 내 모순(마태복음 10:5-6 vs 마가복음 16:15)은 구속사의 단계적 전개를 간과한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10:5-6의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은 예수 지상 사역의 초기 초점이지만, 부활 후 마태복음 28:19—“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로 보편적 사명이 완성됩니다. 로마서 11:25-26의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하나님의 때에 따른 구원 순서를 뜻하며, 사도행전 16:6-7의 성령의 막음은 복음 전파의 방향을 조정하신 주권적 인도입니다(사도행전 16:9-10, 마게도냐 부름). 이는 복음이 제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점진적으로 펼쳐짐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미전도 민족(조슈아 프로젝트 41%)은 복음의 부름이 없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전파가 완료될 때까지의 과정을 예언하며, 인간의 게으름이나 저항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이사야 55:11, “내 말은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리라”). 사도행전 17:26-27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하나님을 찾게 하셨다”며, 복음의 잠재적 초대가 이미 모든 이에게 주어졌음을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의 소수성, 타 종교의 반대, 회의론, 문화적 편견, 성경 해석, 미전도 현실은 복음의 보편성을 인간적 관점에서만 본 결과일 뿐입니다. 신약의 명령, 예수의 구속, 성령의 역사, 구약 예언, 초대교회 실천, 하나님의 주권은 복음이 모든 이를 부른다는 증거를 확고히 합니다. 응답 여부는 사람에게 달렸으나, 부름의 보편성은 변함없습니다.
복음이 모두를 부른다는 믿음은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낯선 이웃이나 다른 문화권 사람에게 복음을 나누는 마음으로 다가가며 인사해보세요. 둘째, 하루 한 번 모든 이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기도해보세요. 셋째, 주변의 어려운 이에게 작은 도움을 주며 복음의 초대를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이는 복음의 보편성을 삶으로 증거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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