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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by modeoflife 2025. 2. 28.

 

 

초기 생애


코리 텐 붐은 1892년 4월 15일 네덜란드 하를렘(Haarlem)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코넬리아 아르놀다 요한나 텐 붐(Cornelia Arnolda Johanna ten Boom)"이었지만, "코리"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텐 붐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문으로, 코리의 아버지 카스퍼 텐 붐(Casper ten Boom)은 시계 수리공이자 시계점 주인으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코리는 언니 벳시(Betsie), 오빠 윌렘(Willem), 여동생 난나(Nanne)와 함께 자랐습니다. 텐 붐 가문의 집은 "베이예(Beje)"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계점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에서 신뢰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코리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가족과 함께 시계 수리 기술을 배워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공인된 여성 시계공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며 사람들에게 신앙을 나누는 데 열정을 쏟았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을 통해 그들의 신앙 성장을 도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구출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텐 붐 가족의 삶은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당시 코리는 48세, 벳시는 55세였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심화되자, 텐 붐 가족은 기독교 신앙에 따라 유대인들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베이예 집 안에 비밀 방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숨겼고, 지하 네트워크를 통해 약 800명에 달하는 유대인과 저항 운동가들을 구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비밀 방은 코리의 침실 벽장 뒤에 숨겨져 있었고, 나치의 수색에도 쉽게 발각되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1944년 2월 28일, 한 밀고자의 배신으로 텐 붐 가족은 나치에 체포되었습니다. 이 날은 현재 날짜(2025년 2월 28일) 기준 정확히 81년 전입니다. 체포 당시 집에 있던 유대인 6명은 비밀 방 덕분에 무사히 숨을 수 있었고, 나중에 구출되었습니다.


수용소 생활


체포된 후, 코리의 아버지 카스퍼는 8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감옥으로 끌려갔고, 열흘 만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코리와 벳시는 네덜란드 내 여러 수용소를 거쳐 결국 독일의 악명 높은 라벤스브룩(Ravensbrück) 여성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굶주림, 질병, 폭력 등 비인간적인 환경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와 벳시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몰래 가지고 들어간 성경(나치의 감시를 피해 허벅지에 묶어 숨겼던 작은 책자)을 통해 동료 수감자들에게 희망을 전했습니다. 특히 벳시는 늘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며, "어떤 어둠도 예수님의 빛을 꺼뜨릴 수 없다"는 믿음을 나누었습니다. 코리는 훗날 자서전에서 벳시가 수용소에서도 "이곳을 예배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던 일화를 회상하며, 그들이 감옥 막사에서 기도 모임을 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1944년 12월, 벳시는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질병으로 59세의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코리는 놀랍게도 행정 착오로 석방되었습니다. 석방 날짜는 1944년 12월 31일로, 그녀가 석방된 지 일주일 후 라벤스브룩에서 그녀 나이대의 여성들은 모두 가스실로 보내졌습니다. 코리는 이를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여겼습니다.

 

해방 이후와 전도 사역


전쟁이 끝난 후, 코리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유대인 구출 활동에 참여했던 오빠 윌렘과 재회했습니다. 윌렘 또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1946년에 사망했습니다. 코리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이 겪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했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메시지는 "용서"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1947년 독일에서 열린 강연에서, 그녀를 수용소로 보낸 나치 간수 중 한 명을 만난 사건은 유명합니다. 그 남자가 용서를 구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코리는 순간 분노와 갈등을 느꼈지만 기도 후 그를 용서하며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 "용서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코리는 40여 년간 60개국 이상을 방문하며 강연과 전도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녀의 대표 저서인 "The Hiding Place(피난처)"는 1971년에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고, 1975年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텐 붐 가족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고 있으며, 신앙과 용서의 힘을 증언합니다.

 

말년과 유산


코리는 1977년, 85세에 건강 악화로 전도 활동을 줄이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플라센티아(Placentia)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조용한 삶을 살며 1983년 4월 15일, 91세 생일에 서거했습니다. 그녀가 생일을 맞아 세상을 떠난 것은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여겨졌습니다.


코리 텐 붐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녀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잃지 않았고, 용서의 능력을 몸소 보여준 인물로 기억됩니다. 베이예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 강연과 교육 자료를 통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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