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죄로 더러워진 세상 한가운데, 그는 어부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17) 그의 음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며 퍼져나갔습니다. 어느 날, 산 위에서 군중에게 가르치시며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3-5). 이는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드러내셨습니다. 병든 자는 그의 능력으로 나음을 받았고(마태복음 8:3), 배고픈 자는 그의 손으로 빵과 물고기를 공급받았습니다(마태복음 14:19-20). 로마의 억압과 율법의 저주 아래 신음하던 백성은 그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소망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이 “이게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치셨습니다(마태복음 13:3-9). 그의 사역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여시는 구속의 문이었으며, 그의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백성에게 영원한 희망을 전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사실을 확고하고 다층적으로 증언하며, 이는 구속사적, 신학적, 역사적 증거로 입증됩니다。마태복음 4:17에서 예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시며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이 선언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에 임했음을 알리는 구속의 서막입니다。누가복음 4:43은 “내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러 보내심을 받았노라”라 하여 그의 사명이 천국의 문을 여는 것임을 밝힙니다。마태복음 12:28은 “내가 하나님의 영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 하며, 그의 권능이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증거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의, 평화, 사랑의 통치로 나타나며, 예수는 기적과 가르침으로 이를 실현하셨습니다。마가복음 1:27에서 “그가 명령하니 더러운 귀신들도 순종하더라”라 하여 귀신을 쫓으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셨고(누가복음 11:20), 누가복음 4:40은 “병든 자들에게 손을 얹으시매 나으니라”로 죄로 망가진 창조 질서를 회복하셨습니다。마태복음 5:3-12의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라며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선포하시고, 마태복음 13:31-32의 겨자씨 비유는 천국의 시작과 확장을 가르치십니다。이 모든 행적은 요한복음 10:10의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로 요약되며,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죄인에게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확정합니다。골로새서 1:13-14는 “그가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 하여,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 나라를 여는 열쇠임을 증거합니다。로마서 1:4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라 하며, 사탄과 죄를 이기신 권능을 입증합니다。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는 구속의 완성을 선언하며, 히브리서 2:14-15는 “죽음을 멸하시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를 파하셨느니라”로 천국의 승리를 확언합니다。
예수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왕임을 선포하셨습니다。요한복음 18:36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시며 세상 권세와 구별된 천국의 실체를 증언하셨고, 마태복음 28:18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라 하여 그의 왕권을 확립하셨습니다。초기 교회는 이 복음을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전파했으며, 사도행전 28:31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막힘 없이 가르치더라”라 하여 천국의 확장을 기록합니다。사도행전 17:7은 “다른 왕 예수를 전한다”며 로마에 충격을 준 복음의 힘을 보여줍니다。
반증(반대 주장): 정말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을까?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주장에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반대가 제기됩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가 열렸다면 왜 세상은 여전히 불공정, 전쟁, 고통으로 가득할까요? 마태복음 4:17에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지만, 예수 사후 로마의 폭정(사도행전 12:1-3), 중세의 십자군 전쟁, 현대의 빈곤과 억압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의심케 합니다。욥기 24:12는 “부상당한 자의 신음 소리가 들리나 하나님은 어찌하여 벌하지 않으시나이까”라며 불공정의 지속을 한탄하고, 평화와 정의의 나라가 열렸다면 이런 고난이 없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둘째, 유대교는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며 하나님 나라를 열지 못했다고 단언합니다。이사야 2:4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리라”는 평화로운 왕국은 예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탈무드(산헤드린 99a)는 메시아가 오면 전쟁과 고난이 끝난다고 보아 예수를 배제합니다。에스겔 37:24-25는 메시아가 영원한 통치를 가져온다고 하며, 예수의 죽음과 세상의 미완성은 이를 부정합니다。
셋째, 이슬람은 예수를 예언자로만 인정하며 하나님 나라를 여는 권한을 부인합니다。꾸란 19:30은 “나는 하나님의 종일 뿐”이라 하여 예수의 신성을 배척하고, 꾸란 4:157은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라며 십자가의 구속을 부정합니다。꾸란 49:13은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인류를 포괄한다고 보아 예수 중심의 나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넷째, 현대 회의론자들은 예수의 기적과 하나님 나라를 신화적 과장이나 허구로 간주합니다。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병 고침(누가복음 4:40)을 심리적 위약 효과나 설화로, 부활을 제자들의 조작으로 봅니다。토마스 제퍼슨(《제퍼슨 바이블》)은 기적을 배제하고 예수를 도덕 교사로 축소하며, 하나님 나라는 고대 유대교의 이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다섯째, 과학적 관점은 초자연적 하나님 나라를 비현실적 허구로 간주하며 예수의 사역을 사회 개혁으로 한정합니다。칼 세이건(《코스모스》)은 초자연적 주장을 경험적 증거 부족으로 부정하고, 죄와 구원의 개념을 진화심리학(예: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도덕 발생론으로 설명합니다。존 쉘비 스퐁(《새로운 기독교》)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적 내러티브로만 보며, 예수의 영향이 사회적 변화에 그쳤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부의 모순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마태복음 4:17이 천국을 열었다지만, 마태복음 24:6-7은 “전쟁과 전쟁 소문이 있으리라”며 지속적 혼란을 예고하고, 전도서 1:4는 “땅은 영원히 있나니”라며 새 나라의 필요성을 부정합니다。이러한 세상의 불공정, 유대교와 이슬람의 반론, 회의론과 과학의 비판, 성경 내 불일치는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강력한 반증들입니다。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진리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신실하심 안에서 오해하거나 단편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세상의 불공정과 고통(사도행전 12:1-3, 욥기 24:12)이 하나님 나라와 모순된다는 지적은 그 타이밍과 본질을 놓칩니다。마태복음 4:17의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예수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며, 요한복음 16:33은 “세상에서는 환난이 있으리라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 하여 현세의 고난이 나라의 부재가 아님을 증언합니다。마태복음 13:24-30의 가라지 비유는 악과 의가 공존하며 재림으로 완성됨을 밝히고, 계시록 21:4는 “모든 눈물을 씻기시리라”로 최종 회복을 약속합니다。
둘째, 유대교가 예수의 메시아직을 부인한다는 주장(이사야 2:4)은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단계를 간과합니다。이사야 53:5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는 초림의 속죄를 예언하며, 에스겔 37:24-25의 영원한 통치는 재림(마태복음 25:31-34)에서 실현됩니다。누가복음 4:18-19는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왔노라”라 하여 예수의 초림이 구원의 문을 열었음을 증거합니다。
셋째, 이슬람이 예수의 권한을 부인한다는 반론(꾸란 19:30)은 신약의 계시를 약화시키지 않습니다。꾸란 4:157의 십자가 부정은 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와 대조되며, 히브리서 2:9는 “그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느니라”로 구속 권한을 증언합니다。꾸란 49:13의 보편성은 요한복음 3:16의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으리라”와 본질적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넷째, 회의론자들이 기적과 하나님 나라를 허구로 보는 주장(도킨스, 제퍼슨)은 역사적·성경적 증거를 무시합니다。마가복음 1:27의 귀신 쫓기와 누가복음 4:40의 병 고침은 사도행전 2:22의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인정하셨다”로 실증되며, 제퍼슨의 도덕 교사론은 고린도전서 15:17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니 믿음이 헛되지 않다”를 약화시키지 못합니다。마태복음 13:11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주어졌다”라 하여 나라의 실체를 확증합니다。
다섯째, 과학이 초자연적 나라를 비현실로 보는 반론(세이건, 스퐁)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한정합니다。창세기 1:1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초자연적 권능을 전제로 하며, 누가복음 1:37은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 하여 기적의 가능성을 입증합니다。스퐁의 상징론은 골로새서 1:13의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를 무력화하지 못하며, 프로프트의 심리 위안론은 로마서 5:1의 “믿음으로 평화를 얻었노라”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 모순(마태복음 24:6-7, 전도서 1:4)은 문맥을 오독한 결과입니다。마태복음 24:6-7의 전쟁은 재림 전 고난(마태복음 24:14, “그 후에 끝이 오리라”)이며, 누가복음 17:20-21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로 현존을 증언합니다。전도서 1:4의 현세 지속은 이사야 65:17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새로워짐을 약속합니다。
따라서 반증은 하나님 나라를 현실적 고난이나 인간 논리로만 재단한 데 불과합니다。신약의 증언, 구속사적 단계, 하나님의 권능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입증합니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믿음은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회개하며 마태복음 4:17을 묵상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세요. 둘째, 하루 한 번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보세요. 셋째, 세상의 고난 속에서 예수의 사랑과 소망을 전하며 천국의 증인이 되세요. 이는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열었다는 약속을 삶으로 증명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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