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이사야 65:17)

by modeoflife 2025. 2. 28.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야기: 이사야의 새 창조의 약속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포로로 황폐해졌습니다. 그들의 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고, 들판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이사야 64:11). 그때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폐허 위에 서서 힘있게 선포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65:17) 그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권위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 백성이 “과거의 슬픔이 지워지겠느냐?”고 물었을 때,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이전 것을 기억되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전했습니다(이사야 65:17).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은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새로워지게 하시리라”며 기도했습니다(이사야 65:18). 이 예언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계시하며, 죄로 무너진 세상을 넘어 새 창조의 소망을 백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논증: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증거

 

구약 성경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고 일관되게 증언하며, 이는 죄와 고난을 넘어서는 새 창조의 실현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65:17에서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시며, 과거의 혼란을 초월하는 새 창조의 약속을 선언하십니다. 이사야 65:18-19는 “내가 창조하는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다시는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리라”고 하여, 고통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회복을 보장합니다. 이사야 66:22는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으리라”며 이 새로움의 영원성을 확증합니다.

 

시편은 이 약속을 찬양으로 증거합니다. 시편 119:50은 “주의 약속이 나를 살리시고 환난 중에 나의 위로가 되나이다”라 하여, 새로워지는 생명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음을 노래합니다. 시편 96:1-2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양하라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라”라 하며, 새 창조의 기쁨을 예고합니다. 예레미야 31:22는 “여호와께서 새 일을 창조하시리니”라 하시며, 예레미야 31:31-33은 “새 언약을 맺으리니 내가 그들의 마음에 법을 기록하리라”로 내적 갱신을 약속합니다.

 

에스겔은 새로움의 구체적 실현을 제시합니다. 에스겔 36:26은 “내가 너희에게 새 심령을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리라”고 하여, 새 창조가 영적 회복을 포함함을 증언합니다. 에스겔 37:14는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리니”라 하며,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새로움을 약속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 약속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신명기 30:5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새롭게 하사 복을 주시리라”고 하시며, 신명기 32:43은 “그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라”로 새로워진 기쁨을 예언합니다.

 

구약의 다른 증언과 역사적 전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창세기 8:21-22에서 노아와의 “내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은 새 창조의 안정성을 암시하며, 이사야 43:19는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물이 광야에서 나리라”로 새로움의 실체를 예고합니다. 스가랴 14:8-9는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나며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리라”며 모든 것이 새로워질 날을 증언합니다. 호세아 2:18은 “내가 새 언약을 맺으리니 짐승과 평화롭게 하리라”로 창조의 갱신을 약속합니다.

 

구약 전체의 흐름은 새로워짐이 하나님의 구속의 절정임을 입증합니다. 출애굽기 15:13은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리라”로 새 생명의 시작을 보여주고, 이사야 51:11은 “구속함을 받은 자가 기뻐하리라”로 새로움의 기쁨을 확언합니다. 신약에서 요한계시록 21:5는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 하여, 구약의 이 약속이 메시아를 통해 완성됨을 증거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 시편의 찬양,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약속, 모세의 율법, 구속사적 완성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강력하고도 흔들림 없는 증거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영원한 결실입니다.

 

반증(반대 주장): 정말 모든 것이 새로워지나?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주장에는 강력하고 다각적인 반대가 제기됩니다.

 

첫째,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면 왜 폐허와 고난이 역사와 현재에 여전히 남아 있을까요? 이사야 65:17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라 했지만,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황폐해졌고(예레미야 52:13), 이후 로마에 멸망당하며 폐허가 지속되었습니다(스가랴 11:9). 시편 79:1은 “열방이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들었나이다”라며 새로움의 부재를 한탄하고, 현대의 전쟁과 파괴도 약속의 실현성을 의심케 합니다.

 

둘째, 현대 철학은 새로움을 허상이나 인간의 망상으로 간주하며 초월적 약속을 의심합니다.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새로움 같은 희망을 허무주의적 삶에서의 도피로 비판하고, 아도르노(《부정변증법》)는 구원과 새 창조를 억압받는 자의 헛된 환상으로 보며 이사야 65:18의 기쁨을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으로 간주합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내러티브로 간주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새 하늘과 새 땅 약속을 고대 근동 신화,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의 《엔키와 세계 질서》처럼 자연과 질서를 미화한 허구로 비판합니다. 이사야 65:19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리라”는 실증적 증거 없는 상상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넷째, 이슬람은 새 세상을 인정하되 구체적 비전과 초점이 다르며 이스라엘 중심성을 부정합니다. 꾸란 14:48은 “대지를 새롭게 하리라”고 하지만, 꾸란 81:1-6의 종말론적 심판에 중점을 두어 이사야의 새 창조와 구별되고, 꾸란 2:87은 이스라엘의 특권을 무함마드 공동체로 대체합니다.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 11:32는 칼키가 새 시대를 열지만 윤회 속 주기적이며, 불교의 《법구경》 154는 새로움을 고통 극복의 개인적 깨달음으로 축소합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는 새로움을 신의 변덕이나 무관심의 산물로 묘사하며 구약의 주장을 약화시킵니다.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은 홍수 후 새 세상을 맞았으나 신들의 변덕으로 불완전했고(《변신 이야기》), 메소포타미아의 《아트라하시스》는 새로움이 신들의 불일치와 인간의 고난 속에서 좌절됩니다. 이는 새 창조 약속이 신뢰할 보장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부의 모순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이사야 65:17이 “이전 것은 기억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지만, 예레미야 4:23-26은 “땅이 황무하며 하늘이 빛을 잃었도다”라며 지속적 파괴를 예고하고, 전도서 1:9는 “새 것이 없나니”라며 새로움의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이러한 폐허의 지속, 철학적 허무, 회의론, 종교적 차이, 신화적 대조, 성경 내 불일치는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강력한 반증들입니다.

 

728x90

 

반증에 대한 반박: 의문에 대한 치밀한 답변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진리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신실하심 안에서 오해하거나 단편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폐허가 남았다는 지적(예레미야 52:13, 스가랴 11:9)은 새로움의 타이밍과 본질을 놓칩니다. 이사야 65:17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는 즉각적 변혁이 아닌 하나님의 궁극적 회복을 뜻하며, 이사야 65:18은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리라”로 완성을 약속합니다. 시편 79:1의 폐허는 죄에 대한 심판(이사야 64:6-7)이지만, 이사야 66:22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으리라”로 새로움의 영원성을 확증합니다. 폐허는 약속의 부재가 아닌 준비 과정입니다.

 

둘째, 현대 철학이 새로움을 허상으로 본다는 주장(니체, 아도르노)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간과합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세속적 절망을 다루나, 이사야 43:19의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광야에서 물이 나리라”는 실질적 새로움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도르노의 환상론은 억압된 위안을 비판하지만, 예레미야 31:31-33은 “새 언약으로 새로이 하리라”며 하나님의 구속적 실체를 증거합니다. 철학은 새로움의 신성을 축소한 오류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이 이사야를 신화로 치부하며 새 창조를 허구로 보는 것(도킨스)은 역사적·신학적 증거를 무시합니다. 이사야 65장은 바벨론 포로(기원전 587년)라는 실제 맥락에서 주어졌고, 이사야 44:28의 고레스 예언은 회복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엔키와 세계 질서》의 상상과 달리, 에스겔 36:35는 “황무지가 에덴 같으리라”며 새로움의 실체를 증언합니다. 도킨스의 허구론은 예언의 성취를 이해하지 못한 단견입니다.

 

넷째, 이슬람이 새 세상 비전을 다르게 본다는 반론(꾸란 14:48)은 구약의 약속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꾸란 81:1-6의 심판은 이사야 65:17의 새 창조와 본질적 회복을 공유하며, 호세아 2:18은 “새 언약으로 평화롭게 하리라”로 하나님의 주도적 새로움을 강조합니다. 힌두교와 불교의 주기적·개인적 새로움과 달리, 에스겔 37:14는 “내 영으로 너희를 살게 하리라”며 영원한 갱신을 약속합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가 새로움을 변덕으로 본다는 지적(데우칼리온, 아트라하시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오해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불완전성과 달리, 창세기 8:22는 “내가 다시는 땅을 멸하지 아니하리라”며 안정성을 보장하고, 시편 102:26-27은 “하늘이 없어져도 주는 영원하시리라”로 새로움의 확실성을 증거합니다. 아트라하시스의 불일치와 달리, 하나님의 새 창조는 신뢰할 약속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 모순(예레미야 4:23-26, 전도서 1:9)은 문맥을 오독한 결과입니다. 예레미야 4:23-26은 심판의 황무지이나, 예레미야 33:25-26은 “내가 다윗의 씨를 회복하리라”로 새로움을 약속합니다. 전도서 1:9는 현 세상의 반복을 말하지만, 스가랴 14:8-9는 “생수가 나고 여호와가 왕이 되시리라”며 새 창조를 확언합니다.

따라서 반증은 새로워짐을 현실적 폐허나 인간 논리로만 재단한 데 불과합니다. 구약의 예언, 하나님의 신실하심, 구속사적 완성은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입증합니다.

 

적용: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믿음의 실천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믿음은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어려움 속에서도 이사야 65:17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새 창조를 소망하세요. 둘째, 하루 한 번 새로워질 미래를 기대하며 감사 기도를 드려보세요. 셋째, 과거의 상처를 내려놓고 새로움의 약속을 주변에 나누세요. 이는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삶으로 증명하는 길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