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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쇠퇴 사회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

by modeoflife 2026. 1. 2.


현대 사회는 흔히 '종교심이 메마른 사회'로 진단된다. 교회 출석률의 감소, 제도 종교에 대한 불신, 초월적 존재에 대한 회의는 서구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종교 전반이 약화된 사회에서, 기독교만은 다시 각광받을 수 있는가?"

이 글은 이 질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질문 자체가 이미 기독교의 특권적 지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새롭게 제기된다.

종교가 쇠퇴한 사회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 질문 아래에서 세속화와 포스트-세속화 이론을 검토하고, 유럽과 한국의 경험적 사례를 통해 기독교의 구조적 한계를 분석한 뒤, 기독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일관된 존재 방식—즉 경쟁적 재부상의 조건을 논증한다.


1. 세속화 이후의 조건: 종교의 소멸이 아닌 탈특권화와 선택지의 다원화

고전적 세속화 이론은 근대화, 합리화, 과학기술의 발전이 종교의 필연적 쇠퇴와 공적 영역으로부터의 퇴각을 초래한다고 가정해 왔다. 막스 베버의 합리화·탈주술화(Entzauberung) 논의나 피터 버거의 초기 저작들은 근대 사회를 종교적 세계관이 점진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종교가 사적 영역으로 한정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선적 세속화 도식은 후기 경험적 연구와 이론적 재검토를 통해 점차 수정되었다.

이러한 수정의 핵심적 기여를 한 이론가가 호세 카사노바이다. 그는 『현대 세계의 공적 종교들』(1994)에서 세속화를 단일한 역사적 법칙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비판하고, 이를 서로 구별되는 세 가지 명제로 분해한다. 즉 (1) 종교와 국가·과학·경제 등의 사회 제도 간 기능적 분화(differentiation), (2) 종교 신앙과 실천의 쇠퇴, (3) 종교의 사사화(privatization)이다. 카사노바의 핵심 주장은 이 세 명제가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필연적으로 결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카사노바에 따르면 근대 사회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첫 번째 명제, 즉 제도적 분화로서의 세속화이다. 이는 종교가 더 이상 정치 권력이나 사회 전체의 규범 질서를 직접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는 구조적 조건을 의미한다. 반면 종교의 쇠퇴나 사사화는 지역·역사·문화적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보편적 법칙으로 일반화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일부 맥락에서 종교가 시민사회와 공적 담론 영역으로 다시 진입하는 현상을 ‘탈사사화(deprivatization)’로 분석한다. 이 개념은 종교의 특권적 지위 회복을 의미하지 않으며, 종교가 다른 세속 담론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공적 논쟁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의 핵심 변화는 종교의 소멸이 아니라 종교의 제도적·해석적 특권 상실이다.

카사노바 자신은 ‘포스트-세속(post-secular)’이라는 용어를 이론적 중심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용어는 이후 위르겐 하버마스에 의해 공적 담론에서 종교와 세속 이성이 상호 학습해야 하는 조건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카사노바의 논의는 결과적으로 유럽 중심의 세속화 모델을 상대화하고, 종교의 지속성과 다원성을 전지구적 관점에서 재사유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포스트-세속 논의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와 병행하여 찰스 테일러는 『세속 시대』(2007)에서 세속화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재정의한다. 테일러에게 세속화란 신앙의 사회적 영향력 감소나 제도적 쇠퇴가 아니라, 신앙이 성립하는 조건 자체의 변화이다. 그는 이를 ‘세속성 3(secularity 3)’이라 부르며, 전근대 사회에서 신앙이 거의 불가피한 사회적 배경 조건이었던 것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신앙과 불신앙이 모두 가능한 선택지로 공존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 조건에서 신앙은 더 이상 ‘나이브한’ 상식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들 속에서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정당화해야 하는 선택이 된다.

테일러는 이러한 조건을 ‘독점적 인본주의(exclusive humanism)’의 부상과 연결짓는다. 이는 초월적 차원 없이도 인간의 삶과 도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세계관이 하나의 강력한 옵션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이 세계관이 신앙을 논리적으로 제거한다기보다, 신앙을 다수의 경쟁적 의미 체계 중 하나로 위치시킨다는 데 있다.

카사노바와 테일러의 이론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두 이론 모두 세속화를 종교의 소멸이나 배제로 이해하지 않으며, 현대 사회의 핵심 특징을 특정 종교가 사회적·제도적·해석적 특권을 가질 수 없는 조건의 형성으로 파악한다. 종교는 여전히 공적·사적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나, 더 이상 사회 전체의 ‘필연적 상식’이나 ‘독점적 권위’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은 종교 다원성과 세속적 합리성이 공존하는 민주주의적 공적 영역의 구조적 전제가 되며, 종교 역시 이 전제 위에서만 자신의 공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2. 종교심 쇠퇴는 기독교의 기회인가: 구조적·경험적 검토

종교심의 쇠퇴, 즉 세속화를 기독교의 특별한 기회로 해석하려는 시각이 일부 존재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종교 일반이 약화될수록 기독교의 진리성과 차별성이 오히려 더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지지되기 어렵다. 세속화는 특정 종교를 선택적으로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전통 종교를 동일한 구조적 압력 아래 놓는다.

현대 종교사회학의 주요 연구들은 이 점을 분명히 한다. 후기 피터 버거는 초기 세속화 이론에서 주장했던 ‘근대화 → 종교 쇠퇴’ 도식을 수정하며, 현대 사회를 다원적 신앙 시장으로 설명했다. 이는 종교의 소멸이 아니라, 종교 간 경쟁 조건의 일반화를 의미한다. 호세 카사노바 역시 세속화를 종교 쇠퇴의 필연적 과정으로 보지 않으며, 근대 사회의 핵심 변화는 종교가 국가·과학·경제와 같은 다른 제도 영역에 대해 가졌던 특권적 공적 지위의 상실이라고 분석한다. 이 두 이론은 공통적으로 세속화가 기독교에 예외적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의 경험적 사례는 이러한 이론적 결론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스웨덴,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의 전통적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에서 정기적 교회 출석률은 대체로 한 자릿수에서 10% 미만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Pew Research Center와 European Social Survey의 반복 조사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 중요한 점은, 이 하락이 특정 교파의 위기라기보다 기독교 전반의 제도적 약화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또한 폴란드와 아일랜드처럼 가톨릭 정체성이 강했던 국가들조차, 성직자 스캔들·문화적 자유화·세대 교체의 영향으로 과거의 높은 출석률을 유지하지 못하고 급격한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 이는 종교적 기반이 약화된 사회에서 기독교가 예외적으로 보존되거나 강화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역시 유사한 패턴을 드러낸다. 20세기 후반 한국 개신교의 급속한 성장은 세속화의 부재나 반증이라기보다, 산업화와 도시화, 냉전기 반공 이데올로기, 미국 중심 선교 네트워크, 강력한 조직 동원력 등 특정 역사적·정치적 조건의 결합에 의해 설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약화된 이후, 한국 역시 종교 다원화와 세속화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2024–2025년 Gallup Korea 및 Korea Research 조사에 따르면, 무종교 인구는 약 50% 초반까지 증가했으며, 개신교 신자 비율은 약 20% 내외에서 정체 또는 완만한 감소 추세를 보인다. 동시에 교회의 정치화, 도덕적 스캔들, 제도 종교에 대한 불신 증가는 교회 신뢰도의 지속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구조적으로 예외적인 위치에 있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전지구적 차원에서 기독교 인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일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펜테코스테 및 카리스마틱 운동의 확산과 높은 출산율을 배경으로 기독교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의 최근 보고서들은 2050년경 아프리카 기독교 인구가 12억 명을 상회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성장은 세속화가 깊게 진행된 사회에서의 ‘역전 현상’이 아니라, 인구 구조와 문화적 조건이 다른 지역적 맥락의 결과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유럽이나 한국과 같은 고세속화 사회에서 기독교의 재부상을 일반화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종합하면, 종교심의 쇠퇴는 기독교에 구조적 기회를 제공하기보다는, 모든 제도 종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도전적 환경을 형성한다. 세속화된 다원 사회에서 기독교가 강화될 수 있다면, 그것은 종교 일반의 약화 덕분이 아니라 특권 상실 이후의 경쟁적 조건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세속화를 기독교의 자동적 기회로 해석하는 관점은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충분한 근거를 갖지 못한다.

 


3. 기독교의 구조적 불리함

세속화된 다원 사회에서 기독교는 몇 가지 고유한 구조적 불리함을 갖는다.

첫째, 강한 배타적 진리 구조이다. 이는 신학적으로 일관될 수 있으나, 다원 사회에서는 소통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둘째, 도덕적 규범의 명시성이다. 기독교 윤리는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통제 장치로 인식되기 쉽다. 셋째, 제도 종교로서의 역사적 부담이다. 교회는 종종 권력, 정치, 위계와 결부된 기억을 동반한다.

이 조건에서 기독교가 다시 중심적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


4. 재종교화의 오해와 경쟁적 재부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죽음, 고통, 상실, 불의 앞에서 의미를 요구한다. 이 현상은 종종 '재종교화'로 불리지만, 이는 종교의 귀환이 아니라 의미 경쟁의 심화에 가깝다.

기독교는 이 경쟁 속에서 하나의 해석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 서사, 용서와 화해의 윤리, 초월적 사랑의 개념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독점적 답변이 아니다. 철학, 심리학, 불교적 수행, 세속적 인문 담론 역시 동일한 질문에 응답한다.

따라서 가능한 것은 특권적 부상이 아니라, 경쟁적 재부상이다.


5.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존재 방식의 전환

이 조건에서 기독교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특권의 상상을 포기해야 한다. 기독교는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의 한 목소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진리 선언에서 삶의 증언으로 전환해야 한다. 명제적 우월성보다 경험적 설득력이 중요해진다. 셋째, 도덕 관리자에서 실존적 동반자로 이동해야 한다. 죄 규정보다 고통 해석이 먼저 와야 한다. 넷째, 규모와 영향력보다 신뢰와 밀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작지만 신뢰 가능한 공동체는 세속 사회에서도 생존 가능하다.

온라인 공동체,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공적 정의 담론에의 참여 등은 이러한 전환의 조건적 실천일 뿐, 성공을 보장하는 처방은 아니다.


결론

종교심이 메마른 사회에서 기독교만이 각광받을 수 있다는 기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세속화와 포스트-세속화는 기독교를 배제하지 않지만, 그 어떤 특권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의 미래는 지배적 종교로의 회귀가 아니라, 의미의 경쟁 속에서 인간의 질문을 끝까지 견디는 종교로 남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기독교가 다시 요청받는 순간은, 세상을 다시 기독교화했을 때가 아니라, 세속 세계 한가운데서도 포기되지 않은 의미의 언어로 존재할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