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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서 통치로: 미셸 푸코의 목자권력과 전면적 앎의 문제

by modeoflife 2026. 1. 10.


1. 문제 제기: 왜 ‘선의의 돌봄’이 권력이 되는가

기독교적 돌봄은 오랫동안 윤리적 이상으로 이해되어 왔다.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목자의 이미지는 사랑과 책임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으며, 이러한 윤리적 형식은 종교 영역을 넘어 현대의 상담, 심리치료, 복지, 자기계발 담론에까지 확장되어 있다. 그러나 미셸 푸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도덕적 평가와는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그의 관심은 돌봄의 선의나 목적이 아니라, 돌봄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형성하고 관리하는가라는 작동 원리에 있다.

푸코의 분석은 교회를 억압적 제도로 단순 규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돌봄이 인간의 전 존재를 포착하려 할 때, 즉 삶의 외적 행위뿐 아니라 내면의 생각과 욕망까지 관리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권력의 미세한 변형을 문제 삼는다. 이 글은 푸코의 목자권력 개념을 중심으로 돌봄이 통치로 전환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후기 푸코의 윤리적 전환을 해방의 약속이 아닌, 긴장과 불완전성 속의 문제 제기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2. 목자권력과 개인화된 통치의 형식

푸코에 따르면 기독교는 고대의 주권 권력과 구별되는 독특한 권력 형식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영토나 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권력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삶 전체를 돌보고 인도하는 목자권력이다. 이 권력은 집단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개인 하나하나를 분리하여 책임지는 구조를 갖는다. 개인은 더 이상 익명의 구성원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삶이 지속적으로 문제화되는 존재가 된다.

푸코는 이 개인화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가 개인을 윤리적·영적 존재로 본 최초의 체계 중 하나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목자의 책임이 전면화될수록, 즉 인간의 삶 전체를 “잘 살도록” 이끈다는 명목 아래 내면까지 개입의 대상으로 삼을수록, 돌봄은 점차 통치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전환은 급격한 억압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확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3. 고백과 전면적 앎: 돌봄의 기술로서의 권력

돌봄이 통치로 변형되는 핵심 장치는 고백이다. 푸코에게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관습이 아니라, 주체를 형성하는 기술이다. 개인은 자신의 내면을 언어로 해체하고, 그 언어를 권위 앞에 제출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도록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강제의 형태가 노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고백은 폭력에 의해 강요되기보다는, “구원받기 위해”, “치유되기 위해”, “성숙한 주체가 되기 위해” 스스로 수행해야 할 의무로 제시된다. 말하지 않는 자는 처벌받기보다는, 돌봄의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된다. 이때 권력은 명령이 아니라 조건으로 작동하며, 주체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점검하는 위치에 놓인다.



4. 부드러운 권력과 내면화된 통치

푸코가 분석한 목자권력의 특징은 그것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 권력은 도덕적 언어를 사용하고, 개인의 선을 지향하며, 외적 강제가 아니라 양심과 자기 점검을 통해 작동한다. 통제는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감시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이러한 분석은 교회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심리치료, 상담, 자기계발, 복지 행정 역시 “자신의 진실을 말하라”, “자신을 이해하라”는 요구를 통해 유사한 권력 효과를 생산한다. 돌봄의 확장은 곧 전면적 앎의 요구로 이어지며, 그 앎은 주체를 해방시키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형성한다.



5. 후기 푸코의 윤리적 전환: 탈출이 아닌 긴장

푸코는 이러한 분석 이후에도 완결된 대안이나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해답의 부재라기보다, 의도적인 사유의 전략이다. 완성된 윤리나 해방의 모델은 다시 하나의 기준이 되어 통치의 도구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기 푸코가 제기하는 윤리적 전환은 완전한 자유나 권력으로부터의 탈출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너는 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진리의 의무이며, 여기서 논의되는 것은 고백의 강제성에 대한 미시적 저항의 가능성이다. 이는 침묵이 곧 자유라는 선언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건을 흔드는 불완전한 실천에 가깝다. 저항은 언제나 권력 관계 내부에서 이루어지며,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형태를 띤다.



6. 자기 배려의 긴장: 단절이 아닌 변형

자기 배려 역시 기존의 자기계발 담론과 완전히 단절된 대안으로 이해되기보다는, 그 연속성 속에서 변형과 긴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천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자기 배려는 규범에 대한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주체가 자신과 맺는 관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는 자유의 가능성과 동시에 새로운 규율의 위험이 항상 공존한다.

따라서 후기 푸코의 윤리는 해방적 결론이 아니라, 윤리가 다시 권력이 되는 지점을 경계하도록 만드는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이해되어야 한다.



7. 결론: 전면적 앎에 대한 지속적인 의심

푸코의 작업이 남기는 핵심은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간을 돌보고 구원하기 위해 그 인간의 전부를 알아야 한다는 발상은 과연 정당한가. 그리고 그 앎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권한을 부여하는가. 푸코는 이 질문을 통해 돌봄과 권력의 결합을 드러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윤리적 실천의 조건들을 흔든다.

이 사유는 명확한 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권력이 작동하는 지점을 반복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돌봄과 통치 사이의 긴장을 사유하도록 요구한다. 바로 그 점에서 푸코의 분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비판적 자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