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학문 연구 영역: 명제 중심 신학의 계속된 발전과 보완
학문을 연구하시는 분들께서는 교리(명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 성경적·역사적·철학적 배경을 폭넓게 살펴보시는 노력을 계속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나 성육신 같은 주요 교리가 오랜 교회사 속에서 공의회와 교부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다듬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당대 철학이나 정치적 요인이 깊이 얽혀 있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면, 현재에도 이 교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지속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숙고하게 되실 것입니다.
다만, 명제를 한쪽으로만 “강화”하기보다는, 그 정당성의 맥락과 과거에 교회가 “영원한 진리”라 선언했던 순간에 혹시 독선이나 편향이 개입되지 않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교리라는 이름으로 식민주의나 권력 지배가 정당화된 사례도 있었으므로, 학문 연구자들께서는 이처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교리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갱신할 여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사회·문화적 이슈나 과학·기술의 발전과 교리가 어떻게 교차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론과 빅뱅 이론이 보편화된 우주관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라는 명제를 전통적 방식으로만 설명하기는 한계가 있고,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이 급격히 발달한 시대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새롭게 이해할지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명제가 한 시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맥락 속에서 계속 해석·재정립될 수 있음을 수용한다면,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갱신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와 함께, 명제만으로는 모두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신비·체험의 영역을 신학적 논리 안에 어떻게 포함시킬지 고민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시다”라는 한 문장만으로는 그 신비와 실존적 감동을 온전히 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이나 성도들의 영적 체험을 함께 공유해 보면 “이 명제가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구나” 하고 훨씬 쉽게 깨닫게 됩니다. 교리(명제)를 둘러싼 학문적 연구란 단순히 “중세나 공의회 시대의 결정을 외우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통을 발판 삼아 현대의 물음과 과학·기술의 성과, 그리고 이야기·신비·체험 같은 다채로운 요소들을 연결하여 명제가 계속 발전하고 보완될 수 있도록 이끄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리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노력이 이어질 때, 교회는 과거의 유산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복음의 본질을 더욱 정교하고 생생하게 지켜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 교회 현장 적용: 교리 교육, 소그룹 토의, 디지털 사역에서의 활용
목회자나 교육 담당자 입장에서는 교리(명제)를 간단히 요약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주일학교나 청년부에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시다”라는 핵심 문장을 알려 주시면,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신앙의 기둥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한두 줄의 문장만 제시하고 끝내 버리면, 그 문장 뒤에 담긴 풍부한 맥락을 놓치기 쉬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나 성육신 같은 명제는 오랜 역사 속에서 공의회와 교부들의 논쟁을 거치며 형성되었고, 성경 본문에도 다채로운 내러티브가 담겨 있으며, 실제로 신비 체험을 통해 한층 더 깊이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소그룹 토의를 통해 교리의 역사·성경적 근거, 그리고 성도님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삶의 사례를 함께 나누면, 훨씬 더 풍성하고 의미 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교리를 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열어 줍니다. 온라인 예배나 SNS, e-러닝 플랫폼 등을 통해 교리를 빠르고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다만, 여기서 목표가 단순히 “내용을 줄여서 빨리 전달하자”로만 그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몇 분짜리 숏폼 영상이나 SNS 카드뉴스를 통해 관심을 이끌어 낸 뒤, 그다음 단계에서 심화 과정을 제공하거나, 공동체 안에서 토론하고 실천하는 장을 마련하는 ‘멀티 레이어’ 방식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짧은 콘텐츠는 호기심과 접근성을 높여 주지만, 모든 내용을 그 안에 담으려고 하면 교리가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소비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명제) 교육에서는 “한두 줄로 요약된 핵심 진술”과 함께 “그 뒤에 숨겨진 풍부한 역사·해석의 맥락”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명제를 간단하게 가르치는 데만 만족하지 말고, 해당 명제가 교회사와 성경 본문, 신비 체험, 그리고 성도님 각자의 삶이 만나도록 다양한 교육 방식을 활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전략을 잘 구사한다면, 교회학교나 청년부, 혹은 온라인 공동체에서도 교리가 더욱 생생하게 나누어지고, 한층 깊이 있는 신앙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미래 교회를 위한 방향: 명제와 이야기, 신비, 그리고 공동체적 실천의 조화
교회는 “교리(명제) 하나만으로 신앙의 모든 측면을 다 담아 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명제가 없다면 신앙의 기둥이 흔들린다”는 또 다른 진실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메시지를 균형 있게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내러티브)의 필요성과 신비 체험의 중요성,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실천하는 행위의 필수성을 깨닫게 됩니다. 교리가 비록 한두 줄의 ‘고백’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해도, 그 짧은 선언만으로 다 담아 내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며, 이는 이야기와 신비, 그리고 공동체적 실천이 보완해 줄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나 성육신처럼 교회가 전통적으로 붙들어 온 명제들은 신앙의 ‘뼈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도님들이 그 교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일상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성경에 담긴 이야기나 실제 영적 체험, 그리고 공동체적 실천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삼위일체를 한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언뜻 이해한 듯 보일 수 있지만, 복음서에 펼쳐지는 예수님의 생애나 초대교회가 겪었던 성령 체험을 서로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돌보며 봉사하는 삶을 실천해 보아야 비로소 “아, 이 교리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키는구나” 하고 실제로 깨닫게 되는 식입니다.
이처럼 교리가 지닌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교회가 오래도록 이어 온 전통을 미래에도 생생하게 전승할 수 있는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제 자체는 신앙의 뼈대가 되고, 이야기와 신비, 그리고 실천적 삶이 그 뼈대에 살을 붙인다”는 인식을 품으면, 교리가 단순한 지식으로만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핵심 고백을 놓치지 않는 균형을 찾게 됩니다. 신학 연구자와 목회자, 평신도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러한 시각을 공유하고 협력한다면, 교회는 복잡한 현대 문화와 사회가 던지는 도전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고 동시에 유연한 응답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4) 함께 생각해 볼 질문들
- 우리가 교리(명제)를 한두 줄로 요약할 때, 그 안에 담지 못하는 이야기·신비·실천의 요소를 교회 공동체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요?
- 설교나 교육에서 교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살아 있는 체험”과 “공동체적 실천”을 활성화하려면 어떤 실제적 프로그램이나 접근법이 필요할까요?
- 신앙생활 중에 “나는 정말 이 교리를 일상과 어떻게 연결하고 있지?”라고 자문해 볼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내러티브)나 신비 체험이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
- 교리 명제가 개인의 머릿속 지식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차원의 삶과 사역으로 확장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 “명제는 필수지만, 명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중 인식에 근거해, 미래 교회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창의적·혁신적인 신앙 교육 모델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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