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논증: 성 도덕이 신성하다는 근거
도덕과 정신분석이 조화를 이룬다면, 도덕의 특정 영역도 그 신성함을 드러냅니다. 이 명제는 성 도덕이 신성하다고 주장합니다. 성 도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인간 관계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성(性)의 신성함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를 위해 헌신하며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이는 성이 단순한 육체적 욕망을 넘어선 신성한 결합임을 보여줍니다. 기독교에서 성은 결혼 안에서 사랑과 생명을 낳는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집니다.
성 도덕의 신성함은 그 목적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결혼을 꿈꾸며 "내 배우자와 서로를 존중하며 살자"고 다짐한다면, 이는 성 도덕이 충동을 조절하고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은 이를 명확히 합니다. 창세기 2:24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된다"고 하며, 성이 하나님의 창조 의도로 신성하게 설계됨을 증언합니다. 이 "한 몸"은 육체적 결합뿐 아니라, 영적·정서적 유대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네가 아파서 나도 아프다"는 마음을 느낀다면, 이는 성 도덕의 신성한 열매입니다.
성 도덕의 신성함은 사회적 질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이 동네에서 가정을 이룬 부부들이 서로 충실히 지내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모습을 본다고 해보세요. 이는 성 도덕이 개인의 행복을 넘어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기반임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성 도덕이 무너지면 혼란이 옵니다. 예를 들어, 바람을 피우거나 책임을 회피하면 가정이 깨지고 아이들이 상처받습니다. 고린도전서 6:19-20은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 너희가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며, 성이 신성한 이유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성 도덕의 신성함은 실천에서도 확인됩니다. 여러분이 "내 욕망을 다스리자"고 결심하며 충동적인 관계를 피한다면, 이는 성이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신성한 목적을 가진다는 믿음입니다. 성 도덕은 신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 공동체를 반영하며, 인간 삶을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듭니다.
2. 반증: 성 도덕은 신성하지 않다는 주장
성 도덕이 신성하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The History of Sexuality)에서 성 도덕을 "사회적 억압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그는 "성이 신성하다는 건 권력이 만든 허구"라며, 성을 자유롭게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On Liberty)에서 "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이라며, 성 도덕의 규제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결혼 밖의 관계도 괜찮다"고 보았습니다.
종교적 반론도 있습니다. 불교는 "성은 집착의 원인"이라며, 신성함을 부여하지 않고 초월해야 한다고 합니다. 힌두교의 탄트라 전통은 "성이 영적 해방의 길"이라며, 기독교의 신성함과 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일상에서도 "성 도덕은 시대착오적이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자유로운 연애가 자연스럽고, 결혼에 얽매일 필요 없다"거나 "성이 신성하다면 왜 고통도 동반하나?"라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 도덕이 신성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3. 반증에 대한 반박: 성 도덕은 신성하지 않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성 도덕이 신성하지 않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푸코의 "억압 도구" 주장은 성 도덕의 긍정적 역할을 놓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결혼 안에서 서로 충실하며 "네가 내게 전부다"라는 신뢰를 느낀다면, 이는 억압이 아니라 사랑의 결실입니다. 성 도덕은 자유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관계로 이끕니다. 정신분석적으로도, 충동적 성행동은 불안과 공허를 낳지만, 도덕적 성은 안정감을 줍니다. 밀의 "개인 행복" 주장도 약합니다. 결혼 밖의 관계가 행복을 준다고 해도, 왜 파트너의 배신에 상처받을까요? 이는 성이 신성한 질서를 가진다는 증거입니다.
불교의 "집착" 주장은 성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긍정적 의미를 무시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를 위해 헌신하며 "네가 있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이는 집착이 아니라 신성한 결합입니다. 탄트라의 "영적 해방"은 기독교와 다르지만, 성의 목적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신성함을 간접 확인합니다. 일상의 "시대착오" 주장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자유로운 연애가 자연스럽다 해도, "책임"과 "충실함"을 잃으면 혼란과 고통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고 책임을 회피하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고통이 동반된다"는 질문도 반박됩니다. 고통은 성의 오용에서 오며, 신성한 도덕을 따를 때 치유됩니다.
성경은 성 도덕의 신성함을 명확히 합니다. 에베소서 5:31-32는 "두 사람이 한 몸이 된다 이는 큰 비밀이라"고 하며, 성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를 반영한다고 증언합니다. 성 도덕은 신성합니다. 이는 억압이나 착오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르는 길입니다.
4. 실천: 성 도덕의 신성함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
성 도덕의 신성함을 실천하며 그 깊이를 깨달아보세요.
- 말씀 묵상: 매일 20분 동안 창세기 2:24—“한 몸이 된다”—와 고린도전서 6:19-20—“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를 읽고, “오늘 내가 성을 어떻게 바라봤나? 욕망을 다스렸나, 관계에서 존중했나?”를 깊이 묵상해보세요. 묵상 후 "어떻게 신성하게 살까?"를 적어보세요.
- 일상 관찰: 하루 동안 성 도덕이 영향을 미친 순간을 상세히 기록해보세요. "충동을 억제한 순간", "파트너와 신뢰를 나눈 대화", "무책임한 태도를 본 느낌" 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이게 신성함과 어떻게 연결되나?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를 분석해보세요. 예를 들어, "TV에서 본 무분별한 성이 불편했다"면, "왜 그런지, 신성함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고민해보세요.
- 작은 행동: 성 도덕을 신성하게 실천해보세요. 욕망이 들 때 "왜 그런가?"를 5분간 탐구한 뒤 "관계를 존중하자"는 결심을 하고, 파트너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나누며, “이 실천이 내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풍성하게 하나?”를 느껴보세요. 하루 끝에 "성 도덕의 신성함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나?"를 기록하고, 다음 날을 위해 "어떤 태도를 가질까?"를 계획해보세요.
결론
성 도덕은 신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을 반영하며, 삶과 공동체를 신성하게 이끕니다.
추가(순전한 기독교 본문 일부)
"마지막으로, 제가 성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기독교 도덕의 중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순결하지 않은 것을 최고의 악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육체의 죄는 악하지만, 다른 죄에 비하면 가장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쾌락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전적으로 영적인 쾌락입니다. 즉 잘못을 남에게 미루고 즐거워하는 것, 남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선심 쓰는 척하면서 남의 흥을 깨뜨려 놓고 좋아하는 것, 험담을 즐기는 것, 권력을 즐기는 것, 증오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악한 죄입니다.
제 안에는 제가 정말 추구해야 할 인간적 자아와 싸우는 두 가지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물적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적 자아입니다. 둘 중에 더 나쁜 것은 악마적 자아입니다.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냉정하고 독선적인 도덕가가 거리의 매춘부보다 훨씬 더 지옥에 가까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둘 중 어느 쪽도 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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