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길버트, 지구 자기장과 나침반의 비밀 (1600년)
1600년,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영국 런던의 북적이는 거리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길버트. 의사로 성공한 그는 화려한 실험실도, 정교한 기계도 없이 손에 자석과 나침반을 들고 세상을 뒤흔들 질문에 답을 썼다. “나침반 바늘은 왜 북쪽을 가리키는가?” “지구는 어떤 힘으로 우리를 붙잡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18년간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마침내 책 De Magnete, Magneticisque Corporibus, et de Magno Magnete Tellure (자석과 자성체, 그리고 거대한 자석 지구에 관하여)로 세상에 나왔다. 이 얇은 라틴어 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험 과학의 첫걸음이었고, 지구를 과학의 무대로 올린 선언이었다.
어린 시절과 학문의 길: 호기심의 뿌리
길버트는 1544년 5월 24일, 영국 에식스주 콜체스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제롬 길버트는 지역 행정관으로, 상업으로 재산을 모은 신흥 계층의 일원이었다. 어린 길버트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아이였다. 그는 집 근처 들판에서 돌을 주워 자석의 힘을 느끼며 놀았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고대 문헌을 탐독했다. 1558년, 14세에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1561년 학사, 1564년 석사, 1569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그는 학문의 길을 걸었다. 그의 논문은 의학 이론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자연의 비밀을 향하고 있었다.
1570년대, 길버트는 런던으로 옮겨 의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진료실은 런던 시내 세인트폴 대성당 근처에 있었고, 곧 명성이 자자해졌다. 1601년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가 되었고, 왕립의학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 회장(1600년)을 지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열정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밤마다 집에서 자석을 만지작거리며 실험했고, 나침반 바늘의 미세한 떨림을 관찰했다. 그의 동료들은 “의사가 왜 자석에 미쳤느냐”며 비웃었지만, 길버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마음은 바다를 건너는 항해사들과 함께 있었다.
시대의 배경: 항해와 자석의 시대
16세기 말 영국은 항해와 탐험의 황금기를 맞았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며 바다의 패권을 쥔 영국은 신대륙으로 눈을 돌렸다.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는 지구를 일주했고, 월터 롤리(Walter Raleigh)는 아메리카 식민지를 꿈꿨다. 이 모든 항해의 중심에는 나침반이 있었다. 나침반은 12세기 유럽에 전해진 이래 항해사의 생명줄이었지만, 그 작동 원리는 신비였다. 어떤 이들은 북극성(Polaris)이 바늘을 끌어당긴다고 믿었고, 다른 이들은 북극에 거대한 자석 섬이 있다고 상상했다.
길버트는 이런 속설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런던의 항구에서 항해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도구 제작자들과 자석을 실험했다. 13세기 페트루스 페레그리누스(Petrus Peregrinus)의 Epistola de Magnete는 자석의 극성을 설명했지만, 길버트는 더 멀리 갔다. 그는 책상 위의 나침반을 보며 물었다. “만약 지구 자체가 자석이라면?” 이 질문은 18년간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테렐라와 실험: 지구를 손에 쥐다
길버트의 가장 놀라운 통찰은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가설이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테렐라(terella)”라는 구형 자석을 만들었다. 무게 75킬로그램의 자철석(lodestone)을 깎아 만든 이 “작은 지구”는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는 테렐라 주위에 작은 나침반 바늘—“버소리움(versorium)”이라 불리는 금속 조각—을 움직이며 관찰했다. 바늘이 북극과 남극을 가리키고, 표면을 따라 기울기가 변하는 모습은 실제 지구의 나침반과 똑같았다.
그는 실험을 기록했다. 자석을 자르면 각각 북극과 남극을 가진 새 자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는 힘이 거리에 따라 약해진다고 썼다. 그는 자석을 가열하면 자력이 사라진다는 점을 확인했고, 마늘로 문지르면 자력이 없어진다는 속설을 실험으로 반박했다. “75개의 다이아몬드를 모아 실험했지만 효과는 없었다”며 그는 미신을 깨뜨렸다. 그는 정전기와 자기를 구분하며, 호박(amber)을 문질러 생기는 힘을 “electricus”라 이름 붙였다. 이는 전기(electricity)라는 단어의 기원이었다.
De Magnete는 여섯 권으로 나뉘어 체계적이었다. 제1권은 자석의 역사와 속설을, 제2권은 자석의 기본 성질을, 제3~5권은 실험 결과를, 제6권은 지구 자기장의 이론을 다뤘다. 그는 지구 중심에 철이 있어 자기장을 만든다고 믿었고, 자기력이 지구를 회전시킨다고 상상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구 회전설을 뒷받침하는 철학적 기반이었다.
항해의 혁신: 나침반의 실용성
길버트의 발견은 항해사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었다. 그는 나침반 바늘의 “기울기(dip)”가 위도에 따라 변한다는 법칙을 밝혔다. 북쪽으로 갈수록 바늘이 아래로 기울었고, 적도에서는 수평을 유지했다. 그는 이를 “경사계(inclinometer)”로 측정해 흐린 날씨에도 위도를 추정할 방법을 제안했다. 당시 항해사들은 별을 볼 수 없는 날에 길을 잃었지만, 길버트의 아이디어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의 동료 에드워드 라이트(Edward Wright)는 De Magnete 서문에서 “항해와 인류에 이보다 중요한 발견은 없다”며 찬사를 보냈다. 길버트는 나침반 제작자들과 협력해 바늘의 균형을 개선했고, 그의 이론은 영국 해군의 항해 기술을 강화했다.
철학과 한계: 상상과 오류
길버트는 자기력을 “영혼(anima)”이라 불렀다. 그는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며, 자기력이 지구를 하루에 한 번 회전시킨다고 믿었다. 이는 갈릴레오와 케플러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뉴턴의 중력 이론에 의해 수정되었다. 그는 지구 자기장의 기원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외핵의 용융 철 운동이 자기장을 만든다고 안다. 그의 정전기 실험도 미완성이었다. 그는 호박과 유리의 마찰을 관찰했지만, 전하의 개념은 18세기 프랭클린에게 이어졌다.
길버트는 자만심이 강했다. 그는 경쟁자를 “무지한 자”라 비난했고, 자신의 이론을 절대적 진리로 여겼다. “자석에 관한 한 내가 최고다”라는 그의 태도는 비판을 낳았다. 하지만 그의 실험 정신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관찰과 실험으로 속설을 깨고, 과학의 토대를 쌓았다.
인간 길버트: 마지막 여정
길버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런던의 집에서 조용히 살았다. 1600년 왕립의학회 회장이 되었고, 1601년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가 되었지만, 1603년 11월 30일, 제임스 1세 재임 초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였다. 그의 미완성 원고는 동료 윌리엄 바를로우(William Barlowe)가 보존했고, 1651년 De Mundo Nostro Sublunari Philosophia Nova로 출간되었다.
유산: 과학의 새벽
De Magnete는 유럽 전역에 퍼졌다. 갈릴레오는 그의 실험을 읽고 편지를 보냈고, 케플러는 자기 철학을 행성 운동에 적용했다. 19세기 지질학자들은 그의 자석 실험을 바탕으로 지구 자기장의 역사를 추적했고, 20세기 전자기학의 토대가 되었다. 길버트는 망원경도, 현미경도 없이 세상을 잰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 쥔 테렐라는 지구를 비췄고, 그의 질문은 과학의 길을 열었다.
1600년 런던의 작은 집에서 시작된 그의 호기심—“나침반은 왜 북쪽을 가리키는가?”—는 천 년을 넘어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세상의 비밀을 어떻게 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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