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C.S. 루이스는 『Mere Christianity』에서 도덕률(Law of Human Nature)이 인간 본성에 내재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임을 주장하며, 이를 단순한 본능이나 사회적 관습으로 축소하려는 반론들을 반박한다. 명제 2는 도덕률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주요 반론들이 타당하지 않음을 논증한다. 이 글은 도덕률이 본능이나 사회적 관습이 아니라는 루이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대표적인 반론(도덕률은 사회적 관습에 불과하다)을 검토한 후, 이에 대한 반박을 통해 명제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이를 통해 도덕률이 인간의 주관적 발명물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실재임을 밝히고자 한다.
논증: 도덕률에 대한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루이스는 도덕률이 단순한 본능이나 사회적 관습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도덕률을 자연법칙(예: 중력)과 구별하며, 자연법칙이 사물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데 반해, 도덕률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나무는 자연법칙에 따라 성장하거나 열매를 맺지만, 우리는 나무가 “잘못된” 열매를 맺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다르다. 누군가가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면, 우리는 그를 비난하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이는 도덕률이 단순히 관찰 가능한 행동(사실)이 아니라, 행동을 판단하는 외부의 기준(마땅함)을 포함함을 보여준다.
루이스는 도덕률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강요되는(pressing on us)” 실재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기차에서 내 자리를 몰래 차지하거나, 나를 고의로 넘어뜨리려 하면, 우리는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잘못됐다”고 판단한다. 이는 도덕률이 개인의 편의나 유용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보편적 기준에 근거함을 시사한다. 현대적 맥락에서, 직장에서 동료가 공로를 가로채거나, 온라인에서 누군가가 악의적인 댓글을 달 때, 우리는 단순히 감정적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객관적으로 잘못됐다고 판단한다. 이는 도덕률이 인간의 주관적 의견을 초월한 실재임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논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도덕률은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이며, 자연법칙과 달리 “마땅함”을 규정한다.
2. 도덕률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인간의 마음에 강요되는 실재다.
3. 그러므로 도덕률을 본능이나 사회적 관습으로 축소하려는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
반증: 도덕률은 사회적 관습에 불과하다
도덕률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주요 반론은 도덕률이 사회적 관습(social convention)에 불과하며, 교육이나 문화적 학습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점은 도덕적 상대주의(moral relativism)와 연결되며, 도덕률이 보편적이지 않고, 각 사회나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문화에서는 복수결혼이 허용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이를 금지한다. 이는 도덕률이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현대적 맥락에서 이 반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예를 들어, 도덕적 상대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동성 결혼이나 사생활의 자유와 같은 주제에서 “옳고 그름은 문화마다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도덕률이 보편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규범일 뿐이라고 본다. 이는 루이스의 주장, 즉 도덕률이 인간 본성에 내재된 객관적 실재라는 명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반증에 대한 반박
루이스는 도덕률이 사회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반박하며, 학습된 지식이 반드시 인간의 발명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수학을 비유로 든다: 우리는 곱셈표를 학교에서 배우지만, 곱셈의 원리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임을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도덕률이 교육을 통해 전달된다 하더라도, 그 근본 원리는 인간의 발명물이 아니라 보편적 실재다. 예를 들어, 고립된 섬에 사는 사람은 곱셈표를 배우지 못했을지라도, 2+2=4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도덕률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전달되지만, 그 기원은 인간의 주관적 합의를 초월한다.
또한, 루이스는 문화 간 도덕률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어떤 문화는 한 명의 배우자를, 다른 문화는 네 명의 배우자를 허용하지만, 마음대로 누구와든 관계를 맺는 것은 어느 문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도덕률이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된 도덕적 주제(예: 공정함, 충실함)가 모든 문화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현대적 예로, 노예제에 대한 태도는 과거와 현재에서 다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가 잘못이라는 기본 원칙은 여전히 공유된다. 이는 도덕률이 사회적 관습을 초월한 보편적 기준임을 시사한다.
루이스는 또한 도덕적 상대주의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한다. 만약 도덕률이 단순히 사회적 관습이라면, 한 사회의 도덕이 다른 사회보다 “낫다”고 평가할 근거가 없다. 예를 들어, 현대인이 19세기 노예제를 비판할 때, 이는 단순히 현재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노예제가 보편적 도덕률(인간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률이 사회적 합의를 넘어서는 객관적 기준임을 증명한다. 현대적 맥락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이나 인권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도덕 기준(예: 생명 보호, 공정성)에 호소한다.
결론
“도덕률에 대한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는 명제는 도덕률이 단순한 사회적 관습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내재된 객관적 기준임을 논리적으로 입증한다. 도덕률이 사회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반론은, 도덕률의 보편성과 문화 간 공통된 도덕적 주제를 설명하지 못하며, 도덕적 상대주의의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루이스의 논리는 현대적 맥락에서도 유효하며, 도덕률이 인간이 만든 주관적 규범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강요되는 실재임을 보여준다. 이 명제는 도덕률의 기원을 탐구하는 후속 논의로 이어지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도덕적 판단이 단순한 사회적 학습인지, 아니면 더 깊은 보편적 기준에 뿌리를 두는지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명제로 풀어보는 순전한 기독교
머리말 『순전한 기독교』는 원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C.S. 루이스의 대표작입니다. 이 책을 명제로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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