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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 신학과 명제 논리의 발달

by modeoflife 2025. 3. 28.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과 명제화된 논증

 

이제 고대 교회 시대를 지나 중세 시대로 살짝 시간을 건너뛰어 보겠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스콜라 신학자”라고 불립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주목받는 이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입니다. “스콜라(Schola)”라는 말 자체가 ‘학교’ 또는 ‘학문’을 의미하듯, 이들은 신학을 단순 믿음이 아닌 학문적 논증의 대상으로 삼아 보고 싶어 했지요.

 

아퀴나스는 자신의 대작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당시 유럽에 재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개념들을 적극 활용합니다. 이전 시대 교부들이 신앙고백과 전통을 “주어진 것”으로 받았다면, 토마스와 스콜라 신학자들은 “어떻게 이것을 이성적으로 해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붙들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명제를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려는 시도가 나온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오르는 다섯 길(Five Ways)”. 아퀴나스는 세상의 모든 것을 관찰해 볼 때,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면 그를 움직이는 첫 번째 원인(Unmoved Mover)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거나, 우주가 질서 있게 운영되는 걸 보니 궁극적인 목적과 원인을 제공하는 최고의 지성(God)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신존재”를 논증 형태로 제시하지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라는 교리적 명제를, 단지 “성경이 있으니 믿어라”가 아니라, 철학적 근거를 들어 합리적 방식으로 뒷받침하려 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 전통 안에서도 “그건 이성만으로 다 증명 가능한가?”라는 반론이 일어났고, 아퀴나스의 논리에 의문을 표하는 신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논증 시도가 중세 교회를 한층 더 “교리에 대한 체계적 이해”로 발전시켰다는 점입니다. 교리 문장(“하나님은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삼위일체이시다” 등)을, 단순히 “전통이 그러하니 따르자” 수준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중세 대학의 학문 제도를 통해 논리적으로 해설해 보려 애썼다는 것이 스콜라 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라는 짧은 문장 뒤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안한 “오르는 다섯 길”이라는 광대한 논증 구조가 깔려 있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면, 첫 번째로 움직이는 자(Prime Mover)가 필요하다,

- 모든 사물은 원인을 갖되, 무한 소급이 불가능하므로 첫 번째 원인(First Cause)이 있어야 한다,

 

같은 식의 논법이 그 문장을 받쳐 주지요. 현대인에게는 이것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합당하냐는 또 다른 논쟁을 부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중세 교회는 이런 과정을 통해 교리 명제에 합리적 외피를 씌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때문에 스콜라 신학자들의 유산은, “이성”과 “신앙”이 만나는 고전적인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노력 덕분에 중세인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라는 고백을 지적으로도 논의할 수 있었고, 대학(파리, 옥스퍼드 등)에서 신학이 “학문의 여왕(Queen of Sciences)”으로 자리 잡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 교회가 지나치게 이성 중심의 사변에 빠졌다는 비판도 후대에 받았지만, 그럼에도 “명제를 논증한다”는 전통은 교회가 교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원동력으로 작동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지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은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한 문장을 철저히 이성적 논증 형태로 펼친 대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스콜라 신학의 중요한 특징은, 교부들이 물려준 신앙고백(“하나님 존재”)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외부 철학(아리스토텔레스)과 결합해 보다 엄밀하고 체계적으로 해명해 보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 정신이 후대 신학자들에게도 지적 도전과 영감을 안겼고, 교리 문장 하나가 철학적 논리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다는 역량을 증명해 냈던 것이, 바로 스콜라 신학의 빛나는 업적이었습니다.

 

(2) 스콜라주의의 특성: 권위(교부·성경)와 이성의 상호작용

 

중세에 이르러, 교회는 오랜 전통으로 축적된 지식과 교리를 가슴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성경 본문과 교부들의 가르침, 그리고 교황의 발언이나 공의회 결정 같은 것들 말이지요. 이들은 당시 교회 속에서 절대적 권위로 여겨졌고, 사실상 신앙과 삶의 출발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콜라 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그 권위적 전제를 단순히 “받아들여라!”라고 강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이 전제를 이성(rationalitas)을 통해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즉, “이성 없는 신앙은 맹목적인 것 아니겠느냐?”라는 문제 의식이 이들을 움직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성경과 교부들의 글(권위)을 무조건 신비나 경건으로만 대하지 않고, 당대 유행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등을 가져와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려고 했습니다. 예컨대,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는 강의가 있었다고 합시다. 이전 시대 같으면, “이는 교부들이 정한 것이니 믿으십시오”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을 텐데, 스콜라 신학자들은 달랐습니다.

 

- 먼저 성경 본문에서 삼위일체의 근거를 탐구하고,

- 그 다음 교부들의 주석과 논쟁 기록을 살피며,

- 여기에 철학적 개념(“본체(Ousia)는 무엇이고, 위격(Person)은 또 무엇인가?”)을 결합해,

- 최종적으로 “삼위일체라는 교리 명제”가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풀어 간 것이지요.

 

그 결과, 교회는 이러한 ‘학문적 신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교육기관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파리·옥스퍼드·볼로냐 같은 대학들이 신학을 “학문 중의 학문”이라 부르며, 최고 수준의 강의를 제공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은 이 강의에서 “성경—교부—철학적 논거”의 순서로 펼쳐지는 강의를 듣고, 교리를 단지 교회 전통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보면서 내면화하게 되었죠.

 

실제로, “삼위일체” 같은 복잡해 보이는 교리를 이렇게 ‘해부’하고, 또 논증 형태로 요약된 명제로 제시해 줌으로써, 교회는 학생들에게 “이것이 결코 비합리적 명제가 아니며, 오히려 인간 이성과 조화할 수 있는 깊은 진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의 시각에선, 그 논증들이 현대 과학이나 철학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느냐는 또 다른 논쟁이 되겠지만, 적어도 중세 교회의 입장에선 이 방식이 “권위와 이성의 상호작용”이라는 절묘한 균형점을 만들어 냈던 셈입니다.

 

스콜라주의는, 한쪽에선 권위(교부, 성경, 교황)를 공고히 붙들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선 이성을 포기하지 않고 탐구와 해설을 전개한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학생들이 “이건 왜 이렇습니까?”라고 묻는 데 대해, “그냥 믿어라” 대신 “성경과 전통, 그리고 철학적 근거를 통해 이것이 일리 있다는 걸 보여 주겠다”라고 답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지요. 이로써 교회 교리는 중세 대학에서 체계화되고, “짧은 문장 하나”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장·절의 논쟁이 펼쳐지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3) 신학적 명제의 체계화와 중세대학의 학문적 토대

 

스콜라 신학이 중세대학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이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 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말씀에 담긴 교리를 철학적으로 비춰 보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려 애썼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교회 안에서 전해 내려온 전승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면,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 말씀에 담긴 진리를 좀 더 깊이 해석하고, 당대 철학(특히 아리스토텔레스)과 함께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교리 문장은 자연스럽게 논리 공식처럼 간결하고 구조화된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부·성자·성령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면, “그건 교회의 전통이니까 믿으십시오”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철학적 개념(‘본체(Ousia)’와 ‘위격(Person)’의 구별 등)을 빌려 논리적으로 풀어 주는 방식이지요. 교리 문장이 마치 요약된 정의처럼 자리 잡으면, 신학자들이 교단 간 분쟁이나 이단 논쟁이 벌어졌을 때도 “우리는 이렇게 정의한다”며 선명하게 입장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교리가 명제 형태로 체계화되면, 어느 대학 강의에서나 공통 언어로 활용 가능해지고, 신학을 ‘학문 중의 학문’이라고 부를 만한 기반이 단단해지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모습이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 “너무 이성에 치우친 신학”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교리가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경건보다는 논리와 개념이 우선한다”라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스콜라 신학이 없었다면, 기독교 교리들이 이렇게 치밀하게 정리·체계화되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반론하는 이도 많습니다. 사실상 중세 스콜라 시대는, 교리가 단순 전통이나 암기 과목이 아니라, ‘이성과 신앙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얼마나 논리적 토대를 갖추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하나의 ‘문화적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콜라 신학이 만들어 낸 유산은, “어떤 명제(‘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삼위일체는 한 본체에 세 위격이 있다’ 등)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과제에 대하여, 교회가 일종의 틀과 방법론을 마련해 준 셈입니다. 이 틀은 이후 계몽주의를 비롯한 여러 도전과 논쟁 속에서 때로는 수정되고, 때로는 옹호되었지만, 교회가 지적인 자양분을 쌓아 가고 교리적 합의를 세분화해 온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4) 함께 생각해 볼 질문들

 

- 스콜라 신학자들이 권위(성경·교부·교황)와 이성(철학·논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던 시도는, 오늘날 교회와 신학에서 어떻게 재평가될 수 있을까요?

- 중세 신학교육이 “합리적 논증과 명제화된 교리”를 통해 신앙을 가르쳤다는 점이, 현대 교회의 교리 교육에는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 스콜라 신학이 발전시킨 “논리 공식” 같은 교리 정리는, 교리를 더욱 선명히 전달하는 장점을 지닌 동시에, 혹시 어떤 위험이나 한계를 초래할 수 있을까요?

- 종교개혁자들이 “이성에 치우쳤다”고 비판한 스콜라 신학의 특징 중, 오히려 오늘날의 교회가 배울 만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같은 신앙적 전제를 철학적으로 해설하고 논증하려 한 스콜라 신학 전통이, 현대 교회가 세상과 대화할 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명제, 신학 그리고 신앙'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