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세상은 캄캄하고 혼돈 속에 있었으나(창세기 1:2),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창세기 1:3) 하시어 빛을 창조하시고 낮과 밤을 나누셨으며(창세기 1:4-5), 하늘을 펼치시고(창세기 1:6-8), 바다와 땅을 나누어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시고(창세기 1:9-13),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 땅의 짐승들을 만드신 후(창세기 1:14-25), 여섯째 날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아담을 창조하시니(창세기 2:7),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하셨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손길로 생명을 얻어 그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구약 성경은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사실을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하시며, 모든 존재의 기원을 유일하신 하나님께 돌리십니다. 하늘과 땅, 별과 바다는 그의 말씀으로 질서 있게 형성되었고(창세기 1:6-10), 생물은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되어 그의 뜻을 반영합니다(창세기 1:20-25). 시편 19:1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느니라”며 창조물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고 노래하며, 이사야 42:5는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펴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십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셨다”(출애굽기 20:11)고 기록하셨고, 욥은 “만물 중에 어느 것이든지 여호와의 손이 이를 짓지 아니하셨나이까”(욥 12:9)라고 반문하시며 창조의 보편성을 역설합니다.
더 나아가, 창조의 질서와 복잡성은 하나님의 작품임을 뒷받침합니다. 창세기 1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며, 각 날의 창조 순서—빛, 하늘, 땅과 식물, 천체, 생물, 인간—는 우주의 정교한 설계를 드러냅니다. 이는 고대 근동의 다신론적 창조 신화,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시에서처럼 신들 간의 혼란과 싸움으로 세상이 생겼다는 주장과 뚜렷이 대비됩니다. 구약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의지와 목적에 따라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는 창조물의 통일성과 조화를 설명하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현대 과학적 관찰도 이 논증을 간접적으로 지지합니다. 우주의 정밀한 상수들—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등—이 생명을 가능케 하는 좁은 범위 안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는 사실(소위 ‘미세 조정’ 논증)은 무작위적 우연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시편 104:24—“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와 같은 구절과 조화를 이루며, 창조 뒤에 지성적 설계자가 계심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한복음 1:3)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유지하시며,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단호히 선포합니다. 따라서 구약의 증언, 창조의 질서와 목적성, 과학적 관찰의 암시, 그리고 대안 설명의 약점은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주장에는 강력한 반대 의견이 존재합니다.
첫째, 세상이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물이라면 왜 전쟁, 질병, 자연재해와 같은 혼란과 고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시편 19:1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했지만, 지진과 허리케인은 영광보다는 파괴를 드러내며 창조의 선함을 의심하게 합니다.
둘째, 현대 과학은 우주가 약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물리적 사건으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창세기 1장의 여섯 날 창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듭니다. 화석 기록과 진화론은 생물이 “종류대로” 갑작스레 창조되었다기보다는 수십억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며(찰스 다윈, 종의 기원), 구약의 창조 서술을 자연적 과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은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고대 근동의 신화적 문학으로 간주합니다. 예를 들어,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하나님을 허구적 존재로 치부하며, 창조 이야기가 인간의 심리적 필요에서 비롯된 상상일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비슷하게, 고대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시는 신들 간의 혼돈과 전투로 세상이 생겼다고 주장하며, 구약의 단일 창조주 이야기가 문화적 편향에 불과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슬람도 창조를 인정하지만(꾸란 41:9-12), 알라가 하늘과 땅을 “이틀 만에” 창조했다고 기록하며 구약의 시간표와 달라 상충하는 해석을 낳습니다.
넷째, 철학적 회의론은 창조의 목적성과 질서를 문제 삼습니다. 만약 우주가 하나님의 지성적 설계라면, 왜 은하의 99%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빈 공간이고, 지구의 생명은 끊임없는 생존 투쟁 속에 있는 걸까요?(버트런드 러셀,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 이는 미세 조정 논증을 약화시키며, 우연과 자연 선택이 더 그럴듯한 설명임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자체의 모순—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 차이(식물 vs 인간)—은 그 신뢰성을 의심케 합니다. 따라서 과학적 대안, 신화적 유사성, 철학적 의문, 종교 간 불일치는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킵니다.
이 반대 주장은 창조의 본질과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세상의 혼란과 고난이 창조의 결함을 증명한다고 보지만, 이는 사실 죄의 결과입니다. 창세기 1:31에서 하나님은 창조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셨고, 창세기 3장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죽음과 고난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합니다(창세기 3:17-19, 로마서 5:12). 따라서 고난은 창조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완벽한 질서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왜곡된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 현대 과학의 빅뱅 이론이 창세기를 무시한다고 하지만, 빅뱅은 오히려 창조의 시작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우주의 절대적 기원을 선언하며, 빅뱅 이전의 ‘무’에서 ‘유’가 생긴 원인을 과학은 설명하지 못합니다. 저명한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조차 “왜 무가 아닌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Leibniz의 질문 재인용), 우주의 기원을 물리 법칙만으로 풀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즉, “빛이 있으라”는 말씀(창세기 1:3)—과 조화될 수 있으며, 빅뱅을 하나님의 창조 도구로 해석할 여지를 줍니다. 진화론 역시 “종류대로” 창조된 생물의 틀 안에서 적응과 변화를 허용하는 ‘미시 진화’로 볼 수 있어(창세기 1:21), 과학과 성경이 반드시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이 창세기를 신화로 치부하지만, 그 일관성과 독창성은 단순 허구로 보기 어렵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시가 다신 간의 혼돈 속 창조를 묘사한다면, 창세기는 한 분 하나님의 주권적 명령으로 질서와 목적성을 강조합니다(이사야 45:18, “여호와께서 땅을 창조하시되 혼돈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고대 문헌들과의 유사성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가 왜곡된 형태로 다른 문화에 반영되었음을 시사하며, 창세기의 간결성과 신학적 깊이는 신화적 상상 이상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이슬람의 꾸란도 창조를 인정하며(꾸란 41:9-12), 시간적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일신의 주권을 공유하므로 근본적으로 구약과 일맥상통합니다.
넷째, 철학적 의문—우주의 빈 공간과 생존 투쟁—은 창조의 목적을 간과합니다. 성경은 세상이 인간만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밝힙니다(시편 19:1, 계시록 4:11). 미세 조정 논증은 우주의 상수들이 생명을 위해 정밀하게 맞춰졌음을 보여주며(폴 데이비스, 우주의 설계), 이는 우연으로 보기보다 지성적 설계—하나님의 지혜(시편 104:24)—로 더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순서 차이는 문학적 스타일의 차이(창조 전체 vs 인간 중심 세부)로 해석되며, 신학적 모순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내러티브로 이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반증이 자연 발생이나 우연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과학적·철학적으로 설득력이 약합니다. 무생물에서 생물로의 자연 발생은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루이 파스퇴르의 반박), 엔트로피 법칙은 무질서에서 질서가 자발적으로 생길 확률을 극도로 낮춥니다. 반면, 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한복음 1:3)라며 창조의 기원과 목적을 일관되게 제시합니다. 따라서 반증은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시각에 불과하며, 구약의 증언, 창조의 질서, 과학과의 조화는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증거가 더 강력함을 입증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믿음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첫째, 창조의 질서와 목적성을 인식하며 환경 보존에 힘쓸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명하셨기에,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에 맞서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의 연장선이 됩니다. 둘째, 미세 조정 논증과 같은 과학적 통찰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며,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모색하는 교육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죄의 결과로 이를 이해하고(로마서 5:12), 공동체적 회복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의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경건함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져, 세상을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곳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실천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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