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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주의의 형성 배경과 역사적 영향 - 4세기 기독론 논쟁을 중심으로

by modeoflife 2025. 12. 16.


Ⅰ. 서론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4세기 초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격렬하고 장기적인 교리 논쟁을 촉발한 신학 사조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한 신학자의 이단적 주장에 대한 교회의 반응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지위, 삼위일체 이해, 교회 권위와 제국 정치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리우스주의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정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 세기 동안 교회와 사회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글은 아리우스주의의 사상적 형성 배경, 핵심 교리, 니케아 논쟁의 전개, 그리고 역사적·사상적 영향을 학술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아리우스주의가 왜 단순한 이단 사조를 넘어 기독교 교리 형성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Ⅱ. 아리우스와 아리우스주의의 기본 개념

아리우스(Arius, 약 256–336)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로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독특한 기독론적 주장을 제기하였다. 그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성자는 성부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다.
2. 그러므로 성자는 영원하지 않다.
3. 성자는 신적 위엄을 지니지만, 성부와 동일 본질(homoousios) 은 아니다.
4.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명제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아리우스에게서 성자는 구원을 위해 선택된 최고의 피조물이며, 하나님과 세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이해는 성자의 신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나, 성부와의 본질적 동등성을 명백히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통 교회와 충돌하였다.


Ⅲ. 아리우스주의의 사상적 형성 배경

1. 헬라 철학, 특히 플라톤주의의 영향

아리우스주의는 사상적 형성 과정에서 고대 헬라 철학, 특히 중기 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신 개념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주의 전통에서 궁극적 실재는 절대적으로 초월적이며, 변화나 고통, 분할 가능성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신 개념은 신적 실재의 유일성과 불변성을 강하게 강조하였고, 아리우스에게 있어 이는 오직 성부 하나님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속성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성자가 성부와 동일 본질을 가진다는 주장은 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철학적 전제는 성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아리우스는 성자를 성부와 동일한 신적 본질을 지닌 분이 아니라, 성부와 피조 세계 사이에 위치한 중개적 존재로 이해하였다. 그 결과 성자는 질서와 위계를 갖는 우주 구조 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피조물, 즉 구원 사역을 위해 창조된 탁월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이와 같은 이해는 플라톤주의적 위계 질서 개념을 기독론에 적용한 결과로, 아리우스주의의 신학적 특징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2. 알렉산드리아 신학 전통

아리우스가 속한 알렉산드리아 신학은 성경을 이성적·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 전통은 오리게네스(Origenes)의 영향을 받았는데, 오리게네스 역시 성자의 영원성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부와 성자 사이의 질서적 종속성을 일정 부분 인정했다.

아리우스는 이러한 종속 개념을 급진화하여, 성자의 존재 자체를 창조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따라서 아리우스주의는 오리게네스 신학의 직접적 계승이라기보다는, 특정 요소의 일면적 강조에서 발생한 변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3. 성경 본문에 대한 문자적 해석

아리우스주의는 기독론 형성에 있어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강한 문자주의적 경향을 보였다. 아리우스는 잠언 8장 22절에서 지혜가 “창조되었다”고 표현된 점, 요한복음 14장 28절에서 예수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말한 점,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리스도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로 불린 점을 핵심 근거로 삼았다. 이러한 구절들은 아리우스에게 성자가 영원하고 자존적인 존재라기보다, 성부에 의해 시작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해석 방식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 흐름이나, 다양한 본문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형성하는 신학적 증언보다는 개별 구절의 문언적 의미를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 결과 성자의 신성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이해, 특히 요한복음 1장과 같은 본문이 증언하는 성자의 영원성과 신적 동일성은 충분히 통합되지 못했다. 이러한 부분적·선별적 해석은 아리우스주의가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는 데에는 기여했으나, 성경 증언 전체의 복합성과 긴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4. 유대교적 일신론의 계승

아리우스주의는 초기 기독교가 계승한 유대교적 일신론을 신학적 사고의 핵심 전제로 삼았다. 유대 전통에서 하나님은 유일하고 분할될 수 없는 절대자이며, 어떠한 피조물과도 본질을 공유하지 않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아리우스는 이러한 신 이해를 철저히 유지하려 했고, 성부와 성자를 동일 본질로 규정하는 입장이 하나님의 유일성을 훼손하거나 다신론적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성부만을 참되고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규정하고, 성자는 그 아래에 위치한 존재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경계심은 결과적으로 성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성자는 구원 사역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지만, 성부와 동일한 신적 본질을 지닌 분은 아니라는 주장이 그 핵심이다. 아리우스에게서 이는 하나님 유일성의 수호라는 긍정적 의도를 지녔으나, 동시에 성자의 신성과 영원성을 약화시킴으로써 전통적 기독론과 근본적인 긴장을 형성하였다. 이 긴장은 이후 삼위일체 교리가 정식화되는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5. 교리 미정립 상태와 역사적 상황

4세기 초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가 아직 체계적으로 정식화되기 이전 단계에 놓여 있었다. ‘본질(ousia)’과 ‘위격(hypostasis)’이라는 핵심 개념조차 지역과 신학 전통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동일한 용어가 상이한 신학적 내용을 지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통일된 교리 언어가 부재했고, 다양한 기독론적 제안들이 병존하는 상황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신학적 맥락 속에서 아리우스의 주장은 분명 논쟁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동시에 당대 교회 내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이질적 사상으로만 인식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성자의 지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하나의 신학적 시도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었으며, 이 점이 논쟁을 더욱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리 미정립 상태는 아리우스주의가 단기간에 소멸되지 않고, 공의회와 신학적 논쟁을 통해 삼위일체 교리가 명확히 규정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조건을 제공하였다.


Ⅳ. 니케아 공의회와 정통 교리의 확립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교회 내부의 교리적 분열이 제국의 정치적 안정과 사회 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여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는 제국 전역의 주교들이 참여한 최초의 보편 공의회로, 단순한 신학 토론의 장을 넘어 교회와 제국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결합되는 계기를 이루었다. 공의회의 직접적 배경에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촉발된 아리우스 논쟁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지위를 둘러싼 분열이 교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었다.

공의회에서 논쟁의 핵심 쟁점은 성자의 존재론적 지위, 즉 성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있었다. 아리우스와 그 지지자들은 성자가 창조된 존재이며 성부에 종속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 진영은 성자의 영원성과 참된 신성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구원론과 예배의 근거 자체가 붕괴된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철학적·신학적 용어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고, ‘본질(ousia)’ 개념이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공의회는 최종적으로 “성자는 성부와 동일 본질(homoousios)”이라는 표현을 신조에 포함시킴으로써, 성자의 완전한 신성과 영원성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선택을 넘어, 성자를 피조물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아리우스주의의 논리를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결정이었다. 아리우스는 이로써 파문되고 추방되었으나, 그의 사상은 정치적 후원과 신학적 타협을 통해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속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니케아 공의회가 논쟁의 종결점이라기보다, 삼위일체 교리가 점진적으로 정교화되는 장기적 과정의 출발점이었음을 보여준다.



Ⅴ. 아리우스주의의 확산과 영향

1. 교회 내부의 영향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아리우스 논쟁은 즉각적으로 종결되지 않았으며, 교회 내부에서는 다양한 신학적 입장이 지속적으로 대립하였다. 특히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를 중심으로 한 유세비우스파와 이른바 반아리우스파(Semi-Arians)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니케아 신조의 “동일 본질(homoousios, 호모우시우스)” 표현에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이들은 아리우스의 급진적 종속론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으나,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동일성을 명확히 단언하는 데에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시된 개념이 바로 “유사 본질(homoiousios, 호모이우시우스)”이다. 이는 성자가 성부와 완전히 동일한 본질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유사한 신적 존재라는 입장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이 중간적 입장은 교회 내 혼란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나, 동시에 본질과 위격을 구분하는 신학적 언어를 더욱 정밀하게 다듬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논쟁 과정은 삼위일체 교리가 모호한 표현을 벗어나 보다 엄밀한 개념 체계로 정식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게르만족 기독교 국가들

아리우스주의는 4세기 이후 서방 세계에서 특히 게르만족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었다. 고트족, 반달족, 부르군트족, 롬바르드족 등은 로마 제국 국경 지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를 수용했는데, 이들 선교사 다수가 아리우스파 계열이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게르만족의 초기 기독교화는 니케아 정통보다는 아리우스적 기독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한 신학적 수용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요인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 아리우스주의는 로마 제국의 정통 교회와 구별되는 종교적 정체성을 제공함으로써, 게르만족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독립성과 지배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로 인해 서유럽에서는 한동안 아리우스주의를 국교로 삼은 왕국들과 니케아 정통을 따르는 로마 교회가 공존하는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종교적 이중 구조는 중세 초반 서유럽 정치·종교 질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3. 후대 사상과 간접적 유산

중세에 이르러 아리우스주의는 공의회적 결정과 교회 제도의 정착을 통해 제도 교회 안에서는 사실상 소멸하였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비동등하게 이해하려는 반(反)삼위일체적 사유 방식 자체는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아리우스주의가 하나의 조직된 교파로 존속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문제 제기가 지닌 사상적 구조가 기독론 논의 안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근대 이후 등장한 유니테리안 전통이나 일부 근현대 종파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 이해는, 성자를 성부와 동일한 신적 본질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리우스주의와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다만 이들 사상은 역사적 맥락, 성경 해석 방법, 교리 형성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를 직접적으로 계승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는 이들을 ‘신(新)아리우스주의’로 단순 환원하기보다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반복적인 문제 제기의 현대적 변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Ⅵ. 결론

아리우스주의는 단순한 이단 사조가 아니라, 기독교가 자신의 신앙 내용을 정의하고 언어화하도록 강제한 역사적 촉매였다. 헬라 철학, 성경 해석, 유대교적 일신론, 그리고 미정립된 교리 환경이 결합된 결과로 탄생한 아리우스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니케아 신경과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따라서 아리우스주의는 “패배한 이단”이기보다, 정통 교리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했던 신학적 대립 항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