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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신의 계보: 세계 질서에서 인간 기원으로 이어지는 계통

by modeoflife 2025. 12. 16.


그리스 신화의 계보는 단순한 혈연의 목록이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며 인간이 그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사상적 구조이다. 이 계보는 크게 원초적 신들에서 시작해 티탄, 올림포스 신들, 그리고 인간 세계로 점진적으로 이동하며, 각 단계마다 세계의 성격이 달라진다.


원초적 신들: 존재가 가능해지는 틀의 형성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카오스(Chaos)는 흔히 혼돈으로 번역되지만, 무질서한 혼란 상태라기보다는 아직 어떤 구분도 성립하지 않은 근원적 여백에 가깝다. 카오스는 사물들이 뒤엉켜 충돌하는 상태가 아니라, 아직 하늘과 땅, 위와 아래, 밝음과 어둠이 나뉘지 않은 존재 이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카오스는 세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공백이자, 모든 것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이다. 이 단계에서 신화는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존재가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이 어떻게 열렸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카오스 이후 등장하는 존재들은 창조자라기보다, 그 가능성을 구체적인 방향으로 굳혀가는 원리들이다. 가장 먼저 가이아(Gaia)가 나타나는데, 가이아는 단순한 대지가 아니라 모든 존재가 머무를 수 있는 자리, 즉 물질적 기반 그 자체를 의인화한 존재이다. 가이아의 등장은 세계가 더 이상 추상적 가능성에 머물지 않고,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등장하는 신들과 인간은 모두 가이아 위에서 태어나거나, 가이아로부터 물질적 실체를 부여받는다. 대홍수 이후 돌에서 인간이 태어나는 장면 역시, 인간이 궁극적으로 대지의 일부라는 인식을 극적으로 재확인하는 서사적 반복이라 할 수 있다.

가이아와 함께 나타나는 타르타로스(Tartaros)는 심연이자 가장 깊은 아래를 상징한다. 타르타로스는 단순한 지하 공간이나 처벌의 장소가 아니라, 세계가 붕괴될 수 있는 최저점, 다시 말해 질서가 무너질 때 떨어지는 한계선을 의미한다. 이는 이후 티탄이나 신들이 처벌받는 장소로 재해석되지만, 원초적 단계에서는 세계가 위와 아래라는 수직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가이아가 ‘머무는 자리’를 제공한다면, 타르타로스는 ‘떨어질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세계의 구조적 긴장을 형성한다.

이들과 더불어 등장하는 에로스(Eros)는 사랑의 신이라는 후대적 이미지보다 훨씬 근본적인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에로스는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하도록 만드는 힘, 즉 생성의 원리이다. 카오스에서 가이아와 타르타로스가 분화되었다면, 에로스는 이 분화된 요소들이 다시 관계를 맺고 새로운 존재를 낳을 수 있도록 한다. 에로스가 없다면, 세계는 단지 나뉜 상태로 정지해 있었을 것이다. 에로스의 등장은 세계가 더 이상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존재를 낳는 과정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원초적 신들의 등장은 곧 세계가 일정한 틀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카오스는 가능성을 열고, 가이아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며, 타르타로스는 한계와 깊이를 설정하고, 에로스는 생성의 동력을 부여한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통치도, 법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가 머물고, 결합하고, 무너질 수 있는 기본 조건은 모두 마련된다. 이후 등장하는 티탄과 올림포스 신들은 바로 이 틀 안에서 권력과 질서를 구성하게 되며, 인간 역시 이 구조 속에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원초적 신들의 단계는 신화에서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 해당한다. 이들은 인간과 직접 관계를 맺지 않지만, 인간이 왜 대지에서 태어나고, 왜 추락할 수 있으며, 왜 서로 관계를 맺고 세대를 이어가는지를 설명하는 배경이 된다. 대홍수 이후 인간이 다시 가이아의 돌에서 태어난다는 설정은, 이 가장 오래된 신화적 층위가 여전히 인간 세계의 밑바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가이아와 우라노: 세계가 처음으로 ‘세대’를 갖게 되다

카오스 이후, 세계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점차 분화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가이아(Gaia)는 태어난다기보다 스스로 드러난 존재에 가깝다. 그녀는 대지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형성하며 세계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 가이아의 등장은 세계가 더 이상 추상적 가능성에 머물지 않고, 존재들이 실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조건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 가이아는 이미 완결된 신이라기보다, 이후 모든 생성이 이루어질 토대이자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가이아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로부터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가 태어나는데, 이는 대지가 스스로를 덮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건으로 이해된다. 우라노스는 가이아 위에 펼쳐진 하늘로서, 세계를 감싸고 경계를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세계는 처음으로 위와 아래, 덮는 것과 받치는 것이라는 명확한 공간적 질서를 갖추게 된다. 가이아가 모든 존재를 품는 자리라면, 우라노스는 그 위를 덮어 세계를 하나의 닫힌 구조로 완성한다. 이 결합을 통해 세계는 무한히 흩어진 가능성의 상태에서 벗어나, 내부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증식할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 전환된다.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결합은 곧바로 새로운 존재들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들 사이에서 티탄들이 태어나며, 신화는 이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세대’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티탄들은 이전의 원초적 신들과 달리, 태어남과 계보를 통해 정의되는 존재들이다. 이는 세계가 단순한 구조를 넘어,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이어지는 역사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티탄 세대는 거대하고 강력하지만, 아직 통치나 규범보다는 힘과 규모 자체를 상징한다.

그러나 우라노스는 자신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티탄들의 힘과 잠재력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여, 그들을 다시 가이아의 몸속으로 밀어 넣어 억압한다. 이는 아버지 세대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으며, 동시에 세계의 생성과 확장을 인위적으로 봉쇄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이 시기의 세계는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 에너지가 외부로 드러나지 못하고 내부에 정체된 상태에 놓인다.

가이아에게 이 억압은 단순한 모성적 분노를 넘어선다. 자식들이 태어났음에도 드러나지 못하고, 힘이 순환하지 않는 상태는 세계가 스스로를 갱신할 수 없다는 위기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가이아는 이 정체를 깨뜨리기 위해 티탄 중 하나인 크로노스(Cronos)를 선택하고, 우라노스에 맞서도록 부추긴다.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몰아내는 장면은 폭력적으로 묘사되지만, 신화적으로는 세계가 처음으로 자기 갱신을 실행하는 순간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하늘은 대지에서 분리되고, 억압되었던 생성의 힘은 외부로 풀려난다.

우라노스의 몰락은 단순한 권력 교체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이 장면을 통해 신화는 세계가 영원히 동일한 상태에 머물 수 없으며, 어떤 세대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원리를 확립한다. 부모 세대는 다음 세대에 의해 대체될 수 있고, 세계는 이러한 교체를 통해 계속해서 변화한다. 이후 크로노스가 다시 자식 제우스에게 몰락하고, 제우스가 올림포스 체제를 세우는 서사는 모두 이 최초의 전복 구조를 반복하고 변형한 것이다. 따라서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세대 교체는 단순한 가족 갈등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의 논리이자 세계 변화의 근본 원리로 기능한다.


티탄 세대: 인간 조건을 분해하여 배치한 신화적 설계자들

티탄 세대는 흔히 올림포스 신들에게 패배한 이전 세대로 이해되지만, 인간 서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을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한 존재들이다. 특히 이아페토스(Iapetos)는 티탄 가운데서도 인간 세계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인물로, 그의 자식들은 인간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각각 분담하여 구현한다. 이아페토스 자신은 서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그의 계보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신화적 분석을 제공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이아페토스의 자식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이다. 그는 인간에게 불과 기술을 전해준 존재로, 인간이 자연에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문명을 형성할 수 있게 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발명이나 지혜가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위험을 계산하며 세계를 계획적으로 다루려는 인간의 능력이다. 그러나 이 능력은 동시에 인간을 신적 영역에 근접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제우스와의 충돌을 불러온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문명의 가능성과 위험을 동시에 대표하는 존재이다.

이에 대비되는 인물이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이다.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그는 사후적 판단과 뒤늦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판도라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에피메테우스는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 채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대가를 뒤늦게 감당한다. 이 인물은 인간이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경험을 통해서만 배운다는 사실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이성적 가능성을 대표한다면, 에피메테우스는 그 이성이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틀라스(Atlas)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 조건을 드러낸다. 그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존재로, 세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다. 아틀라스는 단순히 벌을 받는 티탄이 아니라, 인간이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부담과 책임, 그리고 지속적인 노동을 상징한다. 인간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며, 그 무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아틀라스의 형벌은 인간 노동의 영원성을 신화적 이미지로 응축한 것이다.

메노이티오스(Menoitios)는 이 계보에서 가장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무모한 폭력성과 과도한 자만을 상징하며, 제우스에 의해 타르타로스에 떨어진다. 메노이티오스는 인간 안에 잠재된 파괴 충동과 자기 파멸적 성향을 드러내는 존재로, 규제되지 않은 힘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몰락은 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통제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파국을 경고하는 신화적 장치이다.

이처럼 이아페토스의 자식들은 각각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나누어 맡는다. 기술과 예지, 미숙함과 후회, 부담과 노동, 폭력과 파멸은 인간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조건들이다. 이아페토스의 계보는 인간이 왜 문명을 갈망하면서도 고통과 실패를 반복하는지를 단일한 설명으로 환원하지 않고, 여러 요소의 긴장과 충돌 속에서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티탄 세대는 단순히 올림포스 이전의 신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한계를 지닌 채 세계에 등장했는지를 설명하는 신화적 설계자로 기능한다.


프로메테우스와 인간 세계의 연결: 신적 질서를 가로지르는 매개자

프로메테우스는 티탄 세대에 속한 신이지만, 그의 시선과 행위는 일관되게 신적 세계보다 인간 세계를 향한다. 그는 올림포스의 통치 질서를 전복하려는 권력 투쟁의 주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취약한 존재가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화 속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신의 편에도, 인간의 편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며, 두 영역을 가로지르는 중개자로 기능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전한 불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다루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불을 통해 인간은 밤과 추위를 극복할 수 있었고, 금속을 가공하고 음식을 조리하며 환경을 계획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개입하는 존재로 전환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에게 생존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신과 인간 사이에 설정되어 있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 경계의 붕괴는 곧 제우스와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질서의 수호자로서, 세계가 일정한 규범 아래 유지되기를 원한다. 프로메테우스의 행위는 인간에게 신적 영역에 속하던 힘을 넘겨준 것이며, 이는 제우스의 입장에서 세계 질서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된다. 이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 대립이 아니라, 문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다. 대홍수는 이러한 긴장의 극단적 결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통제되지 않은 문명이 세계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인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문명의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를 무책임하게 방치하지 않는다. 대홍수가 예고되었을 때, 그는 아들 데우칼리온에게 다가올 재앙을 알리고 대비하도록 한다. 이 행위는 프로메테우스가 단순한 반역자가 아니라, 세계의 파국 이후까지를 내다보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는 문명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문명이 붕괴된 이후에도 인간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연결 고리를 남긴다.

이로써 프로메테우스는 신화 속에서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신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이자, 동시에 인간 세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한 보호자이다. 불을 준 행위는 인간을 위험에 노출시켰지만, 재앙을 예고한 행위는 그 위험을 완전히 파괴로 귀결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양면성 속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문명의 본질을 체현한다. 문명은 인간을 구원하지만 동시에 위태롭게 만들며, 그 경계 위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과 책임을 요구받는다.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신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초래한 인물이 아니라, 그 간극을 드러내고 관리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의 행위는 인간을 신의 보호 아래 놓인 존재에서, 스스로 세계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로 이동시킨다. 대홍수 이후 데우칼리온과 헬렌으로 이어지는 인간 세계의 재건은, 바로 이 프로메테우스적 전환 위에서 가능해진다. 그는 인간에게 세계를 맡겼고, 그 세계가 무너질 때조차 다시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긴 존재로서,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 세계의 출발점에 가장 가까운 신이라 할 수 있다.


올림포스 신들: 질서와 통치가 제도화되는 단계

제우스(Zeus)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올림포스 체제를 확립하는 사건은 단순한 권력 찬탈이 아니라, 세계가 처음으로 안정적인 통치 구조를 갖추게 되는 전환점으로 이해된다. 크로노스의 시대가 힘과 공포에 의해 유지되는 통치였다면, 제우스의 통치는 질서와 규범을 전제로 한다. 제우스는 이전 세대처럼 자식을 억압하거나 미래를 봉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가 지속되기 위해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제도화하는 통치자로 나타난다. 이 점에서 그는 폭력적 전복의 결과물이면서도, 동시에 폭력을 통제하는 새로운 원리의 구현자이다.

올림포스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이 단일한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우스는 최고 권력을 지니지만, 세계 운영은 다수의 신적 원리들이 분담하여 수행된다. 각 신들은 특정 영역을 맡아 질서를 유지하며, 이는 세계가 더 이상 거대한 힘 하나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분업적 통치는 티탄 세대의 거대하지만 비조직적인 에너지와 뚜렷이 대비되며, 세계가 예측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체제에서 테미스(Themis)는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테미스는 단순한 법률의 여신이 아니라, 신과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범적 질서 그 자체를 의인화한 존재이다. 그녀는 제우스의 권력을 보완하고 제한하는 원리로 작동하며, 통치가 자의적 판단이나 감정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테미스가 제공하는 신탁은 명령이 아니라 해석을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질서가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유지된다는 올림포스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대홍수 이후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제우스가 아닌 테미스를 찾아간다는 설정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인간 세계가 다시 시작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단순한 생존의 허락이나 신의 은총이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기준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신적 질서를 해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존재로 재정의된다. 테미스의 신탁을 통해 인류 재건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인간 세계가 올림포스 체제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상징적 순간이다.

이처럼 올림포스 신들의 등장은 세계가 힘의 충돌 상태에서 벗어나, 법과 규칙, 역할 분담에 의해 운영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제우스는 질서의 보증인이며, 테미스는 그 질서의 기준이다. 이 체제는 인간에게 완전한 안전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세계가 예측 불가능한 파괴로 반복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틀을 제공한다. 대홍수 이후의 인간 세계는 바로 이 올림포스적 질서 위에서 재구성되며, 헬렌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이러한 규범적 세계 속에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에서 인간으로: 계보가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전환점

데우칼리온(Deucalion)은 혈통만 놓고 보면 분명히 신적 세계에 속한 인물이다. 그는 티탄 이아페토스의 손자이자 프로메테우스의 아들로, 신과 인간을 잇는 가장 가까운 계보 위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신화는 데우칼리온을 불멸의 신이나 반신으로 격상시키지 않고, 분명하게 필멸의 인간으로 설정한다. 이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신화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의도적인 전환이다. 데우칼리온은 신의 피를 지녔지만, 신의 삶을 살지 않는 존재로서, 신적 계보가 인간 세계로 이행하는 첫 관문을 형성한다.

이 설정을 통해 신화는 중요한 원칙을 확립한다. 세계를 다시 시작하는 주체는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홍수라는 전면적 파괴 이후에도 신들은 세계의 질서를 보존하는 역할에 머무르며, 실제로 세계를 살아가고 유지하는 책임은 인간에게 넘어간다. 데우칼리온이 방주를 만들고, 신탁을 해석하고, 돌을 던져 새로운 인간을 등장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이 책임의 이양을 보여준다. 그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신적 질서를 이해하고 인간의 방식으로 실행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데우칼리온의 아들 헬렌(Hellen)에 이르면, 신적 계보는 더욱 명확하게 인간적 성격을 띤다. 헬렌은 더 이상 신이나 반신의 속성을 전혀 지니지 않으며, 특정 도시의 영웅이나 왕으로서 활약하지도 않는다. 그의 중요성은 행위가 아니라 위치에 있다. 헬렌은 그리스 세계 전체가 자신을 연결시키는 공통의 시조로 설정되며, 이때 계보는 신들의 권력 구조를 설명하는 도구에서, 인간 집단의 기원을 설명하는 틀로 전환된다. 신화의 관심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에서 ‘누가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가’로 이동한다.

이 전환은 신화의 시간 감각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신의 계보가 중심이던 시기에는 시간은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성격을 띠며, 세대 교체는 권력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헬렌 이후의 인간 계보에서는 시간은 누적되고 분기된다. 세대는 더 이상 전복의 대상이 아니라 계승의 단위가 되며, 혈통은 권력을 빼앗는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기능한다. 이는 인간 사회가 안정적인 지속성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데우칼리온에서 헬렌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신화적 세계관의 초점을 결정적으로 이동시킨다. 신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서사의 중심이 아니다. 그들은 질서와 규범의 배경으로 물러나고, 인간은 그 틀 안에서 스스로 사회를 구성하고 자신을 정의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신의 계보는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연쇄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참조하는 기원 서사가 된다. 그리스 신화는 이렇게 신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야기로, 우주의 생성에서 공동체의 형성으로 서서히 무게 중심을 옮긴다.


헬렌 이후: 신화가 정체성의 언어가 되다

헬렌(Hellen) 이후의 계보는 그리스 신화가 더 이상 세계의 기원이나 신들의 권력 관계를 설명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회 내부의 차이와 연대를 설명하는 장치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헬렌의 아들들인 도로스(Doros), 아이올로스(Aiolos), 크수토스(Xouthos), 그리고 크수토스의 아들 이온(Ion)과 아카이오스(Achaios)는 각각 도리아인, 아이올리아인, 이오니아인, 아카이아인의 시조로 설정된다. 이 계보는 실제 혈연이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 방언과 관습, 정치적 성향을 지닌 집단들이 왜 ‘같은 그리스인’으로 묶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적 구조로 기능한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변화는 신의 역할이다. 헬렌 이후의 계보에는 더 이상 신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초자연적 사건이 중심 서사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들은 여전히 조상으로 언급되지만, 인간 세계의 일상적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신적 혈통이라는 설정은 집단 정체성에 권위를 부여하는 배경으로 남는다. 이는 신화가 더 이상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인간 사회를 해석하고 정당화하는 이야기로 성격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헬렌 이후의 신화적 계보는 경쟁과 분열을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스 세계는 폴리스 단위로 분열되어 있었고, 정치적·군사적 갈등이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도로스와 이온, 아이올로스라는 공통 조상 서사를 통해, 이 집단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동일한 기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관념을 공유하게 된다. 이때 신화는 갈등을 지우는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갈등이 절대적인 타자화로 치닫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공통 언어를 제공한다.

또한 이 계보는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한다. 헬렌의 후손이라는 설정은 혈통 그 자체보다, 언어·종교·관습을 공유하는 문화적 범주를 의미한다. 이는 신화가 생물학적 혈연을 넘어서, 문화적 소속감을 설명하는 도구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헬레네스라는 자기 호칭은 신화적 계보를 토대로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연대와 문화적 동일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작동한다.

결국 헬렌 이후의 신화는 더 이상 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야기이기보다는,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분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서사로 기능한다. 신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인간 집단이 서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신화는 완전히 세속화되지 않는다. 신적 계보는 여전히 상징적 권위를 제공하며, 인간 사회가 우연적 집합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기원을 지닌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헬렌 이후의 계보는 신화가 종교적 설명에서 문화적 정체성의 언어로 전환되는 결정적 지점을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