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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의 시조 헬렌(Hellen): 대홍수 신화를 중심으로 본 인류 재건과 집단 정체성의 신화적 구성

by modeoflife 2025. 12. 16.


헬렌 신화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홍수’

헬렌(Ἕλλην, Hellen)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개인적 서사보다 집단적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특정 도시나 왕조의 건국 영웅이 아니라, ‘헬레네스’라는 집단 명칭과 ‘헬라스’라는 공간 개념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시조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헬렌 신화는 단독으로 이해되기보다는, 그 이전에 벌어진 대홍수 서사와 결합하여 해석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홍수는 단순한 재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세계가 한 차례 완전히 부정되고 다시 정의되는 근본적 단절점이다. 헬렌은 바로 이 단절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파괴 이후의 질서, 혼돈 이후의 규범, 그리고 분열 이전의 공통 기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제우스의 결정과 대홍수의 의미: 파괴가 아닌 질서 회복의 서사

그리스 대홍수 신화에서 제우스는 감정적 복수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오만, 즉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누적된 세계를 더 이상 존속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최고 통치자로 기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만’이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규칙이 무너졌다는 신호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대홍수는 이 무너진 질서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수단이다. 물은 그리스 신화에서 정화와 소거의 기능을 동시에 지니며, 기존의 흔적을 지워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홍수는 인간 세계에 대한 최종적 부정이 아니라, 다시 정의하기 위한 전면적 초기화로 해석된다.

 

 

이아페토스(Iapetos): 인간 조건의 기원을 규정하는 티탄적 원형

 

  • 이아페토스와 크로노스는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자녀
  • 이아페토스와 크로노스는 형제
  •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아들
  • 따라서 이아페토스는 제우스의 삼촌


제우스의 삼촌 이아페토스(Iapetos)는 그리스 신화에서 직접적인 서사의 중심에 서는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을 규정하는 계보의 출발점으로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는 티탄족에 속한 신으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후손이며, 올림포스 체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고대적 질서를 대표한다. 이아페토스의 중요성은 그의 행위보다는, 그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인간 세계의 운명과 한계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체현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아페토스는 흔히 ‘인류의 조상적 티탄’으로 해석되는데, 이는 그의 자식들이 공통적으로 인간 조건의 핵심 요소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기술과 예지, 에피메테우스는 미숙함과 사후적 인식, 메노이티오스는 무모한 폭력성과 파멸, 아틀라스는 세계의 구조적 부담과 한계를 대표한다. 이 네 인물은 각각 독립된 서사를 가지지만, 함께 놓고 보면 인간이 처한 존재론적 조건을 분해하여 보여주는 하나의 체계로 작동한다. 이아페토스는 이 체계의 기원점으로서, 인간이 왜 기술을 갈망하고, 왜 실수를 반복하며, 왜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신화적 근거를 제공한다.

특히 이아페토스의 혈통이 신화적으로 강조되는 이유는, 그의 후손들이 신과 인간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넘나들기 때문이다. 이아페토스 자신은 올림포스 신들과 달리 인간 세계에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그의 자식들은 신의 영역에서 인간 쪽으로, 혹은 그 반대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는 인간이 완전히 자연적인 존재도, 완전히 신적인 존재도 아닌 중간적 위치에 놓여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아페토스 계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경계에 선 존재’임을 설명하는 신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아페토스의 위치는 또한 올림포스 체제와의 대비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제우스가 대표하는 올림포스 신들은 질서, 법, 안정된 세계 운영을 상징하는 반면, 이아페토스와 그의 자식들은 그 질서가 성립되기 이전의 불안정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아페토스 계열의 신화는 세계가 아직 완전히 정돈되지 않았던 시기의 흔적을 간직하며, 인간 문명과 고통, 한계가 어떻게 태동했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아페토스는 단순한 패배한 티탄이 아니라, 올림포스 질서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인간적 조건의 근원으로 이해된다.

이아페토스의 혈통은 결국 데우칼리온과 헬렌으로 이어지며, 인간 세계의 재건과 집단 정체성 형성으로 수렴된다.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문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데우칼리온을 통해 파멸을 견딘 인간성이 보존되며, 헬렌을 통해 그리스 세계가 계보적으로 조직된다. 이 모든 흐름의 가장 깊은 층위에는 이아페토스라는 존재가 놓여 있다. 그는 직접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이 왜 불완전하고, 왜 기술을 필요로 하며, 왜 고통 속에서도 세계를 유지하려 하는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신화적 토대가 된다.



프로메테우스 이전의 인간과 홍수의 원인: 문명의 탄생과 통제 불가능성

그리스 신화에서 대홍수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수 이전 인간 세계의 성격과 그 변화를 초래한 프로메테우스의 역할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티탄 신 이아페토스의 아들로, 인간에게 불과 기술을 전해준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단순한 신적 은인이 아니라, 인간이 신적 질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세계를 다룰 수 있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홍수 이전 인간 세계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인물이며, 동시에 그 세계가 파멸에 이르게 되는 원인을 내포한 존재이기도 하다.

프로메테우스 이전의 인간은 자연에 철저히 종속된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추위와 어둠, 맹수와 기근 앞에서 무력했으며, 신의 보호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져다준 불은 이러한 인간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불은 단순한 난방이나 조리 수단을 넘어, 제작과 가공, 계산과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문명의 핵심 도구였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연을 단순히 견디는 존재에서, 자연을 변형하고 통제하려는 존재로 전환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곧 인간 인식의 왜곡을 동반한다. 불과 기술을 손에 넣은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되고, 신과 인간 사이에 설정된 경계를 망각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러한 상태는 흔히 ‘오만(hybris)’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단순한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인식의 문제로 이해된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을 한계 지닌 필멸자로 인식하지 않고, 신적 영역에 속한 힘을 정당한 권리처럼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홍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홍수는 인간의 기술 발전 그 자체에 대한 처벌이라기보다, 기술이 질서와 규범 없이 작동할 때 초래되는 파국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제우스의 결정은 인간 문명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문명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물은 그리스 신화에서 흔히 정화와 소거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며, 홍수는 기존 인간 세계의 흔적을 지워 새로운 조건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홍수는 프로메테우스적 문명의 실패이자, 동시에 그 문명을 재정렬하기 위한 계기이다. 흥미로운 점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파멸로 이끈 인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데우칼리온에게 재앙을 예고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문명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계승될 가능성을 남긴다. 즉 프로메테우스는 홍수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자, 홍수 이후 인간 세계가 다시 성립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한 인물로 기능한다.

결국 프로메테우스와 대홍수 서사는 인간 문명에 대한 그리스 신화의 양가적 태도를 보여준다. 문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힘이다. 대홍수는 이 힘을 제거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라, 문명이 다시 인간의 한계와 질서 속에 위치해야 함을 선언하는 신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재조정 위에서 데우칼리온과 헬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인류 질서가 비로소 가능해진다.



데우칼리온: 대홍수 신화에서 이해와 재건의 인간적 주체

데우칼리온(Deucalion)은 그리스 신화에서 대홍수라는 문명적 단절을 통과해 살아남은 인물로, 새로운 인류 질서의 기원을 가능하게 한 핵심 존재이다. 그는 티탄 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아들로 전해지며, 이 혈통은 데우칼리온을 단순한 인간을 넘어 신적 질서와 인간 세계를 잇는 경계적 인물로 위치시킨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과 기술을 전한 존재라는 점에서, 데우칼리온의 출생은 이미 문명과 예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위험을 함께 상속받은 조건 위에 놓여 있다. 일부 전승에서는 그가 테살리아 지방 프티아(Phthia)의 왕으로 성장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그가 신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정치적·공간적 질서 안에 속한 인물임을 강조하는 설정이다.

데우칼리온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고대 문헌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승에서는 그를 오케아니스인 클리메네(Clymene)의 아들로 보며, 다른 전승에서는 헤시오네(Hesione)나 프로노이아(Pronoia)를 어머니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들 모두는 신적 계보에 속한 존재로, 데우칼리온이 완전히 평범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적 세계와 긴밀히 연결된 운명을 지닌 인물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혈통적 배경은 그를 불멸의 신으로 격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필멸자로 설정함으로써 신화적 긴장을 형성한다.

중요한 점은 데우칼리온이 그리스 신화에서 일관되게 필멸의 인간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티탄 신이고 어머니가 님프 계열의 존재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멸성을 부여받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적 혈통이 곧바로 불멸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사의 필요에 따라 인간성과 신성이 구분된다. 데우칼리온이 인간으로 설정된 것은 대홍수 이후 인류 재창조 서사의 핵심 조건이다. 만약 그가 신이었다면, 홍수에서의 생존은 선택이나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특권이 되었을 것이며, 그가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되는 서사 역시 설득력을 잃게 된다.

대홍수 서사에서 데우칼리온의 생존은 흔히 ‘선택받은 자’의 결과로 오해되지만, 신화는 그를 단순히 구원받은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이해하고, 다가올 재앙에 대비해 방주를 준비한 인물이다. 이 행위는 신의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세계의 징후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적 판단의 결과로 묘사된다. 방주는 단순한 탈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파괴적 힘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과 이성을 지녔음을 상징하는 장치이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데우칼리온은 신의 질서에 도전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는 파괴 이전의 오만한 인간과도 다르고, 돌에서 태어난 과도기적 인류와도 구별되는 인물이다. 데우칼리온은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간으로서 대홍수를 통과하며, 그의 아들 헬렌(Hellen)을 통해 새로운 인류 질서가 계보적으로 정착될 기반을 마련한다. 이 점에서 데우칼리온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 중심 세계가 다시 시작될 수 있도록 한 정당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퓌라와 판도라 계열의 인간성: 고통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

데우칼리온의 아내 퓌라는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판도라는 인간 세계에 고통과 노동, 질병과 죽음을 가져온 존재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퓌라는 이 양가적 유산을 계승한 인물로서, 이미 고통이 세계의 일부가 된 이후의 인간성을 대표한다.

이 설정은 새로운 인류가 고통 없는 이상적 존재로 재탄생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대홍수 이후의 세계는 정화되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퓌라는 인간이 여전히 고통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조건을 상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하는 가능성을 체현한다.


테미스의 신탁과 해석의 중요성: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질서

대홍수 이후 세계는 완전히 새로워진 공간이지만, 동시에 아무런 기준도 남아 있지 않은 공백 상태이기도 하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단순히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새로운 인간 세계를 시작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신적 질서에 대한 안내를 구한다. 이때 그들이 찾아가는 존재가 테미스(Themis)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단순한 법률의 여신이 아니라, 세계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근본적 규범과 질서를 의인화한 존재이다. 그녀는 제우스의 통치가 자의적 폭력이 아니라 질서로 작동하도록 보조하는 신적 원리로 기능한다.

테미스가 제공하는 신탁의 형식은 이 신화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데우칼리온과 퓌라에게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기술적 방법을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너희 어머니의 뼈를 어깨 너머로 던져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이 신탁은 즉각적인 이해를 거부하며, 인간에게 해석의 책임을 떠넘긴다. 여기서 신은 세계의 질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을 인간에게 위임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 신탁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피조물이 아니라, 상징을 이해하고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어머니’라는 표현이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니라 대지 가이아를 가리키며, ‘뼈’가 돌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자연과 신화적 상징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을 요구한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이 신탁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세계의 구조와 신적 언어의 성격을 이해함으로써 올바른 의미를 도출해낸다. 이 순간 인간은 신의 도구가 아니라, 신의 언어를 해석하는 주체로 자리한다.

돌을 던져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장면은 이 해석 행위의 결과이다. 중요한 점은 인류 재건이 기적처럼 즉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은 질서의 원리를 제시했을 뿐, 그것을 실행한 것은 인간이다. 이 설정은 새로운 인간 세계가 신의 전적인 개입이나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협력을 통해 성립했음을 강조한다. 테미스의 신탁은 신적 질서가 인간의 이해와 선택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다.

이러한 서사는 대홍수 이후 세계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한다. 새로 태어난 인간 세계는 신의 뜻에 의해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끊임없이 해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세계이다. 질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고 실천될 때에만 유지된다. 테미스의 신탁은 바로 이 점에서 대홍수 신화의 핵심 전환점이 된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질서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삶 속에서 구현해야 하는 책임 있는 주체로 재정의된다.

결국 테미스와의 만남은 인류 재건의 기술적 출발점이 아니라, 인식론적 출발점이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이 신탁을 통해 단순히 인류를 다시 탄생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인간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어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규범 제시와 해석, 가능성과 실행의 관계로 재구성된다. 이 협력 구조 위에서 헬렌의 탄생과 그리스 세계의 지속 가능한 질서가 비로소 성립하게 된다.



돌에서 태어난 인간과 헬렌의 대비: 과도기적 인류와 정상성의 회복

홍수가 물러간 뒤의 대지는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진흙이 눌어붙어 있었고, 공기에는 흙과 물이 뒤섞인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인간의 거처였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고, 산과 평야, 바위와 자갈만이 무질서하게 드러나 있었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그 넓고 텅 빈 공간 한가운데 서서, 발치에 흩어진 돌들을 바라본다. 돌들은 특별한 표식도, 정해진 형태도 없이 각기 다른 크기와 질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더 이상 단순한 풍경의 일부는 아니었다. 그것들은 이제 다시 시작될 인간 세계의 재료가 되어 있었다.

둘은 말없이 돌을 집어 들고 손에 전해지는 무게를 느낀다. 날카롭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회색의 돌이었다. 그러나 이 돌들은 방금 전까지 바다 밑에 잠겨 있던 대지의 일부였고, 이제는 인간의 손에 들려 있었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신탁의 말을 되새긴다. 그 말에는 확신도 설명도 없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보장도 없었다. 그럼에도 둘은 같은 동작을 반복할 준비를 한다.

먼저 데우칼리온이 몸을 돌린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팔을 들어 올려 돌을 어깨 너머로 던진다. 돌은 짧은 궤적을 그리며 공중을 가르다가 젖은 땅에 떨어진다. 그 순간, 땅이 미세하게 떨리고 돌의 표면에 가느다란 균열이 생긴다. 균열은 곧 넓어지며 흙빛이 아닌 살결의 색을 드러낸다. 퓌라도 같은 동작을 이어간다. 그녀의 손을 떠난 돌 역시 땅에 닿자마자 갈라지기 시작하고, 금속이 부서지는 소리 대신 젖은 흙이 찢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그 틈에서 팔다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돌은 더 이상 무기물이 아닌 존재로 변해간다.

이 변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돌이 던져질 때마다 대지는 응답하고, 그 응답은 점점 더 넓은 범위로 퍼져 나간다. 처음에는 한 지점에서만 일어나던 균열이, 곧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한두 명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돌들이 사람의 형체로 바뀐다. 어떤 곳에서는 어깨가 먼저 흙을 밀어내고 드러나며, 다른 곳에서는 손과 발이 진흙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지는 마치 오래 눌려 있던 무언가를 한꺼번에 풀어놓듯, 연달아 인간들을 내어놓는다.

잠시 후, 황량했던 땅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 있거나 무릎을 꿇은 채 숨을 고르고 있다. 그들은 울부짖지도, 말을 하지도 않는다.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다가 처음으로 공기를 들이마신 것처럼, 조용히 주변을 바라볼 뿐이다. 그들의 몸에는 상처도 기억도 없고, 바다는 이미 멀어져 있다. 각자는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홀로 남겨진 존재도 아니다. 이들은 개인으로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수 속에 포함된 존재로 등장한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탁을 떠올리며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이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더 이상 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얼굴과 몸을 지닌 인간들의 집합이다. 이 장면은 한 인간의 탄생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다시 세계에 자리 잡는 순간을 보여준다. 돌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름도 역사도 갖지 않았지만, 그 수 자체로 인간 세계가 다시 가능해졌음을 증명한다.

그들이 한 일은 돌을 던진 것뿐이지만, 그 결과는 개인의 삶을 훨씬 넘어선다. 새로 생겨난 인간들은 아직 가족을 이루지 않았고, 세대를 잇지도 않으며, 어떤 사회적 질서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대지 위에 다수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세계는 더 이상 인간 없는 공간이 아니다. 이 집단적 탄생은 이후 데우칼리온과 퓌라 사이에서 태어날 헬렌을 통해 비로소 혈통과 계보, 지속 가능한 사회 질서로 이어질 미래를 예고한다. 지금 이 순간은 인간 사회의 완성이 아니라, 그 출발선이 다시 그어지는 장면이다.

 

그리스 대홍수 신화에서 데우칼리온과 퓌라가 돌을 던져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홍수 이후 세계가 즉각적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돌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대지 가이아에서 직접 생겨난 존재로,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기 이전의 근원적 연결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신적 개입과 자연적 물질이 결합해 탄생한 인류로서, 완전히 소멸된 인간 세계가 다시 생명력을 얻었음을 증명하는 첫 징표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회복’ 그 자체이며, 사회적 질서나 문화적 지속성은 아직 부차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신화는 이 돌 인간들을 인류의 최종적 모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물학적 부모 없이 탄생했으며, 혈통이나 가계, 세대 간의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 이는 이들이 인류의 임시적 대체물, 즉 파괴 이후의 공백을 메우는 과도기적 존재임을 암시한다. 돌 인간들은 인간이 다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인간 사회가 본래 지녔던 구조와 규범을 온전히 회복하지는 못한 상태를 대표한다. 신화적 관점에서 이들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지, ‘사회적 인간’의 완성형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헬렌(Hellen)의 탄생은 결정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헬렌은 돌에서 태어나지 않고, 데우칼리온과 퓌라라는 부모의 결합을 통해 태어난 인간이다. 이 설정은 단순히 출생 방식의 차이를 넘어서, 인간 세계가 다시 정상적인 생식과 세대 계승의 질서로 돌아왔음을 상징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복원되었다는 사실은, 인간 사회가 더 이상 임시적 재난 대응 단계에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시간 구조 속으로 재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헬렌의 출생은 또한 인간 정체성의 기준이 다시 설정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돌 인간들이 자연과 직접 연결된 존재라면, 헬렌은 자연과 문명, 신적 질서와 인간 사회가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신화적으로 ‘정상적인 인간성’을 대표하며, 이후 그리스 세계의 다양한 집단이 자신을 연결시키는 공통 조상이 된다. 이로써 인류는 단순히 다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고 분류할 수 있는 질서를 회복하게 된다.

결국 돌에서 태어난 인간과 헬렌의 대비는, 대홍수 이후 세계가 어떻게 혼돈에서 질서로 이행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장치이다. 돌 인간들은 생존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존재이고, 헬렌은 그 가능성이 사회적·문화적 지속성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대비를 통해 그리스 신화는 인간 역사의 재시작이 단번에 완성되지 않았으며, 과도기적 단계를 거쳐 ‘정상성’이라는 상태에 도달했음을 서사적으로 설명한다. 헬렌은 바로 그 정상성이 비로소 정착된 시점을 표지하는 인물로서, 그리스 집단 정체성의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헬렌의 위치와 의미: 홍수 이후 인류의 기준점

헬렌은 신도 아니고 반신도 아니다. 그는 완전히 인간이지만, 그 출생 시점과 계보로 인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는 파괴 이전의 인간과도 다르고, 돌에서 태어난 임시적 인류와도 다른 존재이다. 헬렌은 재건된 세계의 기준점이며, 이후 모든 그리스 집단이 자신을 연결시키는 공통의 조상이 된다.

이 설정을 통해 신화는 분열된 그리스 세계에 하나의 기원을 제공한다. 헬렌은 개인적 위업을 통해 기억되는 인물이 아니라, 이름 그 자체가 질서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결론: 홍수 신화가 헬렌 신화에 부여하는 구조적 의미

그리스 신화에서 헬렌은 대홍수 서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홍수는 인간 세계를 한 차례 완전히 비워냄으로써, 헬렌이라는 시조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재배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제우스의 심판, 프로메테우스의 유산, 데우칼리온과 퓌라의 해석과 선택, 그리고 헬렌의 탄생은 모두 하나의 연속된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이 구조는 “그리스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혈통과 문화, 질서와 기억을 결합한 신화적 해답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헬렌 신화는 단순한 족보 이야기가 아니라, 대홍수를 통해 정제된 인간성 위에 세워진 집단 정체성의 설계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