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서론
기독교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로, 인간의 역사와 세계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신학적 사유의 정점에 위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신학 담론에서 사용되는 ‘종말(終末)’이라는 용어는 성경이 의도한 본래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강한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수용되어 왔다. 이로 인해 종말론은 희망과 완성의 신학이 아니라 파멸과 공포를 예고하는 교리로 오해되기 쉬운 구조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 은 기독교 종말론에서 말하는 종말 개념이 성경 원어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고찰하고, 한국어 번역어 ‘종말’이 형성한 언어적 한계가 신학적 이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뒤, 보다 성경적 의미에 부합하는 대안적 언어 사용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성경 원어에서의 ‘종말’ 개념
1. 헬라어 신약성경의 용어
신약성경에서 종말을 표현하는 핵심 개념은 헬라어 에스카톤(ἔσχατον)과 텔로스(τέλος)이다. 에스카톤은 단순히 시간의 마지막 지점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역사 전체가 도달하게 될 궁극적 실재와 최종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기독교 종말론을 지칭하는 ‘에스카톨로지(Eschatology)’의 어원이 되며, 종말을 단절이나 소멸이 아닌 완결된 상태로 이해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텔로스는 ‘끝’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목적’과 ‘완성’을 함께 내포하는 개념으로, 신약성경에서 종말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좌절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 목적이 온전히 성취되는 순간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은 신약의 종말 이해가 본질적으로 긍정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2.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표현
구약성경에서도 종말 개념은 파괴나 절망보다는 전환과 회복의 의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히브리어 표현인 아하릿 하야밈(אַחֲרִית הַיָּמִים), 즉 ‘마지막 날들’은 단지 시간의 끝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미래의 결정적 시기를 가리킨다. 또한 케츠(קֵץ)라는 단어 역시 끝이나 한계를 의미하지만, 이는 역사적 절단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통해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전환점으로 이해된다. 구약에서의 종말은 기존 질서의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향한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Ⅲ. ‘종말(終末)’이라는 한국어 번역의 문제점
1. 한국어 일상 언어에서의 어감
한국어에서 ‘종말’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비극적 결말이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 단어는 종종 몰락, 붕괴, 파멸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사용되며, 어떤 과정의 의미 있는 완성보다는 비참한 종료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 속에서 기독교 종말론은 자연스럽게 세계의 파괴나 인간 역사 전체의 실패를 예고하는 교리로 인식되기 쉽다. 이는 성경 원어가 담고 있는 종말의 신학적 의미와 상당한 간극을 형성한다.
2. 번역사적 배경
‘종말’이라는 표현은 일본 근대 신학 번역 전통의 영향을 받아 한국어 신학 담론에 정착된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어 ‘終末’ 역시 이미 일상 언어에서 부정적 뉘앙스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으며, 이 번역어가 비판적 재검토 없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성경적 의미의 핵심인 ‘완성’과 ‘성취’라는 요소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그 결과 번역어 자체가 신학적 이해의 방향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Ⅳ. 부정적 어감이 신학 이해에 미친 영향
1. 공포 중심 종말론의 형성
‘종말’이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 어감은 종말론을 심판과 재앙 중심의 교리로 고착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종말은 윤리적 경고나 신앙적 위협의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종말론은 신자들에게 소망을 제공하기보다는 두려움을 조성하는 담론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는 신약성경이 종말을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희망의 맥락 속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2. 대중문화와의 상호작용
현대 대중문화 역시 종말 개념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재난 영화와 묵시록적 서사는 ‘종말’을 세계의 붕괴와 인간 문명의 파괴로 묘사하며, 이러한 이미지는 종교적 종말 개념과 쉽게 혼합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 종말론은 복음의 핵심인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상징으로 소비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Ⅴ. 종말론의 신학적 재해석과 대안적 언어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종말은 고통과 불의가 지속되는 상태의 종결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완전히 실현되는 순간으로 이해된다. 종말은 죽음의 최종적 승리가 아니라 극복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가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완전하게 드러나는 시점이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비추어 볼 때, ‘종말’이라는 번역어가 지닌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언어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완성의 때’나 ‘하나님 나라의 성취’, 혹은 ‘마지막 날들’과 같은 표현은 종말을 공포의 사건이 아니라 소망의 완결로 인식하게 하는 데 보다 적합한 언어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Ⅵ. 결론
기독교 종말론에 대한 오해의 상당 부분은 교리 자체가 아니라, 그 교리를 전달하는 언어에서 비롯된다. 한국어 번역어 ‘종말’은 성경 원어가 지닌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채, 파괴와 소멸의 이미지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끝이 아니라 목적의 성취이며,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완성이다. 따라서 한국어 신학 담론은 ‘종말’이라는 용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성경적 의미에 보다 충실한 언어를 모색함으로써 종말론을 공포의 교리에서 희망의 신학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언어적 재고찰은 종말론 이해의 왜곡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기독교 신앙 전체를 보다 건강하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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