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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기독교 구원론의 스펙트럼과 이단 논쟁: 19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까지의 학술적 고찰

by modeoflife 2025. 11. 26.


Ⅰ. 서론

19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에 이르는 근현대 기독교 신학은 구원론(soteriology)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도 극단적인 다양성과 격렬한 논쟁을 경험하였다. 구원의 본질을 도덕적·실존적·존재론적 자기 실현으로 이해한 자유주의 신학에서부터, 구원을 그리스도의 객관적 행위에 절대적으로 종속시키는 신정통주의, 다시 선택·대속·주권적 은혜를 중심에 둔 개혁파 복음주의, 그리고 보편화와 포괄주의로 확장되는 현대 가톨릭 및 급진적 신학까지 이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신학자들의 주장은 전통 교리나 교회 공의회 결정을 기준으로 이단(heresy)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고, 때로는 특정 교단 내부에서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글은 근현대 주요 신학자들의 구원론을 학술적으로 재구성하고, 각 주장이 어떤 방식으로 이단 논쟁에 휘말렸는지를 교회사·전통·성경 해석을 기준으로 비평적으로 고찰한다.



Ⅱ. 자유주의 구원론: 도덕적·내적 구원과 이단 논쟁의 출발점

1. 알브레히트 리츨: 윤리적 하나님 나라와 주관주의 비판

알브레히트 리츨은 전통적 속죄론, 특히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시대적·문화적 산물로 간주하고, 구원을 도덕적 하나님 나라의 실현으로 재정의하였다. 그의 신학은 초월적 구원 사건보다 윤리적 변혁과 공동체적 실천에 초점을 두며, 신앙의 핵심을 ‘도덕적 관계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윤리적 구현’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구원 이해는 정통파 신학자들로부터 즉각적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비판자들은 리츨이 기독론의 중심성을 약화시키고, 신앙을 도덕적 주관성으로 환원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속죄의 객관적 의미를 축소한 점은 “기독론적 기반 상실”이라는 지적을 받으며 논쟁의 핵심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츨은 어느 교단에서도 공식적으로 이단 판정을 받지는 않았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 기초를 형성했으며, 이후 신학적 발전에 큰 영향을 남겼다. 단지 보수적 전통에서는 지속적으로 교리적 왜곡자로 평가받으며, 정통성과 계시 이해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하게 되었다.

2. 아돌프 폰 하르낙: 헬레니즘 제거와 정통성 논쟁

아돌프 폰 하르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하늘 아버지, 인간 영혼의 가치, 내적 생명력”이라는 세 요소로 단순화하며, 삼위일체·원죄·성육신 같은 전통 교리를 헬레니즘 철학이 뒤섞인 후대적 산물로 규정했다. 이는 기독교 교리 체계 전반을 역사비평적으로 재해석하려는 그의 학문적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소적 이해는 고대 교회의 신조와 역사적 정통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칼 바르트를 비롯한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하르낙이 복음의 초월성과 계시의 고유성을 약화시키며 기독교의 핵심을 해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의 가장 논쟁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르낙은 루터교나 다른 주요 교단으로부터 공식적인 이단 판정을 받은 적은 없다. 그의 입장은 정통 교리와의 충돌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섰지만, 동시에 학문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 신학적 탐구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이후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할 때 자주 소환되는 대표적 예로 자리하게 되었다.


Ⅲ. 신정통주의와 실존주의: 객관적 은혜와 실존적 결단 사이의 긴장

3. 칼 바르트: 그리스도 중심 객관적 구원과 보편주의 논쟁

칼 바르트는 구원을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재구성하며, 하나님의 계시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결정적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선택되고 하나님과의 화해가 객관적으로 성취되었다고 강조하며, 구원 사건의 근거를 인간의 결단이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두었다.

이러한 예정론적 이해는 개혁파 전통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바르트가 전통적 이중 예정 교리를 비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보편적 선택”을 강조한 점은 보편주의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부 보수 신학자들은 그의 입장이 결국 보편구원론으로 기울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통적 개혁파 예정론과의 단절을 문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어떤 교단으로부터도 공식적인 이단 판정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바르멘 선언을 주도하며 교회의 신학적 기준을 회복하려 했고, 나치 독일에 맞선 신학적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은 논쟁적 요소를 지니면서도 정통성을 지키려 한 현대 신정통주의의 대표적 기여로 평가된다.

4. 루돌프 불트만: 신화제거와 실존적 구원

루돌프 불트만은 신약성경이 담고 있는 1세기적 신화적 세계관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복음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실존적 언어로 재해석하려 했다. 그는 구원을 객관적 사건이나 형이상학적 구조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본래적 실존”으로 전환하는 결단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접근은 케뤼그마(선포)의 실존적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그의 신화제거 프로그램은 전통적 속죄론을 약화시키고,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초월적 요소를 축소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수 신학자들은 불트만의 접근을 “비성경적 실존주의”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으며, 그의 사상이 교회의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아 이단 재판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일부 있었다.

그럼에도 불트만은 루터교회나 다른 주요 교단에서 공식적인 이단 판정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실존적 해석학은 여러 학문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분적으로는 루터교 신학 내에서도 수용되었다. 결국 그는 논쟁적이지만, 현대 신약학과 해석학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신학자로 평가된다.

5. 파울 틸리히: 존재론적 구원과 범신론 논쟁

파울 틸리히는 인간 존재가 경험하는 근본적 소외를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를 “새로운 존재의 실재”로 이해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간 존재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로 보았으며, 구원을 법정적 혹은 형벌적 범주가 아니라 존재론적 치유와 회복의 사건으로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 속죄 개념을 실존적·철학적으로 재구성한 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신학은 초월적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 보수파는 틸리히의 신론과 구원론이 범신론적 성격을 띠며, 죄와 심판의 실재를 약화시키는 “패널티 없는 구원”으로 흐른다고 비판했다. 이는 그의 존재론적 신학이 기독교 교리의 전통적 틀과 긴장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틸리히는 공식적으로 이단 선언을 받은 적은 없다. 그의 철학적·실존적 접근은 20세기 신학에 새로운 방향을 열어 주었으며, 현대 실존주의 신학의 중요한 확장과 영향을 견인한 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Ⅳ. 가톨릭 현대화와 보편주의적 확장

6. 칼 라너: ‘익명 기독자’와 포괄주의 논쟁

칼 라너는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밖에서도 역사할 수 있다고 보며, 비기독교인이라도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응답할 수 있다는 “익명 기독자”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구원 가능성을 교회 내부로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인간의 실존적·초월적 구조 속에서 은혜가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구원론을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방향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에게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보수 신학자들은 라너의 사상이 교회의 유일성과 복음 선포의 필요성을 약화시키며, 실질적으로 “유사이단”적 요소를 포함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익명 기독자’ 개념이 기독교 신앙의 구체적 고백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라너의 사상을 일정 부분 반영하며, 타종교와 비기독교인에 대한 보다 개방적 입장을 공식 문서에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라너는 논쟁적 인물로 남았지만, 동시에 현대 가톨릭 신학에서 포괄주의적 구원론을 정교화한 핵심 신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7.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 보편 구원 가능성과 아포카타스타시스 논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는 지옥의 실재와 인간 자유의 최종 거부를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의 강생·수난·지옥 강하가 가진 무한한 구원 효력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잘 근거된 희망”을 제시했다. 그는 이것을 결코 “확신”이 아니라 “희망”으로 한정함으로써 553년 제5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정죄한 아포카타스타시스 교의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지옥이 비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독교적 태도”라는 표현이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면 지옥에 사람이 있다는 상상을 견디기 어렵다”는 문장은 전통주의자들에게 실질적인 보편구원론으로 들렸다.

1980~1990년대 말 가톨릭 보수 진영은 그의 구원론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발타자르 문하였던 자크 세르베 신부 사건을 계기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 직접 조사에 착수했고, 1998년 내부 보고서는 그의 희망 교리가 “교리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결론 내렸으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인적 신뢰와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신분 때문에 공식 통보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는 퇴임 후 회고록에서 “그 희망이 과연 얼마나 잘 근거된 것인지 계속 의문”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발타자르는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 선언이나 금서 조치를 당하지 않았으나, 그의 구원론은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내부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Ⅴ. 복음주의·개혁파 전통과 현대적 변형

8. 존 스토트: 조건부 불멸론 논쟁

존 스토트는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지옥의 영원한 고통 교리에 대해 신학적 의문을 제기하며, 성경이 말하는 형벌의 본질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멸망을 죄인의 존재적 소멸로 이해하는 조건부 불멸론을 하나의 진지한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보며, 이 견해가 성경적 근거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주장은 복음주의 내에서 즉각적인 논쟁을 촉발했다. 많은 보수 신학자들은 스토트의 입장이 전통적 형벌 이해를 약화시키고, 지옥 교리를 불명확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특히 영원 형벌 교리가 역사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의 핵심이었던 만큼 그의 제안은 예상보다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스토트는 정통 신학의 범주 안에 머무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조건부 불멸론을 확정적으로 주장하기보다 신중하게 제안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복음의 핵심 교리를 충실히 수호했다. 이 때문에 그의 견해는 논쟁적이지만 이단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복음주의 전통 안에서 성경적 이해를 넓히려는 신학적 탐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 J. I. 패커: 개혁파 정통 구원론의 수호

J. I. 패커는 제한 속죄, 무조건적 선택, 불가항력적 은혜로 대표되는 전통적 개혁파 구원론을 일관되게 옹호하며, 현대 복음주의 신학에서 정통적 칼빈주의의 기준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구원 교리를 신학의 중심 요소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그의 이런 신학적 입장은 복음주의 내부에서 널리 신뢰를 받았고, 개혁파 정통 교리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패커는 인간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긴장을 조화롭게 설명하며, 칼빈주의 구원론이 단순한 교리 체계가 아니라 복음의 핵심을 지키는 틀임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패커에게는 사실상 이단 논쟁이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복음주의 내에서 신학적 정체성을 안정시키고 정통성을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의 저술과 교육 사역은 오늘날까지도 개혁파 신학의 표준적 참고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10. 존 파이퍼: 기독교 쾌락주의와 칭의 논쟁

존 파이퍼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최고의 기쁨 안에서 가장 영광 받으신다”는 명제를 칼빈주의 구원론의 중심에 놓고, 이를 ‘기독교 쾌락주의(Christian Hedonism)’라는 구호로 정리했다. 그는 구원을 법적 칭의나 도덕적 개조를 넘어,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기쁨을 회복하는 정서적·존재적 변화로 보았다.

이 강조는 개혁파·복음주의 내부에서 극단적인 양극 반응을 낳았다. 샘 스토스, 데이비드 플랫 등 젊은 세대에게는 열광적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에 상당한 비판도 받았다. 리처드 필립스, 숀 마이클 루카스 등은 “칭의와 성화의 객관성을 감정적 만족이 뒤덮는다”고 우려했고, 존 맥아더 계열은 “인간 중심적 동기 부여”라 하여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2010년대에는 파이퍼가 “최종 칭의에는 행위가 근거가 된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TGC 내부에서도 논쟁이 일었고, 톰 슈라이너는 자신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강조가 칼빈주의 균형을 흐릴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파이퍼는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등 도르트 신조의 다섯 항목을 단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자신의 신학적 기준으로 삼는다고 거듭 밝혔다. 따라서 그의 구원론은 정통 칼빈주의의 경계를 넘지 않는 “강조점의 이동”으로 평가되며, 공식적 이단 논쟁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 다만 “현대 개혁파 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변종”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붙어 있다.

11. 클라크 핀녹: 개방신학과 예지 논쟁

클라크 핀녹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열린 미래”에 근거하여 재해석하는 개방신학(Open Theism)의 대표적 옹호자였다. 그는 미래의 자유로운 인간 행위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므로 하나님도 그것을 “확정적 지식”으로 알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전통적 예정론과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시도였다.

이 사태는 2001~2003년 북미 복음주의 신학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ETS)에서 절정에 달했다. 2001년 연차대회에서 존 샌더스(John Sanders)에 대한 축출 투표가 먼저 이루어졌고, 2002~2003년에는 핀녹 본인에 대한 축출 안건이 상정되었다. 2003년 투표 결과 핀녹은 회원 자격을 1표 차(171:170)로 유지했으나, 논쟁의 여파와 지속적인 압박으로 결국 자진 사임하였다.

복음주의 주류는 개방신학이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예언 성취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보았고, 브루스 웨어(Bruce Ware), 존 파이퍼(John Piper) 등은 이를 “사실상의 이단”에 가깝다고 공개 비판했다. ETS는 최종적으로 “개방신학 자체를 이단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핀녹과 샌더스는 실질적으로 학회 활동에서 배제되었다. 이 사건은 21세기 복음주의 내부에서 가장 격렬한 “현대판 이단 논쟁”으로 기록되며, 오늘날까지도 개방신학은 북미 복음주의 주류에서 철저히 주변화된 입장으로 남아 있다.



Ⅵ. 급진적 보편구원론의 도전

12.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현대판 아포카타스타시스 논쟁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는 2019년 저서 That All Shall Be Saved에서 영원한 지옥의 교리를 철학적·신학적·성경적으로 전면 부정하고, 모든 피조물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편구원론을 “확신”(certainty)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전능성이 영원한 형벌과 양립 불가능하다고 논증했으며, 553년 제5차 공의회에서 정죄된 오리게네스파 아포카타스타시스를 현대적으로 정교화한 형태로 재구성했다.

이 주장은 정교회 내부는 물론 가톨릭·개신교 보수 진영으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교회 신학자들(존 베어, 에디스 험프리 등)은 하트가 “공의회가 명확히 배격한 교의를 부활시켰다”며 사실상 이단적 입장이라고 비판했고, 일부는 그를 “현대판 오리게네스”라 부르며 공개 논쟁을 벌였다. 복음주의 측에서는 알버트 몰러(Al Mohler), 마이클 맥클라이드(Michael McClymond) 등이 그의 책을 “가장 위험한 현대 신학서”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박했다.

하트는 여전히 정교회 신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어느 교단에서도 공식적인 이단 재판이나 파문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보편구원론은 2019년 이후 기독교 신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실질적 이단 논쟁”의 중심에 서 있으며, 정통 교리의 경계를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가장 노골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Ⅶ. 구원론과 이단 논쟁의 구조적 분석

근현대의 구원론 논쟁은 크게 두 가지 축에서 형성된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 하나는 구원의 기원을 인간에게 두는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두는가라는 “인간 중심 vs. 하나님 중심”의 축이다. 리츨과 하르낙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도덕성, 내적 경험, 공동체적 윤리 실천을 강조하며 구원의 의미를 인간의 내적 변화에서 찾았다. 반면 바르트, 패커, 파이퍼로 이어지는 신정통주의와 개혁파 전통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객관적 사역에 기초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적 경험이나 윤리적 성취보다 하나님의 초월적 은혜를 중심에 두었다.

또 다른 긴장은 구원의 범위에 관한 “제한적 구원 vs. 보편적 구원”의 축에서 발생한다. 패커를 비롯한 전통적 칼빈주의는 선택과 대속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이해하며 특정한 자만이 구원받는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라너와 발타자는 구원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열려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하트는 모든 피조물이 최종적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확언하는 강한 보편구원론을 제시하며 논쟁을 극대화했다. 이처럼 구원의 범위에 대한 상이한 이해는 정통성과 이단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되어 왔다.

이단 판정은 또한 성경 해석, 교회 전통, 그리고 교단적 기준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성경의 형벌 영원성 해석과 보편적 구원 가능성 사이의 갈등, 칼케돈 공의회나 고대 교부들이 형성한 전통적 교리의 권위, 그리고 가톨릭·개혁파·복음주의 등 각 교단의 상이한 신학적 기준이 이단 논쟁의 방향을 결정해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상을 제시했음에도 공식적인 이단 판정을 피했는데, 이는 근현대 신학이 보여주는 개방성과 다원성, 그리고 이단 판정 자체가 갖는 복잡한 정치적·신학적 성격을 드러내는 특징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Ⅷ. 결론

근현대의 구원론은 인간의 도덕성과 내적 경험을 강조한 자유주의적 구원 이해에서 출발해, 그리스도 중심의 객관적 구원론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강조하는 개혁파 전통을 거쳐, 나아가 보편적 구원의 가능성과 희망을 논하는 현대 신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행된 이단 논쟁은 때로는 구원론의 방향을 점검하고 교리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동시에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학적 입장과 그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했다.

결국 근현대 구원론의 넓은 스펙트럼은 “구원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기독교 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역사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단 논쟁 역시 이러한 질문을 둘러싸고 정통성과 해석학, 성경과 전통,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려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신학적 대화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