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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 철학과 신학의 접목

by modeoflife 2025. 11. 12.

 


서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정점을 이룬 사상가로, 그의 철학은 서양의 철학과 신학 전통에 깊은 토대를 남겼다. 특히 《자연학(Physics)》과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제시된 4원인론(four causes) 은 사물이 무엇으로, 어떻게,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통합적 이론이다.

 

그는 모든 사물의 존재와 변화를 단일 원인으로 환원하지 않고, 물질인(material cause), 형식인(formal cause), 운동인(efficient cause), 목적인(final cause) 의 네 가지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존재의 구조를 가능태와 현실태의 관계 속에서 이해했다.

이러한 철학적 체계는 중세에 이르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 의해 신학적으로 재해석되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를 바탕으로, 신을 모든 원인의 궁극적 근원으로 제시하며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구현했다. 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뒤, 아퀴나스의 신학적 재해석을 통해 양자의 통합적 의미를 살펴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 철학적 구조

1. 물질인 – 가능태의 근거 : 물질인(material cause) 은 사물을 구성하는 기질로, 변화와 형성의 잠재성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조각상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면, 대리석이 곧 그 물질인이다. 물질은 단순한 물리적 재료가 아니라 형상이 실현될 가능태이며, 존재의 근본적 토대이다. 이 가능태는 형식인에 의해 실현되며, 두 요소의 결합은 현실태(actuality)를 낳는다. 이는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는 이 글의 핵심 주제를 미리 예고한다.

2. 형식인 – 본질의 질서 : 형식인(formal cause) 은 사물의 본질과 구조를 규정하는 내적 원리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사물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실재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인은 사물 안에 내재하여 물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조각상의 형식인은 ‘사람의 형상’으로, 물질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 형식인은 물질을 가능성에서 현실로 전환시키는 구조적 원리이며, 사물이 “그 자체로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이러한 내재적 형상 개념은 철학이 추상적 형이상학을 넘어서 구체적 존재의 질서를 사유하도록 이끈다.

3. 운동인 – 변화의 원동력 : 운동인(efficient cause) 은 사물이 실제로 변화하거나 생성되도록 작용하는 주체이다. 조각상을 조각하는 예술가처럼, 운동인은 외적 힘을 가해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한 인과의 후퇴를 피하기 위해, 모든 운동의 근원을 이끄는 존재로서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 를 상정하였다. 이 존재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운동시키며,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보존한다. 아퀴나스는 이를 받아들여 《신학대전》 I, q.2, a.3에서 신을 “필연적 존재(Necessarium per se)”로 규정한다. 즉, 모든 운동의 궁극적 원인은 신의 존재론적 필연성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는 철학이 신학과 만나는 결정적 지점이 된다.

4. 목적인 – 존재의 완성 : 목적인(final cause) 은 사물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이다. 조각상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예술적 표현’이라면 그것이 목적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모든 사물이 텔로스(telos, 목적) 을 향한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 행위의 결과에 그치지 않고,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을 내포한다는 사유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이 목적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행복한 삶) 으로 표현되며, 각 존재는 자신의 본성을 실현함으로써 완성된다. 이는 후대 신학에서 ‘구원’의 개념과 연결되며,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기초가 된다. 이러한 철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아퀴나스는 신학적 재해석을 통해 4원인을 우주론적 틀로 승화시켰다.



신학적 접목: 아퀴나스의 재구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을 신학적으로 변형시켜 창조–섭리–구원의 연속적 질서로 해석했다. 그는 신을 단순한 원인이 아니라, 모든 원인의 원인(causa causarum)으로 규정한다.

1. 물질인과 창조 : 아퀴나스에게 물질인은 피조물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자율적이지 않다. 신이 무(無)로부터 잠재성을 창조함으로써, 존재는 비로소 현실화된다. 신은 물질의 근원이며, 피조물의 모든 가능태는 신의 의지 안에서만 실현된다.

2. 형식인과 신의 지성 : 형식인은 피조물의 질서와 본질을 드러내는 신의 사유다. 아퀴나스는 이를 ‘모범 원인(exemplar cause)’ 으로 설명하며, 모든 피조물의 형상은 신의 지성 속에 있는 영원한 설계로 본다. 피조물은 신의 이성을 반영하며, 그 질서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발견한다.

3. 운동인과 신의 섭리 : 신은 제1 효율인(primus motor efficiens)으로서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피조물은 2차 원인으로 참여하여 신의 계획을 수행한다. 이는 신의 섭리(providentia)가 세상 안에서 자율적 원인들을 통해 작용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 질서 안에서 완전한 의미를 획득하며, 신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는다. 아퀴나스의 재해석은 4원인을 ‘아날로기적 상승(analogical ascent)’ 의 사다리로 연결하여, 피조물이 신의 영광을 점진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4. 목적인과 신의 선함 : 모든 피조물은 신의 선함(bonitas Dei)을 향해 존재한다. 신은 우주의 최종 목적(finalis causa)으로서, 모든 존재가 그에게로 회귀한다. 구원은 단순한 종교적 보상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의 목적을 완성하는 형이상학적 귀결이다.

이처럼 4원인은 신학적으로 창조–섭리–구원의 연속체를 형성한다. 이는 철학의 이성적 구조를 신학의 초월적 의미와 통합하는 사유의 정점이다.



결론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은 철학적으로 존재의 다면적 구조를 해명하는 이론이며, 아퀴나스의 신학적 재구성을 통해 신의 창조와 섭리의 논리로 확장되었다. 이성과 신앙의 대립은 여기서 조화를 이루며, 철학은 신학의 언어를 명료화하고 신학은 철학에 궁극적 방향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AI 윤리에서 ‘목적인’은 인간 중심의 텔로스를 상기시키며, 기계 학습의 무작위성을 인간적 가치와 목적의 질서 안에 재배치할 수 있다. 생태학적 맥락에서도 4원인론은 환경 위기를 단순한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신의 섭리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 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4원인은 단순한 고대 이론이 아니라, 존재의 근본 구조와 목적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원한 철학적 언어이다. 미래 연구는 이를 생명·기술·윤리의 통합적 패러다임으로 확장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목적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의 사유는 단지 역사적 유산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재개하는 영원한 초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