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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자기개혁성과 분열의 역설 - 복음으로 돌아가는 교회의 끝없는 여정

by modeoflife 2025. 10. 13.


Ⅰ. 서론

개혁교회는 로마 가톨릭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며 출발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지금, 그들은 다시 자신을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 17세기 네덜란드 신학자 요도쿠스 반 로덴스타인(Jodocus van Lodenstein)의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개혁신앙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시켰지만 동시에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개혁파는 로마 가톨릭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은 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덜 개혁된 교회"로 보며 내부 비판을 반복해왔다. 교회는 때로 사랑보다 '옳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교인들 사이에도 신앙적 해석의 차이가 갈등으로 번졌다. 그렇다면 이런 끊임없는 분파와 비판의 현상은 교회의 실패일까, 아니면 진리 추구의 과정일까?

이 글은 개혁교회의 자기개혁성과 분열의 긴장을 역사적 사례와 현대적 관점 속에서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분열을 넘어선 개혁"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개혁의 본질 — 복음으로의 귀환

16세기 종교개혁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복음의 회복운동이었다. 루터와 칼뱅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통해 인간 권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을 통해 인간의 행위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이는 인간을 비하하려는 비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세우려는 겸손의 신앙이었다.

개혁교회의 또 다른 핵심은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사는 태도"다. 이는 마치 상사 앞에서 보고를 준비하듯,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실천적 신앙을 뜻한다.
이러한 태도는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며, 근대 서구 사회의 근면·정직·절제의 윤리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복음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감시하는 교리적 긴장으로 바뀌었다. 바로 여기서 개혁의 순수성이 분열의 불씨로 변하기 시작했다.

2. 분열의 양면성 — 다양성과 갈등의 공존

분파는 교회의 부패를 반성하는 내적 자정 작용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세기 미국 장로교회는 청교도적 신앙의 차이로 갈라졌지만, 그 결과 각 교파가 노예제 폐지·교육 운동 등 사회 개혁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반대로 17세기 영국 청교도의 분열은 정치적 내전으로 번지며, 신앙이 폭력의 도구로 전락한 사례를 남겼다. 같은 "분열"이라도 그 결과는 다양하다. 진리 추구가 사랑으로 이어질 때는 생명력을, 권력과 결합될 때는 상처를 낳는다.

긍정적으로 볼 때, 분파는 하나님께서 다양성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증거다. 장로교의 질서, 감리교의 성화, 침례교의 자유, 오순절 운동의 영성은 모두 복음의 다른 얼굴들이다. 이는 음악의 화성처럼, 각기 다른 음이 모여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면, 분열은 예수의 "하나 되게 하소서"(요 17:21)라는 기도와 어긋난다. 교리적 완벽주의와 '정통'에 대한 집착은 종종 형제적 사랑의 결핍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SNS 시대의 '온라인 교파 전쟁'에서처럼, 교리 논쟁이 상대를 무너뜨리는 공격으로 변할 때, 개혁의 정신은 왜곡된다.

결국 분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사랑 없는 정죄로 흐를 때 교회의 본질은 손상된다. 분파의 문제는 나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이후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3. 오늘의 개혁 — 분열 이후의 성찰

현대 개혁교회는 더 이상 단일한 신학 체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중심에는 "하나님 앞의 진실함"과 "복음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이 있다. 개혁의 정신은 제도나 교리를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판과 회개를 반복하는 순환적 운동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하자면, "분열을 피하라"가 아니라 "분열 속에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말라"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한국 개혁교회 내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서로 다른 교단들이 신학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통된 사회적 책임(가난, 생태, 평화)을 위해 협력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움직임은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정신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혁의 참된 목적은 "옳음의 승리"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진리의 지속"이다. 분열은 피할 수 없지만, 사랑을 잃지 않는 개혁만이 교회를 새롭게 만든다.

Ⅲ. 결론

개혁교회는 로마 가톨릭의 부패를 비판하며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열정 속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개혁의 대상이었던 교회는 다시금 스스로를 개혁해야 하는 역설 앞에 서게 되었다. 교리적 정밀함과 신학적 체계는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진지한 시도였지만, 인간의 한계와 완벽주의가 더해지면서 수많은 분파를 낳았다. 이러한 분열의 역사는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신앙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음은 고정된 이념이 아니라,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이해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생명력을 지닌 진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혁의 문제는 "분열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분열 이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진리를 추구하는가"에 달려 있다. 진리를 향한 긴장 속에서도 사랑과 겸손을 잃지 않는 공동체만이, 개혁의 본질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다. 개혁의 참된 정신은 완전한 교회를 세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려는 끊임없는 여정 속에 있다.

따라서 개혁은 한 시대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계속 이어가야 할 복음의 회복운동이다. 교회가 그 본래의 중심인 사랑과 진리의 균형을 지켜갈 때,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의 고백으로 남는다.

 

<<요약>>

 

개혁파는 처음에 로마 가톨릭교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교회의 권위가 성경보다 앞서고, 신앙이 형식화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혁 이후에는 개혁파 내부에서도 서로를 “더 순수한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며 분파가 생겨났다. 심지어 교인들끼리도 신앙의 해석이나 실천 문제로 서로를 판단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분열은 부정적으로 보면, 교회의 일치와 사랑을 훼손하는 아픔이다. 예수의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에 비추어볼 때, 끊임없는 분파는 복음의 신뢰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교리적 완벽주의와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타인을 비판하고 배제하는 문화가 강화되기 쉽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보면, 분화는 신앙의 다양성과 자유의 표현이기도 하다. 각 시대와 문화가 복음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로, 이를 통해 교회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갱신해왔다. 결국 문제는 “분열 그 자체”보다, 그 이후 서로를 향한 태도에 달려 있다. 다양성 속에서도 사랑과 겸손을 지킬 때, 개혁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