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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하나님의 뜻이다” (미가 6:8)

by modeoflife 2025. 2. 27.

 

"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야기: 미가의 정의로운 외침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불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하며 저울을 속였고(미가 6:11),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아 공의를 왜곡했습니다(미가 3:11). 그때 하나님께서 예언자 미가를 보내셨습니다. 미가는 백성 앞에 서서 힘있게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미가 6:8) 그의 음성은 단호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대언하는 권위로 울려 퍼졌습니다. 이어 그는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고 전하며(미가 6:8), 정의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명령임을 밝혔습니다. 일부 백성은 이 말씀에 마음이 찔려 회개하며 이웃에게 잘못을 바로잡았고(미가 6:10-12 참고), 미가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로 백성을 인도하는 빛이 되었습니다.

 

논증: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증거

 

구약 성경은 정의가 하나님의 본성과 뜻의 핵심임을 분명하고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미가 6:8에서 하나님은 “오 사람아 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정의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자 백성이 그분과 동행하는 필수 조건임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1:17은 “공평을 배우며 억눌린 자를 구원하라”고 명하며, 정의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실현하는 도구임을 강조합니다. 이사야 9:7은 “그의 정권이 공평과 정의 위에 굳게 설 것이요”라며, 메시아의 왕국조차 정의로 세워질 것임을 예언합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성품을 찬양으로 확증합니다. 시편 33:5는 “여호와는 의를 행하시며 정의를 사랑하시나니 땅에 여호와의 인자가 가득하도다”라며, 정의가 하나님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노래합니다. 시편 89:14는 “공의와 정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정의 위에 세워졌음을 단호히 증거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통해 이 뜻을 구체화합니다. 신명기 16:20은 “너는 마땅히 정의만을 따르라”고 명령하며, 신명기 1:17은 “재판할 때에 사람을 두려워 말고 공의로 판결하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정의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삶의 원칙임을 분명히 합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은 정의가 하나님의 뜻임을 더욱 강렬히 드러냅니다. 아모스 5:24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의가 큰 물처럼 넘치게 하라”고 부르짖으며, 불의한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아모스 5:11-12)이 정의 회복을 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호세아 12:6은 “너는 인자와 정의를 지켜 네 하나님을 바라보라”며, 정의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임을 역설합니다. 예레미야 22:3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명령하며, 불의에 대한 경고(예레미야 22:9)와 함께 정의가 하나님의 뜻임을 재확인합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이 증거를 더욱 단단히 합니다. 출애굽기 22:22-24에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는 자에게 진노를 쏟으리라”고 경고하시며,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를 실천하십니다. 창세기 18:19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로 하여금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리라”고 하신 약속은, 정의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주신 사명임을 입증합니다. 레위기 19:15는 “너는 재판할 때 불의를 행치 말고 공의로 재판하라”며, 하나님의 율법이 정의를 구체적으로 요구함을 보여줍니다.

 

구약 전체의 흐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사기 2:18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불의에 빠질 때마다 사사를 일으켜 구원하셨고, 이는 정의 회복이 그분의 뜻임을 나타냅니다. 신약에서도 이 주제는 이어져, 마태복음 23:23에서 예수님은 “공의와 자비와 믿음은 율법의 더 중한 바”라며 구약의 정의를 재확인하십니다. 따라서 미가의 명령, 이사야와 시편의 찬양, 모세와 선지자의 외침,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위는 정의가 하나님의 불변하는 뜻이라는 강력하고도 흔들림 없는 증거를 제공합니다. 정의는 단지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의 기초이며, 그분의 백성이 마땅히 따라야 할 거룩한 길입니다.

 

반증(반대 주장): 정말 정의가 하나님의 뜻인가?

 

그러나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에는 강력한 반대가 제기됩니다.

 

첫째,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세상은 불의로 가득할까요? 미가 6:11이 저울 속임을 경고했지만, 오늘날 빈부격차와 부패는 여전합니다. 예레미야 5:1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는 자를 찾아보라”며 정의가 드물었음을 한탄하고, 현대의 전쟁과 억압은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왜 실현되지 않는지 묻게 합니다. 이는 정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의심케 합니다.

 

둘째, 현대 철학은 정의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 구성물로 봅니다. 존 롤스(《정의론》)는 정의를 공정성의 원칙으로 설명하며 초월적 기원을 배제하고, 이는 미가 6:8의 명령이 신앙적 주장일 뿐 보편적 진리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마르크스 역시 정의를 계급 투쟁의 산물로 간주하며(《공산당 선언》),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을 이념적 허구로 비판합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은 미가의 메시지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상상으로 간주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구약의 정의를 인간이 만든 도덕적 이야기로 치부하며, 고대 근동 신화처럼 허구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정의를 신의 계시가 아닌 왕의 권위로 제시하며, 미가의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독특성을 약화시킵니다.

 

넷째, 다른 종교는 정의를 인정하되 맥락과 출처가 다릅니다. 이슬람의 꾸란 4:135는 “정의를 굳게 지키라”고 명하지만, 알라의 명령으로 정의를 강조하며(꾸란 57:25) 구약의 하나님과는 다른 초점을 둡니다.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 4:7-8은 크리슈나가 정의를 위해 나타난다고 하나, 이는 업보와 다르마의 틀에서 작동하며 구약의 신앙과 충돌합니다. 불교는 정의를 개인의 깨달음에 맡기며(《법구경》 165),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을 상대화합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는 정의를 신의 변덕이나 권력으로 해석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정의(디케)를 주관하나 변덕스럽게 심판하며(《일리아드》), 이는 미가의 정의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에서 온다는 주장을 의심하게 합니다. 바빌로니아의 마르둑도 정의를 강요하지만 혼돈 속에서 비롯되며(《에누마 엘리시》), 구약의 일관성을 문제 삼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부의 모순도 의문을 키웁니다. 미가 6:8이 정의를 하나님의 뜻으로 제시하지만, 욥기 9:22-23은 “의인과 악인을 막론하고 멸하시는도다”라며 정의의 공정성을 의심합니다. 시편 73:3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았나이다”라며 불의가 지속됨을 토로합니다. 이러한 현실적 불일치, 철학적 대안, 회의론, 종교적 차이, 신화적 유사성, 성경 내 모순은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강력한 반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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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증에 대한 반박: 의문에 대한 치밀한 답변

 

반증에서 제기된 여러 의문들은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주장을 오해하거나 그 일부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첫째, 세상에 불의가 만연하다는 지적은 하나님의 정의가 즉각 드러나지 않는다는 오해입니다. 미가 6:8의 “정의를 행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뜻이 백성의 순종을 통해 실현됨을 뜻하며, 예레미야 5:1의 한탄은 불의가 하나님의 뜻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불순종 결과임을 보여줍니다(신명기 28:15). 시편 9:8은 “여호와께서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리라”며, 정의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짐을 확증합니다(하박국 2:3). 현대의 불의는 죄의 결과이지(로마서 3:23), 하나님의 뜻이 약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둘째, 현대 철학이 정의를 인간 개념으로 본다는 주장(롤스, 마르크스)은 하나님의 초월적 권위를 간과합니다. 롤스의 공정성은 인간 사회의 합의에 뿌리두지만, 미가 6:8은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정의로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임을 밝힙니다.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물질적 해석에 치우쳤으나, 이사야 61:8은 “나는 불의를 미워하는 여호와라”며 정의가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옴을 증거합니다. 철학적 대안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 수준으로 축소한 오류일 뿐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이 미가를 신화로 치부하며 정의를 허구로 보는 것(도킨스)은 구약의 역사적·신학적 깊이를 무시합니다. 미가 6:11의 불의 경고는 당시 유다의 실제 경제적 타락(호세아 12:7)을 반영하며, 단순 상상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왕의 권위라면, 구약은 “여호와의 정의”(시편 33:5)로 초월적 기원을 제시하며 차별화됩니다. 《에누마 엘리시》의 혼돈과 달리, 창세기 18:25는 “온 세계의 재판자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라며 하나님의 일관된 공의를 보장합니다.

 

넷째, 다른 종교의 맥락 차이(꾸란 4:135, 바가바드 기타 4:7-8, 법구경 165)는 구약의 독특성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정의(꾸란 57:25)는 알라의 공의로 하나님의 뜻과 본질적 일치를 보이며, 힌두교의 다르마는 정의를 위한 신의 개입을 인정합니다. 불교가 개인 깨달음에 맡기더라도, 레위기 19:15는 “공의로 재판하라”며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으로 정의를 사회적 의무로 제시합니다. 구약의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에서 비롯된 보편적 진리입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가 정의를 신의 변덕으로 본다는 지적(제우스, 마르둑)은 구약의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변덕과 달리, 시편 89:14는 “공의와 정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며 하나님의 불변성을 강조합니다. 출애굽기 34:6-7은 “자비로우시며 의를 지키시는 하나님”으로 정의와 사랑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구약의 정의는 변덕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의 실현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 모순(욥기 9:22-23, 시편 73:3)은 문맥을 오독한 결과입니다. 욥기는 불의의 이유를 묻지만, 욥 42:6에서 욥이 회개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인정합니다. 시편 73:17-18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악인의 종말을 깨달았나이다”라며 정의가 최종적으로 드러남을 확언합니다. 아모스 5:24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외침은 불의가 영원하지 않음을 보증합니다.

 

따라서 반증은 정의를 인간의 시각이나 단편적 현실로만 판단한 데 불과합니다. 구약의 증언, 하나님의 본성, 역사적 맥락, 궁극적 실현은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입증합니다.

 

적용: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의 실천

 

정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은 일상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불공평한 상황을 보면 침묵하지 말고 공정함을 위해 목소리를 내세요. 둘째, 이웃이나 동료가 억울함을 겪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정의를 행해보세요. 셋째, 하루 한 번 미가 6:8을 묵상하며 공의와 인자를 겸손히 실천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이는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드러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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