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헤롯 왕조

by modeoflife 2024. 5. 8.
728x90

https://edition.cnn.com/videos/world/2017/03/20/finding-jesus-tomb-of-herod-1.cnn

 

헤롯 왕조 개요

헤롯 왕조는 기원전 37년 헤롯 대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어,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헤롯 왕조은 여러 대를 걸쳐 유대 지역을 통치하면서 각기 다른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헤롯 왕조의 통치가 다른 많은 왕조들처럼 일시적인 권력이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통치는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결국 로마 제국의 보다 직접적인 통제 하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통치 기간 동안 이루어진 여러 업적과 행적들은 단순한 일시적 권력의 표현을 넘어섭니다. 헤롯 대왕의 건축 프로젝트,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같은 사건들은 유대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적, 문화적 상징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중요성이 회자됩니다. 또한, 헤롯 왕조가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 확산에 미친 영향은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기독교 문화와 역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헤롯 왕조는 그들의 직접적인 통치 기간을 넘어서,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역사적,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통치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일시적인 권력이었다고 해도, 그 권력이 남긴 유산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의미와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조 주요 인물

헤롯 왕조은 그들의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유명합니다. 이 가문은 헤롯 대왕으로부터 시작되어 여러 후계자들을 통해 계속되었습니다. 각각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헤롯 대왕 (Herod the Great, 기원전 74년경 – 기원전 4년): 로마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며, 로마 제국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능숙하게 관리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잔혹하기도 했지만, 효율적인 행정과 국내 안정을 이끌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대규모 개축을 주도했으며, 이는 유대 역사상 가장 화려한 건축물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또한 마사다 요새를 강화하고 헤로디온 궁전을 건설하는 등 여러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실행했습니다.

2.헤롯 아르켈라오스 ((Herod Archelaus, 기원전 23년경 – 18년 AD): 헤롯 대왕의 아들로, 유대와 사마리아의 에트나르치로 잠시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 방식은 폭력적이었고 통치 기간 동안 여러 반란을 직면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로마에 의해 평가가 낮았고, 결국 AD 6년에 면직되어 갈리아로 추방당했습니다.

3.헤롯 안티파스 (Herod Antipas, 기원전 20년경 – AD 39년): 갈릴리와 페레아를 통치하면서 경제적 발전과 행정적 안정을 추구했습니다. 또한 티베리아스를 건설하여 그 지역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례 요한을 처형했으며, 이는 후에 기독교 문서에 자주 언급되는 사건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의 통치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4.헤롯 필립보 (Herod Philip II, 기원전 22년경 – AD 34년): 헤롯 대왕의 또 다른 아들로, 이투레아와 트라코니티스 지역의 테트라르크로 재위했습니다. 그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통치를 했으며, 그의 지역에서 큰 혼란은 없었습니다. 그는 주민들의 복지와 지역 개발에 힘썼습니다. 그는 카이사랴 필리피를 건설하여 경제적 및 행정적 중심지로 발전시켰습니다.

5.헤롯 아그립파 1세 (Herod Agrippa I, 기원전 10년경 – AD 44년): 헤롯 대왕의 손자로, 유대 왕국을 재건하려 했습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지지를 받아 유대 왕으로 군림했으며, 그의 통치는 헤롯 대왕 이후 가장 강력한 통치로 평가받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박해하여 사도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체포했습니다.

6.헤롯 아그립파 2세 (Herod Agrippa II, AD 27년 – 100년경): 아그립파 1세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전쟁(AD 66-73) 동안 로마의 편을 들며 유대인들과의 긴장 관계를 가졌습니다. 이 유대 전쟁은 헤롯 왕조에게 치명적이었습니다. 헤롯 아그립파 2세는 로마 측에서 전쟁을 지원했으나, 전쟁 결과 로마가 유대 지역을 직접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지방 통치자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습니다. 그는 페스트스와 함께 사도 바울의 재판에 참석했으며, 그의 통치는 유대인과 로마인 간의 긴장 관계를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가문은 복잡한 내부 갈등, 권력 투쟁, 그리고 로마와의 관계를 통해 지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유대 역사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 역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