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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말씀의 육신화를 위한 구조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by modeoflife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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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문구는 성경의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유래한 문구입니다. 이 구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술하며,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성육을 나타내는 중요한 구절로 여겨집니다. 이 문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인 '말씀의 성육'을 나타내며, 신성과 인간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결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 고후 5:4, 개역 개정


"ἐπενδύσασθαι(엡엔-뒤사스타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기본적으로 "덧입다", "덧씌우다" 또는 "추가로 입다"와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이 단어는 "ἐπί" (epi, 위에/덧붙여)와 "ἐνδύω" (enduo, 입다)의 결합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4 구절에서의 사용을 살펴보면:

1.ἐπί (epi): 이 전치사는 "위에" 또는 "덧붙여"와 같은 개념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어떤 것이 기존의 것 위에 추가되거나 그것을 덮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2.ἐνδύω (enduo): "입다" 또는 "착용하다"는 의미로, 물리적으로 옷을 입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이 단어는 더 넓은 의미로, 어떤 상태나 특성을 '취하다' 또는 '갖추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ἐπενδύσασθαι"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서, 영적 또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육체적인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존재 위에 영적 존재를 "덧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는 영적 생명을 갈망하는 기독교 신앙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상징적 사용은 영적 생명의 우선성과 영원한 가치를 강조하며, 육체적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영적인 변화와 성장의 개념을 나타냅니다.


육신의 장막에 갖혀 있으나 말씀으로 덧입혀진 삶을 사는 것은 말씀의 육신화라 볼 수 있을까?

육신의 장막에 갖혀 있으면서도 말씀으로 덧입혀진 삶을 사는 것을 '말씀의 육신화'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신학적 관점과 개인적 신앙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을 심도 있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관점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성육화: 기독교 신학에서 말씀의 성육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나타난 사건을 가리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말씀의 성육화'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성과 인간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 것으로, 이 사건은 독특하고 유일무이하게 여겨집니다.


2.말씀에 의한 삶의 변화: 말씀으로 덧입혀진 삶을 사는 것은 신의 말씀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삶은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하며, 관계를 맺는 방식을 통해 구현됩니다. 이를 '말씀의 육신화'라고 볼 수 있는 관점은, 말씀이 개인의 삶 속에서 현실화되고 구현되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3.육신의 한계와 영적 성장: 육신의 장막에 갖혀 있다는 표현은 인간의 물리적, 육체적 한계를 시사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은 신앙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의 삶 속에서 실현되고 구현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4.신학적 해석의 다양성: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말씀의 성육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을 특별한 사건으로 보며, 이는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개인이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과정을 '말씀의 육신화'로 해석하는 것은 더 개방적이고 상징적인 접근 방식을 요구합니다.

5.개인적 신앙과 해석: 이러한 해석은 개인의 신앙과 신학적 이해에 크게 의존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말씀을 구현하는 것을 말씀의 육신화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육신의 장막에 갖혀 있으면서 말씀으로 덧입혀진 삶을 '말씀의 육신화'라고 볼 수 있는지는 각 개인의 신앙적 이해와 신학적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학에서 다루는 복잡하고 심오한 주제 중 하나이며,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항상 기뻐하라"라는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육신화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항상 기뻐하라"라는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사람을 그 말씀이 육신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매우 흥미로운 신학적 해석과 신앙적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말씀의 실천: "항상 기뻐하라"와 같은 말씀을 삶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자신의 일상과 행동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신의 말씀을 육신 속에서 실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일종의 '말씀의 육신화'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영적 성장: 이러한 말씀의 실천은 개인의 영적 성장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신의 말씀이 개인의 삶 속에서 실제로 행동과 태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앙인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말씀의 의미를 실천에 옮깁니다.

3.개인적 신앙의 표현: 신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신앙의 표현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라는 말씀을 실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그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4.신학적 해석: 신학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말씀을 단순히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말씀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강력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항상 기뻐하라"라는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사람을 그 말씀이 육신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신앙적, 신학적 관점에 따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신앙인이 말씀을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각 개인의 신앙과 경험에 깊이 뿌리박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