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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중심과 신학의 재배열 -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존 칼빈의 연속성과 비판적 변형

by modeoflife 2025. 12. 17.


Ⅰ. 서론: 단절의 신화, 연속성의 재발견

서방 기독교 신학사는 흔히 세 개의 이름으로 요약된다. 교부 신학의 정점으로서의 어거스틴, 중세 스콜라 신학의 완성자로서의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종교개혁 신학의 대표자로서의 존 칼빈이다. 이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시대와 문제의식 속에서 신학을 전개했으며, 그 차이는 종종 “교부–중세–종교개혁”이라는 단절의 서사로 정리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교육적 편의성은 제공할지 모르나, 원전 텍스트에 근거한 신학적 이해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은총, 자연, 이성, 예정이라는 핵심 주제에 있어 이 세 신학자는 동일한 신앙의 중심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보호하고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단절의 연쇄가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이루어진 구조적 재배열의 역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글 어거스틴을 신학적 기준점으로 삼아, 아퀴나스와 칼빈이 각각 그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변형했는지를 분석한다. 나아가 세 신학자가 서로의 신학을 평가한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를 가상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서방 기독교 신학 전통 내부의 긴장과 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Ⅱ. 어거스틴: 은총의 절대성과 고백적 신학의 긴장

어거스틴 신학의 중심에는 인간 타락에 대한 급진적 인식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 자리한다. 그는 펠라기우스 논쟁을 통해 인간 자유의지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타락 이후의 의지가 선을 향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자유의지는 죄를 향해서는 능동적이지만, 선을 향해서는 은총에 의해 해방되지 않는 한 무력하다.

이러한 은총 신학은 예정 이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어떤 이들을 은총으로 선택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유기를 선택과 대칭되는 교리 구조로 체계화하지는 않는다.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적극적 결정의 결과라기보다, 타락한 인류 전체(massa peccati)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의 범주 안에서 설명된다. 후기 저작에서 예정과 견인의 은사가 강조되기는 하지만, 그는 이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어거스틴 신학이 본질적으로 고백적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그의 신학은 기도, 회심의 기억, 성경 해석과 분리되지 않으며, 논리적 완결성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신앙의 진실성을 우선한다. 이로 인해 어거스틴은 서방 신학 전체에 풍부한 유산을 남기는 동시에, 후대 신학자들이 반드시 다시 사유해야 할 긴장을 남겨두었다.


Ⅲ. 토마스 아퀴나스: 은총 신학의 질서화와 형이상학적 재배열

토마스 아퀴나스는 흔히 어거스틴적 은총 신학에서 벗어나 이성을 중심에 세운 인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신학대전』에 대한 정밀한 독해는 이러한 평가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아퀴나스 역시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단언하며, 펠라기우스적 인간관을 명확히 거부한다.

아퀴나스 신학의 특징은 은총의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데 있지 않고,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에 있다. 그는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원리를 통해, 타락 이후에도 인간 자연이 일정한 선함과 목적성을 유지한다고 본다. 이는 은총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주장이 아니라, 은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더 정확히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은총은 단순히 상처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초자연적 목적을 향해 들어 올린다.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서도 아퀴나스는 이성의 자율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신학은 어디까지나 계시에 근거한 학문이며, 철학은 그에 봉사하는 도구로 위치한다. 다만 그는 이성이 질서 있게 사용될 때 신앙을 설명하고 방어하는 데 유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아퀴나스는 어거스틴의 은총 신학을 중세 대학이라는 학문적 맥락에 맞게 재구성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Ⅳ. 존 칼빈: 은총의 급진화와 개혁적 재정렬

존 칼빈은 종교개혁이라는 급진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는 중세 교회의 교도권과 인간 이성의 과도한 신뢰를 비판하며, 성경의 절대적 규범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재강조했다. 이로 인해 칼빈은 종종 중세 신학 전체와 단절한 인물로 이해된다.

그러나 칼빈의 신학은 어거스틴의 은총 신학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논증의 구조와 교리 배열에서는 중세 신학의 체계성을 비판적으로 활용한다. 『기독교 강요』는 스콜라적 세분화를 거부하지만, 교리적 정합성을 분명히 의식한 저작이다.

칼빈이 아퀴나스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은 자연과 이성에 대한 신뢰의 정도이다. 아퀴나스에게 자연은 은총의 전제이자 토대였지만, 칼빈에게 자연은 타락의 영향 아래 지속적으로 왜곡될 위험에 놓여 있다. 이성 역시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인식을 가질 수는 있으나, 계시에 의해 교정되지 않으면 우상숭배로 전락한다.

예정 교리 역시 이러한 차이를 반영한다. 아퀴나스가 예정 교리를 섭리 체계의 일부로 절제되게 다루었다면, 칼빈은 이를 은총의 무조건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보증하는 중심 교리로 전면화한다. 이는 논리적 과잉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을 확보하려는 목회적·신학적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Ⅴ. 비교 종합: 동일한 은총, 상이한 보호 전략과 신학적 우선순위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존 칼빈 사이의 차이는 흔히 은총 이해의 본질적 대립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원전 텍스트를 기준으로 볼 때, 이들 사이의 핵심적 차이는 은총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은총을 훼손할 수 있다고 인식된 위험 요소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세 신학자는 모두 은총의 절대성을 신학의 중심에 두었으나, 각기 다른 시대적·교회적 맥락 속에서 은총을 보호하기 위해 강조해야 할 지점과 제한해야 할 지점을 다르게 설정하였다.

1. 어거스틴: 인간 의지의 무능을 강조함으로써 은총을 수호하다

어거스틴이 직면한 신학적 위기는 펠라기우스주의로 대표되는 인간 능력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었다. 이 위기 속에서 그는 인간 자유의지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타락 이후의 인간이 선을 향해 스스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이로써 어거스틴은 구원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귀속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필연적으로 긴장을 낳는다. 자유의지와 책임을 유지하면서도 은총의 절대성을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이 긴장을 논리적으로 해소하기보다, 신앙의 신비로 남겨두었다. 그 결과 그의 신학은 체계적 완결성보다는 고백적 깊이와 해석학적 개방성을 지니게 되었고, 이는 후대 신학이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2. 아퀴나스: 자연과 이성을 질서화함으로써 은총을 명료화하다

아퀴나스가 직면한 과제는 어거스틴과 달랐다. 중세 대학이라는 학문적 환경 속에서, 신학은 더 이상 단지 논쟁적 변증이나 개인적 고백에 머물 수 없었고, 공적 학문으로서 설명되고 교육되어야 할 체계가 요구되었다. 이 맥락에서 아퀴나스는 은총의 필요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과 이성이 어떤 위치에 놓여야 하는지를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원리이다. 이는 인간 자연을 자율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은총이 작동하는 질서를 분명히 하려는 신학적 전략이었다. 자연과 이성이 질서 안에 배치될 때, 은총은 더 이상 임의적 개입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완성하는 초자연적 원리로 이해될 수 있었다. 이로써 아퀴나스는 어거스틴이 남겨둔 긴장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리하며, 은총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합화하였다.

3. 칼빈: 자연과 이성의 자율성을 제한함으로써 은총을 급진화하다

칼빈의 신학은 종교개혁이라는 급진적 위기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에게 위협으로 인식된 것은 인간 능력에 대한 철학적 낙관뿐 아니라, 자연과 이성, 교회 제도가 은총을 사실상 조건화하거나 가리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현실이었다. 이로 인해 칼빈은 자연과 이성의 역할을 원칙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거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강한 제한을 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정 교리는 칼빈 신학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예정은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어떤 조건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급진적으로 드러내는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칼빈은 은총의 무조건성을 철저히 보호하지만, 동시에 신학 전체가 강한 이분법적 구조를 띠게 된다. 그의 급진성은 은총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중간 매개를 제거하려는 의도적 선택의 결과였다.

4. 차이의 의미: 배신이 아닌 시대적 응답

이렇게 볼 때, 세 신학자의 차이는 동일한 신앙에 대한 배신이나 오류라기보다, 각기 다른 시대적 요청과 위협에 대한 신학적 대응 전략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어거스틴은 인간 의지의 무능을, 아퀴나스는 자연과 이성의 질서를, 칼빈은 은총의 급진성을 각각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동일한 은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호했다.

따라서 이들의 차이는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서방 기독교 신학이 은총이라는 중심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점검해 온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상이한 보호 전략의 축적이 서방 신학 전통을 단순한 반복이 아닌, 살아 있는 사유의 장으로 만들었다.


Ⅵ. 가상적 상호 평가: 전통 내부의 자기 비판

1. 어거스틴이 아퀴나스를 평가한다면

어거스틴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접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그 신학이 구원의 주도권을 인간에게 돌리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에 귀속시키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긍정했을 것이다. 아퀴나스가 인간이 궁극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총이 필요하며, 자연적 능력이나 이성적 인식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반복해서 진술하는 점은, 펠라기우스주의에 맞서 싸웠던 어거스틴 자신의 신학적 직관과 본질적으로 공명한다.

그러나 동시에 어거스틴은 아퀴나스가 자연과 이성을 지속적이고 질서 있는 영역으로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 일정한 신학적 유보를 표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거스틴에게 자연은 창조 질서로서 선하지만, 타락 이후에는 끊임없이 은총의 치유를 필요로 하는 불안정한 영역이다. 따라서 자연의 존속성과 이성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정합화하려는 아퀴나스의 시도는, 어거스틴의 시각에서 볼 때 은총의 급진성을 설명하기보다는 은총을 설명 가능한 질서 안에 과도하게 포섭하려는 위험을 내포한 것으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은 아퀴나스를 결코 은총 신학에서 이탈한 인물로 규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아퀴나스를 자신의 신학이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던 긴장을, 형이상학적 질서와 개념적 명료성을 통해 정리한 신학자로 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아퀴나스는 어거스틴의 은총 신학을 부정한 인물이 아니라, 그 신학을 지나치게 ‘안정된 체계’ 속에 배치함으로써 고백적 긴장을 완화시킨 인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2. 어거스틴이 칼빈을 평가한다면

어거스틴이 존 칼빈의 신학을 접했다면, 그는 무엇보다도 칼빈이 인간 구원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귀속시키고, 인간의 공로와 자율성을 철저히 배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깊은 신학적 공명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 의지의 무능, 타락 이후 인간 조건의 급진적 파괴, 그리고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에 달려 있다는 칼빈의 강조는, 어거스틴 후기 저작들—특히 반(反)펠라기우스 논쟁 속에서 형성된 그의 은총 신학—과 구조적으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 예정 교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 행위나 예지된 공로에 의해 조건지어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하려는 칼빈의 의도는, 어거스틴이 『성도의 예정』과 『견인의 은사』에서 지키고자 했던 신학적 핵심을 철저히 계승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점에서 어거스틴은 칼빈을 자신의 사상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대의 독자이자, 은총의 주권을 가장 급진적으로 옹호한 신학자로 평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동시에 어거스틴은 칼빈이 예정과 유기의 문제를 교리 체계의 중심부로 끌어올려 논리적으로 명료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일정한 신학적 불편함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어거스틴 자신은 선택과 심판 사이의 긴장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설명 가능한 교리 구조로 봉합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그에게 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증언하는 언어였지, 신비를 해소하는 해답이 아니었다.

따라서 어거스틴의 시각에서 칼빈은 은총 신학을 충실히 계승한 신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은총의 신비가 지닌 어둠과 침묵의 영역까지 말로 밝히려 한 인물로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평가는 칼빈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고백적 신학과 교리적 체계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긴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3. 아퀴나스가 칼빈을 평가한다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존 칼빈의 신학을 접했다면, 그는 칼빈이 인간 구원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귀속시키고자 했던 신학적 동기 자체에 대해서는 일정한 이해와 공감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 공로를 배제하고 은총의 선행성을 강조하려는 칼빈의 의도는, 아퀴나스 자신이 펠라기우스주의를 거부하며 견지했던 기본 전제와 결코 상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칼빈이 자연과 이성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은총이 작동하는 창조 질서의 연속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고 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퀴나스에게 은총은 무질서하게 개입하는 외적 힘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목적성과 질서를 전제하고 그것을 완성하는 원리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자연과 이성이 은총의 수용 주체로서 어떤 내적 적합성을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약화될 경우, 은총은 그 자체로 참되다 하더라도 신학적으로 매개되지 않은 채 남는 위험을 안게 된다.

또한 아퀴나스는 예정 교리가 칼빈 신학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에 대해서도 일정한 신학적 절제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예정이 하나님의 지식과 의지에 속한 참된 교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신앙 전체를 조직하는 주도적 원리가 되는 것에는 신중했을 것이다. 예정은 구원의 질서를 설명하는 교리이지, 창조·은총·덕·성례로 이어지는 신학의 유기적 구조를 대체하는 중심축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시각에서 칼빈 신학은 은총의 급진성을 분명히 증언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 은총이 어떤 질서 안에서, 어떤 목적을 향해 작동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신학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칼빈의 신학을 목회적 열정과 변증적 명료성은 강하되, 형이상학적 매개와 목적론적 통합이 제한된 신학으로 평가했을 것이다.


Ⅶ. 결론: 생산적 긴장으로서의 서방 신학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존 칼빈은 서로를 부정하거나 대체하는 관계에 놓인 신학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동일한 신앙의 중심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시대적 조건과 신학적 위기 속에서 그 중심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증언한 인물들이다. 차이는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그 신앙을 보호하고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신학적 전략에 있었다.

어거스틴은 인간 의지의 무능과 하나님의 은총의 주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 중심적 구원 이해를 근본에서 해체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자유의지와 책임, 선택과 심판 사이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신앙의 고백과 신비의 영역에 남겨두었다. 아퀴나스는 이 긴장을 중세 학문 세계 속에서 질서화하며, 자연과 이성, 은총과 목적을 하나의 형이상학적 구조 안에 배치함으로써 은총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합화하였다. 칼빈은 다시금 은총의 무조건성과 하나님의 주권이 제도와 이성에 의해 희석되는 것을 경계하며, 어거스틴적 직관을 급진적으로 재전면화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할 때, 서방 기독교 신학의 역사는 하나의 최종 해답을 향해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은총이라는 중심을 둘러싸고,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경계할 것인가를 반복적으로 재조정해 온 역사이다. 그리고 바로 이 재배열의 과정에서 발생한 긴장이, 서방 신학을 분열시킨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으로 사유하게 만든 창조적 동력이었다.

따라서 어거스틴, 아퀴나스, 칼빈의 신학은 서로를 폐기하거나 극복해야 할 단계들이 아니라, 동일한 신앙을 둘러싼 서로 다른 깊이와 각도에서의 응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서방 기독교 신학의 전통은 완결된 체계가 아니라, 은총의 신비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정렬해 온 살아 있는 신학적 대화의 역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