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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가 남긴 질문, 거품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

by modeoflife 2025. 11. 28.

 

1. 바다에서 태어난 여신이 던진 물음

바닷가에 설 때면 누군가는 흰 포말이 잦아드는 순간 그 중앙에서 완전한 조화를 지닌 여인이 걸어 나오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키프로스인들은 그 상상을 신화로 기록했고, 바다의 거품(아프로스)에서 태어난 여신을 아프로디테라 불렀으며, 로마인들은 그녀를 비너스라 칭하였다. 그러나 이름이 달라져도 그녀가 인류에게 던진 질문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디까지 이끌 수 있는가?”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받은 이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였다. 그는 세 여신 중 사랑을 택했고 헬레네를 얻었지만, 그 선택은 전쟁으로 이어져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사랑이 때로 파괴를 낳는다는 진실은 신화 속 허구를 넘어 인간사 전반에서 반복되어 왔다.

2. 두 아프로디테와 사랑의 분기점

세기가 흐른 뒤, 아테네의 한 집에서는 조용한 술자리가 열렸다.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논했고, 파우사니아스는 잔을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프로디테는 둘이다.” 하나는 하늘에서 태어난 순수한 여신 우라니아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적 기원을 지닌 속세의 여신 판데모스이다. 그러므로 사랑도 둘로 나뉜다. 하나는 육체가 먼저 끌리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이 먼저 향하는 사랑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크라테스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곧 디오티마에게서 배운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은 계단처럼 단계적으로 상승하며,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몸에서 출발해 육체의 보편적 아름다움, 영혼의 고결함, 아름다운 법과 제도, 아름다운 지식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육체도, 영혼도, 신적인 형상도 사라지고 오직 ‘아름다움 그 자체’만이 남는다. 디오티마는 그 절정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완전히 만족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3. 사랑의 계단에 오르는 사람들

디오티마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깨닫게 된다. 우리가 흔히 ‘사랑에 빠졌다’고 부르는 감정은 사랑의 가장 낮은 단에 발을 디딘 순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은 초기의 매혹만을 사랑의 전부로 착각한 채 머무르지만, 사랑의 계단은 훨씬 더 높은 차원으로 이어져 있다. 어떤 이는 법과 지혜의 아름다움까지 도달하지만, 극소수만이 마지막 단계에 이른다. 플라톤이 평생 그 절정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사실은 그의 사유와 삶의 선택을 설명해 준다.

4. 비너스가 남긴 마지막 질문

다시 바닷가로 돌아가 보면, 거품은 이미 흩어져 사라지고 아프로디테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다. 거품이 사라진 뒤에도 당신은 여전히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가? 육체는 늙고 외모는 변하며 감정은 식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남긴 아름다움의 흔적을 계단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이들만이 진정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거품 속의 찰나적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을 흘려보낸 사람들에 불과하다. 거품은 언젠가 모두 사라진다. 남는 것은 오직 계단뿐이다. 그리고 그 계단의 정점까지 오를 용기가 있는 자만이 아프로디테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곳, 가장 높은 자리에서 변함없는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