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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좋은 재료, 탁월한 도구, 그리고 레시피

by modeoflife 2025. 3. 26.

 

1. 새벽시장과 데이터셋: 레시피가 결정하는 맛

 

요리사는 매일 새벽, 시장을 돌아다닙니다. 비릿한 냄새가 살짝 감도는 해산물 가게 앞에서, 탱글탱글한 생선을 골라 바구니에 담고, 갓 수확된 채소를 만지작거리며 이리저리 비교해 봅니다. 맛과 향이 최고조에 오른 재료를 찾기 위한 발품입니다. 어떤 식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요리의 방향과 품격이 크게 달라질 테니까요. 그리고 주방으로 돌아온 셰프는 칼과 냄비, 프라이팬과 오븐 같은 다양한 도구들을 꺼내 놓고, 자신만의 레시피—재료 손질 순서, 불 조절, 양념 배합 등의 노하우—를 적용해 마침내 한 접시 요리를 완성합니다. 손님들은 그 요리를 맛본 뒤 “조금 싱겁다”거나 “이 조합 참 새롭다” 같은 반응을 보이고, 셰프는 그 피드백을 레시피에 반영해 더욱 완성도를 높여 갑니다.

 

연구자의 일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리사가 새벽시장을 누빈다면, 연구자는 사회와 자연 곳곳에서 ‘데이터(경험)’를 수집합니다. 심리학자는 참여자들의 설문과 행동 기록을 모으고, 경제학자는 국내외 통계를 뒤져 관련 지표를 확보하며, 컴퓨터공학자는 텍스트·이미지·음성 등 수많은 형태의 자료를 집대성해 방대한 데이터셋을 만듭니다. 이렇게 모은 재료를 가공할 때, 셰프가 칼·냄비·오븐 같은 도구를 쓰듯 연구자는 AI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생성형 AI가 단순 데이터 정리를 넘어, 새로운 통찰이나 창의적인 시나리오를 제안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해졌습니다.

 

 

이미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결과물의 ‘가치’는 결국 레시피(가설·이론·분석 전략)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과 좋은 오븐이 있어도, “어떤 맛을 내고 싶으며, 이를 위해 재료를 어떻게 손질·조리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것은 셰프의 몫이듯, 연구에서도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결론으로 이끌어 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연구자의 역량입니다. AI는 탁월한 도구이지만,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는 생성형 AI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셰프가 기계나 로봇 팔을 통해 재료 손질을 더 빠르고 정확히 하는 것처럼, 연구자도 AI의 도움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단숨에 훑어보고, 새로운 시나리오나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덕분에 이전에는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에 도전하고, 더 혁신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역시 “내가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AI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레시피적 고민이 필수적입니다.

 

2. AI 활용의 위험성과 윤리적 과제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문제도 있습니다. AI, 특히 생성형 AI가 힘을 발휘하게 되면, 데이터 편향이나 잘못된 정보 유포 같은 위험이 함께 뒤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잘못된 데이터가 AI에 학습되어 엉뚱한 결론을 내놓는다면, 연구자는 그 분석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연구 방향 자체를 잘못 잡을 위험이 있습니다. 마치 식재료 상태가 상했는데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대로 요리를 해 버리면, 요리 자체가 실패할 뿐 아니라 먹는 사람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저작권이나 개인정보 문제 같은 윤리적 이슈도 피할 수 없습니다. AI가 분석 과정에서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노출하거나, 무단으로 특정 텍스트나 이미지를 ‘참고’해 본인 것처럼 생성한다면, 이는 법적·도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셰프가 아끼는 고객의 건강을 고려해 재료의 출처와 신선도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처럼, 연구자도 AI가 어떻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는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합니다.

 

연구자가 AI를 활용하든, 셰프가 자동화 기기를 도입하든, 도구가 발전할수록 그 ‘도구 사용 윤리’와 ‘검증 책임’도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만약 이 점을 무시하면, 맛과 편의를 추구하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 오히려 본질을 훼손하고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3. 레시피가 결정한다

 

한 끼 식사든 한 편의 연구든, “무엇을 어떻게 결합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늘 레시피를 고민해야 합니다. 셰프가 제아무리 최첨단 오븐을 구비했어도, 궁극적으로 자기가 추구하는 맛과 콘셉트를 명확히 알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연구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제시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속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를 분명히 해 두어야만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요리나 논문·발표 등)은 세상에 공개되고, 피드백과 비판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다듬어집니다. 셰프가 “좀 더 매콤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듣고 양념 비율을 바꿀 수 있듯, 연구자도 동료 연구자의 지적과 사회의 반응에 따라 연구 방향을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AI는 주제 수정, 자료 수집, 기존에 작성한 문서의 수정, 가상의 피드백, 가상의 비판 등을 제공하며 연구자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4. 미래를 향한 기대

 

이제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요리사도 더 색다른 메뉴를 구상할 수 있고 연구자도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재료(데이터)와 탁월한 도구(AI), 그리고 그것들을 궁극적으로 결합할 레시피(가설·전략·윤리적 책임)만 제대로 갖춘다면,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은 한없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물의 진정한 가치는 결국 레시피가 좌우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셰프의 창의력, 연구자의 통찰이 더해져야만 도구가 제 몫을 할 수 있고, 잘못된 재료나 잘못된 방식이 개입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시해야 안전하면서도 뛰어난 작품이 탄생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회가 바라는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윤리는 어디까지인가—이 질문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생성형 AI는 훌륭한 조력자로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어쩌면 머지않아 셰프가 로봇과 함께 손님 앞에서 즉석 요리를 선보이는 장면이 일상화되고, 연구자가 AI와 실시간 토론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변하지 않을 핵심은 바로 레시피일 것입니다. 좋은 재료와 뛰어난 도구가 있을지라도,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꿈꾸고, 어떻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낼지를 고민하는 바로 그 순간—그것이야말로 요리와 연구가 공유하는 가장 본질적인 열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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