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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는 고난받는다” (이사야 53:3)

by modeoflife 2025. 2. 28.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병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야기: 고난받는 종의 비밀

 

유다 백성은 죄로 인해 포로로 끌려가 고통받았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희망이 꺼져가는 듯 보였습니다(이사야 52:10). 그때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황량한 들판에 서서 힘있게 선포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병고를 아는 자라!”(이사야 53:3) 그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권위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 백성이 “어떻게 구원이 고난 속에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사야는 “그가 우리의 병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도다”라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전했습니다(이사야 53:4).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은 백성들은 “메시아의 고난으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며 소망을 붙잡았습니다. 이 예언은 메시아의 고난을 계시하며, 죄로 인한 어둠 속에서 그분의 희생이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논증: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증거

 

구약 성경은 메시아가 고난받는 구원자로 오심을 확고하고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이사야 53:3에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병고를 아는 자라”고 하시며, 메시아의 고난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이사야 53:5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라 하여, 이 고난이 죄인을 위한 속죄의 비밀임을 계시합니다. 이사야 53:7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며, 메시아의 순종적 희생을 강조합니다.

 

시편은 이 고난을 예언적 찬양으로 확증합니다. 시편 22:17은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니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도다”라 하며, 메시아의 육체적 고통을 생생히 예고합니다. 시편 22:1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극도의 고난 속 메시아의 부르짖음을 드러내며, 시편 22:18의 “그들이 내 겉옷을 나누며 제비 뽑나이다”는 구체적 고난의 장면을 예언합니다. 스가랴 12:10은 “그들이 나를 찔렀던 자를 바라보리라”고 하시며, 메시아가 백성의 죄로 찔림받는 구원자를 증거합니다. 스가랴 13:7은 “칼이여 내 목자를 치라”며 고난의 필연성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은 이 증거를 역사적 예언으로 강화합니다. 다니엘 9:26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지고 없어질 것이나”라 하여, 메시아가 고난으로 희생됨을 예고합니다. 다니엘 9:24는 “죄악을 끝내며 의를 이루리라”며 이 고난의 목적이 속죄임을 밝힙니다. 예레미야 9:1은 “내 백성의 상함을 인하여 내가 울었더라면”이라 하며, 메시아의 고난이 백성을 위한 대속적 눈물과 연결됨을 암시합니다. 예레미야 11:19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도다”라 하여 순결한 희생자로서의 고난을 예언합니다.

 

이사야는 이 고난의 신학적 깊이를 더욱 드러냅니다. 이사야 53:4는 “그가 실로 우리의 병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도다”라 하시며, 메시아가 죄와 고난을 대신 짊어짐을 증언합니다. 이사야 50:6은 “내 등을 때리는 자들에게 주었으며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주었도다”라 하여 구체적 고난을 묘사하며, 이사야 52:14는 “그 형상이 인생들보다 상하였도다”라며 극도의 수치를 예고합니다. 창세기 3:15의 “그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최초 약속도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를 암시합니다.

 

구약의 예언적 일관성은 이 증거를 더욱 강력히 합니다. 시편 69:21은 “그들이 쓸개를 내게 먹이며 신 포도주를 주었도다”라 하며 고난의 세부 장면을 기록하고, 미가 5:1은 “그들이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라”로 메시아의 모욕을 예언합니다. 신약에서 마태복음 8:17은 “그가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셨다”며 이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함을 입증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계시, 시편과 스가랴의 예고, 다니엘과 예레미야의 증언, 구속사적 일관성은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강력하고도 흔들림 없는 증거입니다. 메시아의 고난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핵심으로, 죄를 위한 희생의 길을 여십니다.

 

반증(반대 주장): 정말 메시아가 고난받나?

 

그러나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주장에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반대가 제기됩니다.

 

첫째,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면 왜 즉각적 승리와 평화로 세상을 구원하지 않았을까요? 이사야 53:3이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고통받았고(예레미야 52:27), 이후 로마의 지배 아래 멸망했습니다(스가랴 11:9). 시편 89:38-39는 “주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버리셨나이다”라며 승리의 부재를 한탄하고, 현대의 혼란도 고난받는 메시아가 구원자라는 주장을 의심케 합니다.

 

둘째, 현대 철학은 고난을 약함과 패배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구원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의심합니다.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난받는 메시아를 초인의 반대인 약자의 도덕으로 비판하고,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고난을 삶의 본질로 보며 구원 약속을 허망한 환상으로 간주합니다. 이사야 53:5의 속죄는 철학적으로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은 이사야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내러티브로 간주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고난받는 메시아를 고대 근동 신화, 예를 들어 이집트의 오시리스처럼 죽음과 부활을 과장한 허구로 비판합니다. 이사야 53:4의 “우리의 병을 지셨다”는 실증적 증거 없는 상상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넷째, 유대교 전통은 메시아가 고난받는 이미지를 부정하며 다른 구원을 제시합니다. 이사야 11:6의 “늑대가 양과 함께 거하리라”는 평화로운 메시아 왕국을 약속하며, 랍비 문헌(예: 마이모니데스, 《미슈네 토라》)은 메시아가 전쟁 없이 이스라엘을 회복한다고 주장합니다. 스가랴 9:9의 “평화의 왕”과 달리 고난받는 메시아는 모순으로 보입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는 고난을 신의 실패나 변덕의 결과로 묘사하며 구약의 주장을 약화시킵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인류를 위해 고난받았으나 제우스의 처벌로 승리하지 못했고(《결박된 프로메테우스》), 메소포타미아의 《엔키와 닌마》는 신의 실수로 고난이 지속됩니다. 이는 메시아의 고난이 구원의 보장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부의 모순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이사야 53:3이 고난을 말하지만, 이사야 9:7은 “그의 평화가 무궁하리라”며 승리를 약속하고, 전도서 9:2는 “의인과 악인에게 같은 일이 임하나이다”라며 고난의 구속적 의미를 부정합니다. 이러한 승리의 지연, 철학적 약함, 회의론, 유대교의 반론, 신화적 대조, 성경 내 불일치는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강력한 반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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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증에 대한 반박: 의문에 대한 치밀한 답변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진리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신실하심 안에서 오해하거나 단편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메시아가 승리하지 않았다는 지적(예레미야 52:27, 스가랴 11:9)은 고난과 승리의 통합적 목적을 놓칩니다. 이사야 53:3의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다”는 고난은 이사야 53:10의 “그가 자기 영혼을 속죄제물로 드리면 씨를 보리라”로 이어지며, 승리를 위한 필연적 희생입니다. 시편 89:38-39의 버림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징계이지(시편 89:32), 메시아의 실패가 아닙니다. 이사야 53:11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를 보고 만족하리라”며 고난 후 승리를 확증합니다. 고난은 구원의 길을 여는 과정입니다.

 

둘째, 현대 철학이 고난을 약함으로 본다는 주장(니체, 쇼펜하우어)은 하나님의 구속적 의도를 간과합니다. 니체의 초인론은 세속적 힘을 찬양하나, 이사야 53:5의 “그의 징계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리라”는 고난의 구원적 힘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쇼펜하우어의 허망함은 삶의 고통을 다루지만, 시편 22:24는 “그가 고난받는 자의 고난을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라며 하나님의 목적을 증거합니다. 철학은 메시아의 신성한 고난을 축소한 오류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이 이사야를 신화로 치부하며 고난을 허구로 보는 것(도킨스)은 역사적·신학적 증거를 무시합니다. 이사야 53장은 바벨론 포로(기원전 587년)라는 실제 맥락에서 주어졌고, 이사야 52:13은 “내 종이 형통하리라”며 고난 후 승리를 예언합니다. 오시리스 신화의 상상과 달리, 스가랴 12:10의 “그들이 찔렀던 자를 바라보리라”는 구체적 구원의 실현을 증언합니다. 도킨스의 허구론은 예언의 성취를 이해하지 못한 단견입니다.

 

넷째, 유대교가 고난받는 메시아를 부정하며 평화를 강조한다는 반론(이사야 11:6)은 문맥을 분리한 해석입니다. 이사야 11:6의 “늑대가 양과 함께 거하리라”는 메시아의 궁극적 승리이나, 이사야 53:4의 “우리의 병을 지셨다”는 그 전의 속죄 고난을 묘사합니다. 스가랴 9:9의 “평화의 왕”은 이사야 53:12의 “죄인의 하나로 여김을 받았도다”와 조화를 이루며, 고난이 평화를 이루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고난과 승리는 메시아의 사명에서 하나입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가 고난을 실패로 본다는 지적(프로메테우스, 엔키와 닌마)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오해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처벌과 달리, 이사야 50:6은 “내 등을 때리는 자들에게 주었도다”라며 고난의 자발적 속죄를 약속합니다. 엔키의 실수와 달리, 시편 69:9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나이다”라며 고난의 구속적 목적을 입증합니다. 메시아의 고난은 실패가 아닌 승리의 토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 모순(이사야 9:7, 전도서 9:2)은 문맥을 오독한 결과입니다. 이사야 9:7의 “그의 평화가 무궁하리라”는 고난 후 승리(이사야 53:11)를 약속하며, 다니엘 9:24-26은 “죄악을 끝내며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지리라”로 이 둘을 통합합니다. 전도서 9:2는 세상 불공정을 말하지만, 시편 22:27은 “땅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리라”며 고난의 구원적 결실을 확언합니다.

 

따라서 반증은 메시아의 고난을 현실적 지연이나 인간 논리로만 재단한 데 불과합니다. 구약의 예언, 하나님의 신실하심, 구속사적 통합은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입증합니다.

 

적용: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믿음의 실천

 

메시아가 고난받는다는 믿음은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고난 속에서 이사야 53:3을 묵상하며 메시아의 희생을 기억하세요. 둘째, 하루 한 번 메시아의 고난이 나를 구원했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보세요. 셋째, 고난받는 이웃에게 메시아의 구원을 나누며 위로를 전하세요. 이는 메시아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임을 삶으로 증명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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