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포로로 고난받았습니다. 그들의 도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고, 들판은 황폐해졌습니다(이사야 64:10). 그때 하나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폐허 위에 서서 힘있게 선포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65:17) 그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권위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 백성이 “과거의 아픔이 잊히겠느냐?”고 탄식했을 때,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이전 것을 기억되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전했습니다(이사야 65:17).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은 백성들은 소망을 붙잡았고, “여호와께서 새 세상을 주시리라”며 기도했습니다(이사야 65:18). 이 예언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계시하며, 죄와 절망의 어둠 속에서 새 창조의 빛을 백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새 세상이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으로 창조될 것임을 확고하고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이사야 65:17에서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시며, 죄와 고난의 과거를 초월하는 궁극적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이사야 65:18-19는 “내가 창조하는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리니… 다시는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리라”며 새 세상의 기쁨과 평화를 약속합니다. 이사야 65:25는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요”라 하여, 창조 질서의 완전한 화해를 예언하며 새 비전의 구체성을 드러냅니다.
이사야의 다른 말씀도 이 증거를 풍성히 합니다. 이사야 66:22는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으리라”고 하시며, 새 세상의 영원성을 보장합니다. 시편은 이 약속을 찬양으로 확증합니다. 시편 119:50은 “주의 약속이 나를 살리시고 환난 중에 위로가 되나이다”라 노래하며, 미래의 새 세상이 현재의 소망임을 보여줍니다. 시편 102:18은 “이것이 후대에 기록되리니 장차 지음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 하여, 새 창조를 기다리는 믿음을 증거합니다.
예레미야는 새 세상의 기초를 제시합니다. 예레미야 30:17은 “내가 너희의 회복을 일으키리라”고 하시며, 예레미야 31:31-33은 “새 언약을 맺으리니 내가 그들의 마음에 법을 기록하리라”라 하여 영적 갱신을 약속합니다. 에스겔 36:26은 “내가 너희에게 새 심령을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리라”고 하시며, 새 세상이 내적 변화와 함께 온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체화합니다. 에스겔 37:27-28은 “내 성소가 그들 중에 영원히 있으리니 열방이 나를 알리라”며 새 세상의 임재와 구원을 예고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 약속의 뿌리를 제공합니다. 신명기 30:5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복되게 하사 새롭게 하시리라”고 하시며, 회복된 땅과 삶을 약속합니다. 신명기 32:43은 “열방이여 그의 백성과 즐거워하라”며 새 세상의 보편적 기쁨을 예언합니다. 창세기 8:21-22에서 노아와의 약속—“내가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아니하리라”—은 새 창조의 안정성을 암시하며, 이사야 51:6은 “하늘이 연기처럼 사라지나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으리라”로 새 세상의 영속성을 보장합니다.
구약의 역사와 예언은 이 증거를 실현으로 뒷받침합니다. 출애굽기 15:17-18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심으시리니 영원히 다스리시리로다”는 새 세상의 전조이며, 스가랴 14:9는 “여호와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시리라”며 새 질서를 예언합니다. 호세아 2:18은 “내가 그 날에 새 언약을 맺으리니 짐승과 평화롭게 하리라”고 하여 창조의 회복을 약속합니다. 신약에서 요한계시록 21:1은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 하여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함을 입증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 시편의 찬양,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약속, 모세의 율법, 역사적 전조, 구속사적 완성은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는 강력하고도 흔들림 없는 증거입니다. 새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절정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영원한 뜻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는 주장에는 강력하고 다각적인 반대가 제기됩니다.
첫째,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면 왜 고난과 혼란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할까요? 이사야 65:17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라 했지만,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고통받았고(예레미야 52:27), 이후 로마의 멸망을 겪었습니다(스가랴 11:9). 시편 89:39는 “주의 종의 언약을 깨뜨리셨나이다”라며 약속의 지연을 한탄하고, 현대의 전쟁, 기근, 불의는 새 세상의 실현을 의심케 합니다.
둘째, 현대 철학은 미래의 새 세상을 허상이나 인간의 망상으로 간주하며 약속의 신뢰성을 의심합니다.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새 세상 같은 희망을 허무주의적 삶에서의 도피로 비판하고, 하이데거(《존재와 시간》)는 존재의 불확실성 속에서 초월적 미래를 부정하며 이사야 65:17을 실체 없는 환상으로 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새 세상 약속을 고대 근동 신화,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의 《엔키와 세계 질서》처럼 창조와 회복을 과장한 허구로 비판합니다. 이사야 65:25의 “늑대와 양이 함께 먹으리라”는 실증적 증거 없는 공상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넷째, 다른 종교는 새 세상을 인정하더라도 구체적 비전과 맥락이 다릅니다. 이슬람의 꾸란 14:48은 “대지를 새롭게 하리라”며 새 세상을 말하지만, 꾸란 75:3-4의 심판과 부활에 초점을 맞춰 이스라엘 중심의 구속과는 차별화됩니다.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 11:32은 칼키가 새 시대를 열지만 윤회 속 주기적이며, 불교의 《법구경》 129는 고난의 반복을 강조해 영원한 새 세상을 부정합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는 새 세상을 신의 변덕이나 무관심의 산물로 묘사하며 구약의 주장을 약화시킵니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는 새 희망을 주었으나 신들의 장난으로 고난을 동반하고(《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메소포타미아의 《아트라하시스》는 홍수 후 새 세상이 신의 일관성 없는 결정에 의존합니다. 이는 새 세상 약속이 신뢰할 만한 보장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부의 모순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이사야 65:17이 새 세상을 약속하지만, 예레미야 4:23-26은 “땅이 황무하며 하늘이 빛을 잃었도다”라며 파괴를 예고하고, 전도서 1:4는 “땅은 영원히 있나니”라며 새 창조의 필요성을 부정합니다. 이러한 고난의 지속, 철학적 허무, 회의론, 종교적 차이, 신화적 대조, 성경 내 불일치는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강력한 반증들입니다.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는 진리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신실하심 안에서 오해하거나 단편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고난이 계속된다는 지적(예레미야 52:27, 스가랴 11:9)은 새 세상의 타이밍과 본질을 놓칩니다. 이사야 65:17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는 즉각적 변혁이 아닌 궁극적 회복을 뜻하며, 이사야 65:18은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리라”며 그 완성을 약속합니다. 시편 89:39의 언약 파괴는 불순종에 대한 징계(시편 89:32)로, 에스겔 37:23은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케 하리라”로 새 세상의 실현을 재확인합니다. 고난은 약속의 부재가 아닌 준비 과정입니다.
둘째, 현대 철학이 미래를 허상으로 본다는 주장(니체, 하이데거)은 하나님의 초월적 약속을 간과합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세속적 절망을 다룰 뿐, 이사야 66:22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으리라”는 영원한 실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이데거의 불확실성은 존재의 한계를 논하나, 예레미야 31:35-36은 “해와 달의 법칙이 있듯 내 약속이 영원하리라”며 하나님의 신뢰성을 입증합니다. 철학은 새 세상의 신성을 축소한 오류입니다.
셋째, 회의론자들이 이사야를 신화로 치부하며 새 세상을 허구로 보는 것(도킨스)은 역사적·신학적 증거를 무시합니다. 이사야 65장은 바벨론 포로(기원전 587년)라는 실제 맥락에서 주어졌고, 이사야 44:28의 고레스 예언은 회복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엔키와 세계 질서》의 상상과 달리, 시편 102:25-26은 “하늘과 땅이 없어지나 주의 해는 영원하리라”며 새 창조의 실질성을 증거합니다. 도킨스의 허구론은 약속의 성취를 이해하지 못한 단견입니다.
넷째, 다른 종교의 비전 차이(꾸란 14:48, 바가바드 기타 11:32, 법구경 129)는 구약의 약속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새 대지(꾸란 75:3-4)는 하나님의 창조와 일맥상통하며, 에스겔 36:35의 “황무지가 에덴 같으리라”와 조화를 이룹니다. 힌두교와 불교의 주기적·개인적 비전과 달리, 이사야 65:25는 “늑대와 양이 함께 먹으리라”며 영원한 화해를 약속합니다. 구약의 새 세상은 하나님의 구속에서 독특합니다.
다섯째, 고대 신화가 새 세상을 변덕으로 본다는 지적(판도라, 아트라하시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오해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혼돈과 달리, 창세기 8:22는 “내가 다시는 땅을 멸하지 아니하리라”며 안정성을 약속하고, 호세아 2:18은 “새 언약으로 평화롭게 하리라”로 새 세상의 확실성을 입증합니다. 아트라하시스의 무관심과 달리, 하나님의 약속은 구체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 모순(예레미야 4:23-26, 전도서 1:4)은 문맥을 오독한 결과입니다. 예레미야 4:23-26은 심판의 황무지이나, 예레미야 33:25-26은 “내가 다윗의 씨를 회복하리라”로 새 세상을 약속합니다. 전도서 1:4는 현 세상의 지속성을 말하지만, 스가랴 14:9는 “여호와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시리라”며 새 창조를 확언합니다.
따라서 반증은 새 세상을 현실적 고난이나 인간 논리로만 재단한 데 불과합니다. 구약의 예언, 하나님의 신실하심, 역사적 전조, 구속사적 완성은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입증합니다.
새 세상이 약속되었다는 믿음은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고난 속에서도 이사야 65:17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새 창조를 소망하세요. 둘째, 하루 한 번 새 세상의 약속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기도해보세요. 셋째, 주변 사람들에게 새 세상의 희망을 나누며 위로를 전하세요. 이는 새 세상이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임을 삶으로 증명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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