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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사 οὐαὶ(우아이), 슬프도다, 화 있을진저, 슬픔과 비탄, 경고와 저주

by modeoflife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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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가 미칠 것입니다 - 고전 9:16, 새번역

ἐὰν γὰρ εὐαγγελίζωμαι, οὐκ ἔστιν μοι καύχημα, ἀνάγκη γάρ μοι ἐπίκειται· οὐαὶ γάρ μοι ἐστίν ἐὰν μὴ εὐαγγελίζωμαι.
에안 가르 에방겔리조마이, 우크 에스틴 모이 카우케마, 아낭케 가르 모이 에피케이타이· 우아이 갈르 모이 에스틴 에안 미 에우앙겔리좀마이.

 

헬라어 NA28 원문 단어별 해석

 

1.ἐὰν (ean): [에안] - "만약에", 조건을 나타내는 접속사
2.γὰρ (gar): [가르] - "왜냐하면", 이유나 설명을 제공하는 접속사
3.εὐαγγελίζωμαι (euangelizōmai): [에방겔리조마이] - "복음을 전하다", "좋은 소식을 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4.οὐκ (ouk): [우크] - "아니다", 부정을 나타내는 단어
5.ἔστιν (estin): [에스틴] - "있다", "존재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6.μοι (moi): [모이] - "나에게", 1인칭 간접대명사
7.καύχημα (kauchēma): [카우케마] - "자랑거리", 명사

8.ἀνάγκη (anankē): [아낭케] - "필요", "강제"라는 의미의 명사
9.ἐπίκειται (epikeitai): [에피케이타이] - "부과되다", "놓여있다"라는 의미의 동사

10.οὐαὶ (ouai): [우아이] - "아이고", "슬프다", "화 있을찐저" 등의 감탄사
11.μὴ (mē): [미] - "아니다", 부정을 나타내는 단어
12.εὐαγγελίζωμαι (euangelizōmai): [에방겔리조마이] - "복음을 전하다", "좋은 소식을 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이 구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책임임을 강조하며, 이를 하지 않을 경우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이유가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일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하면 너무나 슬퍼서"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οὐαὶ(우아이)"라는 단어는 슬픔이나 비탄을 나타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화를 피하기 위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하지 않을 경우 겪게 될 영적인 비탄과 고통 때문아닐까 싶습니다. 바울에게 복음 전파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그의 사명이자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영적인 손실과 슬픔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οὐαὶ(우아이) 상세 설명

"οὐαὶ"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사용되는 매우 특징적인 단어로,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단어의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어원과 기본 의미: "οὐαὶ"는 기본적으로 감탄사로, 원래 의미는 슬픔, 비탄, 또는 저주를 나타내는 강한 감정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때때로 직접적인 저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슬픔이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2.감정적 표현: "οὐαὶ"는 단순한 정보 전달보다는 강한 감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슬픔, 안타까움, 경고의 감정이 혼합된 복합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사람의 깊은 우려나 비탄을 반영합니다.

3.경고와 저주의 의미: 성경에서 "οὐαὶ"는 종종 영적인 경고나 저주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거부하거나 율법을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 "οὐαὶ"를 사용하여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심각한 결과를 경고합니다.

4.예언적인 사용: 또한 "οὐαὶ"는 예언적인 맥락에서도 사용되어, 미래에 발생할 불행이나 심판에 대한 예고로 사용됩니다. 이는 청중에게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종합적으로, "οὐαὶ"는 단순한 단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강한 감정적 표현과 함께 경고와 예언의 기능을 가진 복잡한 단어입니다.

고전 9:16에서 "οὐαὶ γάρ μοι ἐστίν ἐὰν μὴ εὐαγγελίζωμαι."라는 문구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임할 심각한 결과를 나타내기 위해 "οὐαὶ"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그는 복음 전파에 대한 자신의 깊은 책임감을 표현하며, 이 일을 소홀히 할 경우 겪게 될 영적인 비탄과 고통을 강조합니다.

 

οὐαὶ(우아이)라고 말할 때 저주가 임하라고 기원하는 것인가

"οὐαὶ"를 사용하는 문장은 저주가 임하라고 기원하는 의미를 담을 수 있지만, 이는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고대 그리스어 문헌, 특히 신약성경에서 "οὐαὶ"는 주로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감탄사로 사용됩니다. 이는 비난, 경고, 슬픔, 또는 저주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οὐαὶ αὐτοῖς, οἵτινες τὴν ἀλήθειαν ἀπορρίπτουσιν." (아이고, 그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그들이 진실을 거부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심각한 경고나 비난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οὐαὶ"는 그들의 행동이 불러올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으며, 반드시 저주를 기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οὐαὶ"의 사용은 단순한 저주의 기원보다는 보다 복잡한 감정적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때때로 비판적이거나 경고하는 맥락에서 사용되며, 항상 저주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화 있을진저"라는 문장의 "화"로 번역된 οὐαὶ(우아이)는 강한 슬픔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οὐαὶ"를 슬픔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주로 신약성경에서 비탄,  경고, 혹은 저주의 감정을 나타내는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은 종종 깊은 슬픔이나 안타까움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나 다른 성경의 저자들이 "οὐαὶ"를 사용할 때, 그것은 때때로 그들의 심오한 슬픔이나 실망감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깊은 우려와 슬픔을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οὐαὶ"를 사용하여 비난하실 때, 그것은 단순히 그들에 대한 경고나 비난을 넘어서, 그들의 영적인 눈이 멀어 있는 상태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1.마태복음 23:13에서 "οὐαὶ"는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는 맥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의 "οὐαὶ"는 단순한 경고 또는 비난을 넘어서,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예수님의 슬픔과 우려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행동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οὐαὶ δὲ ὑμῖν, γραμματεῖς καὶ Φαρισαῖοι, ὑποκριταί, ὅτι κλείετε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ῶν οὐρανῶν ἔμπροσθεν τῶν ἀνθρώπων· ὑμεῖς γὰρ οὐκ εἰσέρχεσθε οὐδὲ τοὺς εἰσερχομένους ἀφίετε εἰσελθεῖν.

 

"οὐαὶ"를 "화 있을진저" 대신 "슬프구나"로 번역한다면, 마태복음 23:13의 전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슬프구나, 그러나 너희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위선자들이여! 왜냐하면 너희가 하늘나라의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아버리고,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며, 들어가려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역은 "οὐαὶ"를 단순한 저주나 경고가 아닌, 슬픔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영합니다. 이 경우, 예수님의 말씀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동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누가복음 6:24-25에서도 "οὐαὶ"는 부, 만족, 쾌락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예수님은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미래에 겪게 될 불행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슬픔을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고는 단지 미래의 결과에 대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찾도록 돕고자 하는 깊은 관심과 슬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πλὴν οὐαὶ ὑμῖν τοῖς πλουσίοις, ὅτι ἀπέχετε τὴν παράκλησιν ὑμῶν. οὐαὶ, οἱ ἐμπεπλησμένοι νῦν, ὅτι πεινάσετε. οὐαὶ, οἱ γελῶντες νῦν, ὅτι πενθήσετε καὶ κλαύσετε.

 

"οὐαὶ"를 "화 있을진저" 대신 "슬프구나"로 번역한다면, 누가복음 6:24-25의 전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구나, 부자들아, 왜냐하면 너희는 이미 너희의 위안을 받았다. 슬프구나, 현재 배부른 자들아, 왜냐하면 너희는 굶주릴 것이다. 슬프구나, 현재 웃는 자들아, 왜냐하면 너희는 애통하며 울 것이다."

이 번역은 "οὐαὶ"를 각 구절의 시작에서 슬픔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영합니다. 이 경우,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경고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