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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캅과 과정 신학: 변화와 상호작용의 신학적 여정

modeoflife 2025. 3. 16. 21:25


존 캅과 과정 신학: 변화와 상호작용의 신학적 여정

존 캅(John B. Cobb Jr., 1925-2024)은 현대 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과정 신학(Process Theology)과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의 선구자로 널리 인정받는다. 미국의 신학자, 철학자, 환경운동가로서, 그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사상을 바탕으로 신과 세계의 관계를 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인 과정으로 재해석하며, 전통적인 신학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신앙의 지평을 열었다. 캅의 작업은 신학뿐 아니라 생태학, 종교 간 대화, 사회적 정의와 같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그의 삶과 사상이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넘어 실천적 변화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캅은 1925년 일본 고베에서 감리교 선교사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그는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시카고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며, 화이트헤드와 찰스 하트숀(Charles Hartshorne)의 과정 사상에 깊이 매료되었다. 1952년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며 과정 신학의 중심지로 이곳을 만들었다. 1973년에는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David Ray Griffin)과 함께 과정 연구 센터(Center for Process Studies)를 설립했고, 이후 수십 년간 수많은 저서를 통해 과정 사상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의 대표작인 과정 신학: 입문 해설(Process Theology: An Introductory Exposition)은 과정 신학의 기초를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캅의 과정 신학은 신을 불변하고 초월적인 존재로 보는 전통적인 신관을 거부한다. 대신, 그는 신을 두 가지 본성—모든 가능성을 품은 "원초적 본성(Primordial Nature)"과 세계의 사건에 반응하며 변화하는 "결과적 본성(Consequent Nature)"—을 가진 존재로 묘사한다. 이는 신이 세계와 분리된 전지전능한 통제자가 아니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캅은 신이 인간의 기쁨과 고통을 느끼고, 이를 통해 자신의 본성을 풍부하게 하며, 동시에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신의 권능을 강제(coercion)가 아닌 설득(persuasion)으로 이해하며,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존중하는 신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캅의 신학은 악의 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도 주목받는다. 전통 신학에서 악은 신의 선함과 전지전능성에 대한 모순으로 여겨졌지만, 캅은 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악은 신의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자유와 창조성이 허용된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가능성 중 하나다. 신은 이러한 악 속에서 강제적인 개입 대신 사랑과 설득으로 세계를 치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이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신의 관여를 배제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캅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은 광범위하다. 그는 과정 신학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촉진하며, 진화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 과학의 동적 세계관을 신앙과 조화시켰다. 특히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주목할 만하다. 1989년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Daly)와 공저한 공동선을 위하여(For the Common Good)는 지속 가능한 경제와 생태적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신학적 응답을 제시했다. 캅은 모든 피조물이 신과 관계 속에 있으며, 인류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리가 의존하는 지구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화이트헤드의 "세계에 대한 충성(world-loyalty)" 개념을 실천으로 옮긴 결과였다.

또한 캅은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간 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불교와 기독교 사이의 대화를 탐구하며, 신학이 특정 전통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접근은 현대의 다문화적, 다종교적 환경에서 신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열린 대화와 상호 이해를 촉진했다. 이러한 노력은 그가 설립한 과정 연구 센터와 국제 과정 네트워크(International Process Network)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과정 사상의 확산을 이끌었다.

그러나 캅의 과정 신학은 비판도 피하지 못했다. 전통 신학자들은 신의 초월성과 전지전능성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며, 신이 너무 인간적으로 묘사되었다고 우려했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추상적 개념을 신학에 적용한 것이 실천적이지 않거나, 절대적 구원을 약속하는 전통 신앙에 비해 종교적 위안을 덜 제공한다고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캅은 이러한 비판을 과정 신학의 열린 특성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정답을 강요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가능성을 탐구하는 신학을 지향했으며, 이는 그의 사상이 지닌 생명력의 원천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존 캅의 과정 신학은 신을 세계와 함께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보는 혁신적인 신학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신과 세계의 관계를 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으로 재정의하며, 현대 과학, 생태학, 다원주의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캅은 신을 멀리 떨어진 통제자가 아닌, 우리와 함께 기뻤다가 슬퍼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동반자로 초대한다. 그의 신학은 단순한 이론을 넘어,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여정이다. 2024년 12월 26일 서거한 캅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에게 변화와 관계성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며, 신학적 탐구와 실천적 행동의 조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