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승리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어느 오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세상에서, 군중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고 조롱했으며(마태복음 27:40), 로마 병사가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요한복음 19:34)。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 기도하셨습니다(누가복음 23:34)。그는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며(요한복음 19:30), 죄와 사망을 위한 속죄의 희생을 완성하셨습니다。사흘 후, 무덤이 비었고(마태복음 28:6),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승리를 증거하셨습니다(요한복음 20:19-20)。로마서 5:8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 하여 그의 십자가가 죄를 이긴 승리임을 증언합니다。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죽음을 정복하시고, 죄인을 구원하는 영원한 승리의 표징으로 백성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의 십자가가 죄와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의 구속 승리를 이루었음을 확고하고 다층적으로 증언하며, 이는 구속사적, 신학적, 역사적 증거로 입증됩니다。로마서 5:8에서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선언하며,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는 승리의 증거임을 증거합니다。고린도전서 15:55-57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가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느니라”라 하여, 십자가가 죽음을 정복한 승리의 절정을 증언합니다。마태복음 20:28은 “인자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목숨을 주려 함이라”라 하여, 그의 죽음이 죄의 값을 치프는 구원의 승리임을 확증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역은 승리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요한복음 16:33에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언하시며,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승리의 근거임을 증언하셨습니다。누가복음 23:34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을 위한 용서를 선포하며, 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완성한 승리의 확언입니다。마태복음 28:6의 “그가 살아나셨느니라”와 고린도전서 15:3-4의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십자가의 승리가 부활로 확정되었음을 증거합니다。히브리서 2:14-15는 “죽으심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를 멸하시고 사망의 두려움에서 해방하셨느니라”라 하여 십자가가 죽음을 이긴 승리의 능력을 증언합니다。
구약 예언은 십자가의 승리를 예표하며 그 진실성을 강화합니다。이사야 53:5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그의 채찍에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 하여 예수의 죽음이 죄를 이기는 승리를 예언하고, 시편 22:16-18은 “내 손과 발을 뚫고 내 겉옷을 나누었도다”라 하며 십자가의 고난이 구속의 승리로 이어짐을 암시합니다。호세아 13:14는 “내가 사망에서 너를 속량하리라”라 하여 십자가로 완성된 하나님의 승리를 예고합니다。히브리서 9:26은 “그가 단번에 자기를 희생하여 죄를 제하셨느니라”라 하여 구약의 속죄제를 초월한 승리를 증거합니다。
초기 교회와 사도들의 가르침은 이 승리의 실천을 확증합니다。사도행전 4:10-12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으니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느니라”라 하여, 십자가가 구원의 유일한 승리임을 증언합니다。고린도전서 1:18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나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 하여 승리의 능력을 강조하고, 갈라디아서 6:14는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하지 아니하리니”라 하여 십자가가 승리의 표징임을 증거합니다。로마서 8:37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 하여 사랑의 승리를 확증합니다。
역사적 증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요세푸스(《유대 고대사》 18.3.3)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구원의 희망과 새 생명을 주었다고 기록하며, 플리니우스 더 영거(기원후 112년 편지 10.96)는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승리의 근거로 숭배했다고 전합니다。타키투스(《연대기》 15.44)는 예수의 처형 후에도 십자가 신앙이 퍼져 박해를 이겼음을 인정합니다。초기 교부 이레나에우스(《이단 반박》 5.16.3)는 “십자가로 죄와 사망이 멸망당했다”라 하여 승리의 실체를 증언합니다。따라서 신약의 증언, 예수의 대속과 부활, 구약의 성취, 사도들의 가르침, 역사적 기록은 십자가가 승리라는 강력하고도 흔들림 없는 증거입니다。예수의 십자가는 죄와 사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의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승리라는 주장에는 강력하고 다층적인 반대가 제기됩니다。
첫째, 십자가가 승리라면 왜 예수는 고난받고 죽었으며, 세상은 여전히 혼란 속에 있을까요? 로마서 5:8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지만, 예수의 죽음은 승리 대신 패배와 굴욕으로 보이며, 로마의 박해(사도행전 12:2), 중세의 전쟁, 현대의 불의와 고통은 십자가가 실질적 변화를 이루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욥기 9:23-24는 “재앙이 무죄한 자를 죽이며 악인이 땅을 덮을 때 하나님은 어찌하느냐”라며 고난의 지속을 한탄하고, 승리라면 왜 예수의 죽음 이후 세상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둘째, 유대교는 예수가 평화와 구원을 이루지 않았다고 보며, 십자가를 메시아적 승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이사야 11:6의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리라”는 평화로운 세상은 예수 시대에 실현되지 않았고, 신명기 18:20은 “거짓 예언자는 죽으리라”라 하여 예수의 죽음을 실패로 간주합니다。탈무드(산헤드린 43a)는 예수를 반역자로 처형당한 자로 묘사하며, 이사야 9:7의 “그의 평화가 무궁하리라”는 예수와 무관한 미래 메시아로 해석되어, 십자가는 승리가 아닌 패배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셋째, 이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하여 승리의 근거를 완전히 부정합니다。꾸란 4:157은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으나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라 하며, 꾸란 3:55는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여 올리셨다”라 하여 십자가의 희생과 승리를 무효화합니다。꾸란 19:33은 예수를 예언자로만 묘사하고, 꾸란 42:40은 “악에 대한 보상은 동등한 악이라”라 하여 예수의 죽음을 승리나 속죄로 보지 않으며, 하나님만이 승리와 구원의 주체라 주장합니다。
넷째, 현대 회의론자들은 십자가를 패배와 처형의 증거로, 부활을 조작된 허구로 치부합니다。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는 고린도전서 15:55-57의 승리를 로마의 사형에서 나온 신화로, 데이비드 흄(《기적에 관하여》)은 마태복음 28:6의 부활을 자연법칙 위배로 부정합니다。G.A. 웰스(《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십자가와 부활을 후대 신학적 날조로, 버트런드 러셀(《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은 십자가를 비극적 패배로 간주하며, 승리라는 주장은 고대 희생 신화(예: 아티스)에서 차용된 환상이라 합니다。
다섯째, 현대 철학은 고난과 죽음을 승리로 보지 않고, 십자가의 사랑을 약함과 비현실적 이상으로 비판합니다。니체(《반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약자의 도피로,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고난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승리를 부정합니다。포스트모던주의(리오타르, 《포스트모던 조건》)는 절대 승리를 억압적 담론으로, 존 쉘비 스퐁(《새로운 기독교》)은 요한복음 16:33의 “내가 세상을 이겼다”를 상징적 위로로만 보며, 현대의 고난과 양립할 수 없는 낭만적 허구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부의 모순도 의문을 증폭시킵니다。로마서 5:8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다”라 했지만, 마태복음 27:46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승리 대신 버림받음을 드러내고, 전도서 9:5는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상급이 끊어지나니”라 하여 십자가로 죽음이 이겨졌다는 실질성을 부정합니다。이러한 예수의 죽음, 유대교와 이슬람의 반론, 회의론과 철학의 비판, 성경 내 불일치는 십자가가 승리라는 주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강력한 반증들입니다。
반증에서 제기된 의문들은 십자가가 승리라는 진리를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신실하심 안에서 오해하거나 단편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됩니다。
첫째, 예수가 죽었다는 지적(사도행전 12:2, 욥기 9:23-24)은 십자가 승리의 본질을 놓칩니다。로마서 5:8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그의 죽음이 패배가 아닌 죄를 위한 속죄임을 증언하며, 요한복음 16:33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 하여 고난 속에서도 승리함을 증거합니다。고린도전서 15:55-57의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는 십자가가 죽음을 이긴 승리임을 확증하고, 요한계시록 1:18은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라 하여 최종 승리를 보장합니다。
둘째, 유대교가 평화 미완성을 근거로 예수를 부인한다는 주장(이사야 11:6)은 구속의 단계적 완성을 오해합니다。이사야 53:5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는 초림의 속죄를 예언하며, 신명기 18:20의 거짓 선지자 기준은 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로 반박됩니다。이사야 9:7의 평화는 재림으로 완성되며(마태복음 25:31-34), 십자가는 구원의 승리를 열었습니다(로마서 8:37)。
셋째, 이슬람이 십자가를 부인한다는 반론(꾸란 4:157)은 신약 증거를 약화시키지 못합니다。꾸란 3:55의 구원은 고린도전서 15:3-4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와 달리, 히브리서 2:14는 “죽으심으로 사망의 세력을 멸하셨다”라 하여 승리의 실체를 증언합니다。꾸란 19:33의 예언자 역할은 요한복음 10:11의 “목숨을 버리노라”와 조화되며, 로마서 5:8은 사랑의 승리를 증거합니다。
넷째, 회의론자들이 십자가를 패배로 보는 주장(도킨스, 흄)은 역사적·성경적 실체를 무시합니다。마태복음 20:28의 “대속물로 목숨을 주심이라”와 고린도전서 1:18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패배가 아닌 구원의 승리를 증거합니다。흄의 자연법칙 논리는 창세기 1:1의 창조 권능을 배제한 편견이고, 웰스의 조작론은 마태복음 28:6의 “살아나셨느니라”로 반박됩니다。러셀의 비극론은 요한복음 12:24의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로 넘어섭니다。
다섯째, 철학이 고난을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반론(니체, 쇼펜하우어)은 하나님의 구속 능력을 오해합니다。고린도전서 2:8은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으리라”라 하여 십자가가 약함이 아닌 승리임을 증언하며, 갈라디아서 6:14는 “십자가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라 하여 승리의 표징을 증거합니다。리오타르의 억압 담론론은 로마서 8:38-39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로 반박되고, 스퐁의 상징론은 히브리서 9:26의 “단번에 죄를 제하셨다”를 무력화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내 모순(마태복음 27:46, 전도서 9:5)은 문맥을 오독한 결과입니다。마태복음 27:46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시편 22:24의 “그가 구원하셨도다”로 승리하며, 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로 완성됩니다。전도서 9:5의 한계는 요한복음 11:25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로 새로워집니다。
따라서 반증은 십자가의 승리를 현실적 고난이나 인간 논리로만 재단한 데 불과합니다。신약의 증언, 구속사적 완성, 하나님의 권능은 십자가가 승리라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입증합니다。
십자가가 승리라는 믿음은 삶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고난 속에서도 로마서 5:8을 묵상하며 예수의 십자가 승리를 신뢰하세요. 둘째, 하루 한 번 예수의 십자가가 죄와 죽음을 이긴 사랑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보세요. 셋째, 세상의 패배와 혼란 속에서 십자가의 승리를 증언하며 구원의 소망을 나누세요. 이는 십자가가 승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삶으로 증명하는 길입니다。